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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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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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하고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이야기 8편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구마모토"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전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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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구마모토 성의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일본인의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시야를 먼저 이해하고 가야 하는데,

이거야 우리가 임진왜란을 보는 눈이지만

우리야 뭐 7년 동안의 전쟁동안 남의 땅에서 X랄 아닌 X랄을 해두고 관백이라 불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제 명에 살지 못하자 그 전쟁의 책임을 모두 히데요시에게 돌리고 그 이후에는 조선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

 

에서 중요해야 할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이후에 일본에서도 실세가 누구냐 하는 싸움이 있었는데
미츠나리와 도쿠가와의 싸움, 미츠나리가 누구야?
 
이런 생각이 드는 여러분의 생각이 의미하는 것처럼,
도쿠가와 쪽이 가 승리했다.
 

 

전후 세키가하라 전투

 

가토는 동군에 속해 도쿠가와 쪽을 지지했었고 
서 군은 당시 도요토미의 전통성을 지지하는 편이었었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 블로그의 이야기 보다는 
다른 문헌을 참고해주십사 


영화 세키가하라

 
아무튼!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전쟁의 상처를
여러 번 겪고 나서 지었던 것이
수원화성이라면,
일본 도 일본의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기 위해
지었던 것이 가토가 지었던 , 구마모토성 
 
왜 전의 교훈과 전쟁의 교훈을 모두 합작해 넣은 것이 구마모토 성이 되겠다.
 

 

이미 자기 백성들은 거덜 났지, 일종의 미국에서도 국가사업으로 후버댐을 지었던 것처럼,
구마모토 성의 축성은 그때 당시의 국가 산업이었다.

이 성을 시작으로, 그의 경영으로 정치적 기반을 쌓았대나 뭐래나 하는 이야기는
이 블로그보다는 구마모토 성의 공식 안내 홈페이지를 참고해 달라 

역사

今こそ見てほしい熊本城。平成28年熊本地震で大きな被害を受けた熊本城ですが、二の丸広場や加藤神社から、天守閣等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熊本城の復旧状況のお知らせや、二の丸広

castle.kumamoto-guide.jp

 


구마모토 성에 있는 성의 모형

구마모토성은 하나의 요새라고 불려도 될 만큼 당시의 최고 기술이 들어간 것으로 보였었다. 괜히 일본의 3대 성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구마모토 중심지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 하면, 일본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어떤 것을 띄고 있는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고야성, 오사카성, 그리고 구마모토 성. 
 

우리야 일본에 반감이 있어 이 성들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보는 것보다는 일다는 거부감을 들어내고 공격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인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역사란 건 본디 우리의 역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그 전쟁의 전후 처리도 알아가는 재미가 있음을 사람들이 좀 알아줬으면 한다. 

임진왜란후 가토가 쌓은 400년역사 구마모토성, 강진에 '휘청' | 연합뉴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14일 저녁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 발생한 강진은 400년을 굳건하게 버티며 지역의 상징이 된 구마모토성(...

www.yna.co.kr

참! 방문당시 구마모토 성은 지진 이후 복구사업이 한참 동안 진행 중이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곳을 복구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외관으로는 크게 별 차이가 없으나, 그 깊은 내부 사정을 살펴보면 지진으로써의 상처가 어느 정도 많이 남아 보이긴 했다.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해 안전한 아쉽게도 한쪽 방향으로만 관광이 가능했었고, 그 끝에는 본성에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성의 외관
여기저기 무너짐을 방지하기위해 철망이 쳐져있엇다
내부를 보여주기 위한 모형
보다 싶히 대다수 통제가 되고 있엇다.

 

구마모토 성의 본성

구마모토성 근처에서는 사무라이 역극도 볼 수 있었는데, 돈이 없는 우리는 보지는 못했고, 지나가는 배우들이 외쳐주는 
 

ようこそ!

어서 오게나!

이런 것으로 만족,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두 개의 지역을 짧은 시간에 방문하지 않고 가고 싶은 모든 곳을 가고는 싶었지만 
아무래도 구마모토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밖에 안 됐었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산을 이용하려면 그냥 지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봤던 걸로 만족해야 했다. 

구마모토 성의 성주, 가토 기요마사 

축성의 달인 이라 불리시던 가토를 마주하는 마음은 여러모로 다양한 감정이 생기길 마련, 왜란이야 500년 전이라고 해도 그 전쟁 때문에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가 완전히 달라졌었으니까.

 


쿠마몬
기념품 가게들

 

 

구마모토 성의 내부에는 오래전 구마모토의 모습을 복원한 전도도 있었다 
구마모토 성에서 볼 수 있엇던 밖의 모습

구마모토 성에서 건너편 건물을 보면 쿠마몬을 창밖으로 그려둔 것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칸자키 란코 어서오고 

2023년 1월 경에, 구마모토 성을 부흥하기 위해 아이돌 마스터와 응원 특별 프로젝트를 한번 진행했었다고 한다. 의외의 만남, 고등학교 시절에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를 워낙 재밌게 보았는데, 다시 만나니 추억에 잠기게 되었다.

구마몬이 여기저기에 있어요 가토씨

구마모토 성을 빠져나와 앞으로 공원으로 계속해서 걷다 보면,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이 나온다. 가토가 우리에게 있어서 적군이었겠다만, 이들에게는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다시 한번 상기가 되는 장소. 사람마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달리 하기 때문에, 물론 단편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은 없다고 믿지만 말이다

ㅇ죄인... 아니 죄웅 쿠마몬

정말 쿠마몬이 많다


당시 우리의 여정

 

참, 이 후쿠오카 여행과 구마모토 여행들이 본래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었다. 

 

계획안 1 : 후쿠오카 구마모토 후쿠오카 시모노세키 부산
계획안 2 : JAXA를 보고 싶어요 - 후쿠오카 구마모토 가고시마 타네가시마 미야자키 
 

??: 개소리하지 마라 진짜

 
수정안 1 : 후쿠오카 구마모토 시모노세키 후쿠오카
수정안 2 : 후쿠오카 구마모토
 
에서 수정안 2가 채택된 것.
 
뭐 인생은 어차피 기니까 그때가서 다시 보자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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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구마모토"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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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하고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이야기 7편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후쿠오카의 셋째 날 이야기"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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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까지의 거리는 대략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 이 거리가 체감이 되지 않는다면,
서울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중간까지 직선거리를 그어보면 그 거리가 체감이 될 것이다.
 
수치상으로 표기를 하자면 대략 200km 조금 넘는 거리,

 

우리는 이 거리를 신칸센을 활용해 방문하기로 마음먹었고 ( 한국에서 출발당시에)
(본래 맥주공장을 기준으로 일정을 조율했었으니까)
표도 이미 한국에서 구매를 했었다.
 
문제는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길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을 때 발생했는데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했던 방법으로는, 
가지고 있는 두 장의 신칸센 표를 흔들면서 

Kore dokodoko desuka 
이거 어디 어디예요

 

이런 말을 하자, 역무원은 잠시 머릿속에 물음표를 짓는 표정을 짓더니만, 표를 보고, 아 여기가 아니라 반대쪽으로 가야 해요라고 말해주셨다. 

 

친절한 사람을 뒤로하고,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가는 신칸센은 "츠바메"를 탔었는데 한국의 SRT 나 KTX와 달리 안내해 주는 분들도 많았었고 시스템 자체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도 많았다  

쿠마몬의 머리를 따 전시해두고 있다

 

구마모토역에 도착을 하면 쿠마몬의 머리를 전시해두고 있는데,
이는 쿠마몬이 구마모토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충분히 전달해 준다.
1984에서는 Big Brother 가 시민들을 감시한다면,
구마모토에서는 쿠마몬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여기저기 남아있는 쿠마몬의 모습

쿠마몬은 당신을 사랑해

쿠마몬의 위상정도야 트위터나 아니면 블로그나 TV에서 여러 매체등을 통해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체감하니 생각을 달리 할 정도로 많았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캐릭터를 갖고 도시를 도배한 곳이라는 공간이 찾기가 힘든데 , 구마모토라는 도시자체가 쿠마몬들이 서식하는 서식지로 보호받아서 이렇게 번식을 많이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쿠마몬이 많다. 정말 많다

식사는 쿠마모토 역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한국에서야 터치패드를 갖고 주문하는 것이 이제 대다수를 차지하려고 하는 상황이라면, 여기 일본에서는 현금을 넣고 종이 자판기에서 출력을 하면 그 출력된 종이를 식당주인에게 드리면 그가 요리를 제공해 주는 그런 상황들이 많은데
 

놀랍지 않나?

 
분명 식당주인도 그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기에
몇 년 아니
몇십 년의 이야기를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
 
긍정적인 시야로 보는 것은, 언젠가 이런 것들도
최신화를 하게 된다면 기술자들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산토리 규슈 구마모토공장(サントリー九州熊本工場) | 관광지             |                 【공식】구

현중앙지역 산토리 규슈 구마모토공장(サントリー九州熊本工場) 맥주 · 청량 음료를 한 공장에서 만드는 하이브리드 (종합) 공장입니다. 제조 공정을 유리창 너머로 견학 할 수 있는 학습 장소

kumamoto.guide

구마모토 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산토리 공장 버스를 타고 맥주공장으로 향한다ㅇ
구마모토에서는 아직도 트렘을 운영하고있었다
드 넓은 밭을지나
위생을 각별히 신경쓴 모습,

산토리 맥주공장은 기린맥주공장과 달리 손님이 꽤나 와 있었다. 투어 패키지로 오신 분도 계셨으며, 일본에서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오시 50대 중후반의 사장님들이 5명 정도와 있었는데, 짧은 대화를 통해 그들이 야구부 친구들이며 나이가 들어서 드디어 만나 여행을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매번 말 많은 친구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다른 사람하고 친구 만드는, E 성향이 강한 일본인 사장님이었는데 후쿠오카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신다고 한국에도 놀러가본 적이 있으며 바베큐를 좋아하고 맥주를 좋아해 산토리 맥주점에 친구끼리 오게 되었고 또 부산이랑 서울도 가본적 이 있어 언제 한 번 연락하면 좋겠다 하는
말을 남기는 사이에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그를 연행해 갔다. 
 (이 대화는 3분 정도 사이에 일어난 대화였다)

우리랑 대화를 하는 사이에 친구 2명이 이미 그의 팔을 잡고 끌고 내려가면서
뒤에 있던 나이가 지긋히 있는 친구분이 나오시더니
"친구가 말이 많아 정말 죄송했습니다"
얼굴로 인사를 하고 다음 맥주 체험의 장소로 갔다. 

 

나이가 먹어도, 사람의 성격과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아니 정말 괜찮은데 오히려 듣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런 끌려가는 일본의 50대 남성  (부동산 부자 )를 뒤로 하며 
우리는 안내를 받아 맥주 체험의 장소로 갔다 

 



 


공짜맥주 좋아

 

완벽한 맥주를 따르는 데에는 어느 정도 교육과 시험을 패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완벽한 거품의 비례, 마음에 위로가 되는 모습

다시 돌아와서 보는 트램,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아직도 이걸 운영한다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구마모토의 명물인 트램을 다시 보게 된다. 그날의 일정은 그것으로 마무리하고 이제 오후 일정인 구마모토 성으로 향해야 했다


근처에서 먹은 라면

당시 구마모토의 날씨

구마모토 지진을 기념하는 물 펌프

구마모토는 한국의 대전처럼 느껴지는 것이 강했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이 글의 제목은 군이라는 공간을 요약하는 제목이다. 그 공간은,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더러운 일을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하는 장소라는 것 말고도 , 정신적으로 부담되는 일도 자신의 임무인 만큼 해야 할 때가 많으며, 이 정신적인 부담이란 내가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하게 되는 일들이 태반이며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그런 장소이다. 난 이러한 일련 상황을 지켜보았때, 영화 Fury에서 전차장인 War Daddy가 신병에게 적군 포로의 등에 총알을 박아 넣으라는 말을 신병이 전쟁에서 적응을 하기 쉽도록 충격요법(galvanize)을 "배려"해주는 장면이 곧 잘 생각나곤 했다. 

 

 누군가의 입을 대신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들이 많다, 욕도 본인이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먹어야 하는 일도 많으며, 분노도 누군가를 대신해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런 억울한 상황 속에서, 어떠한 이유 때문에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고 설명하기보다는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상황을 무마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 뒤에 돌아오는 사람들 간의 인간관계를 후에 정리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을, 당장은 모든 책임을 지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그나마 어른스러운 행위다. 혼내기 싫은 일도 아니 혼내야 하는 일을, 싫은 소리 하는 상황 속에서 좋게 타일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좋게 타일러 가르침을 주는 상관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책임을 부하에게 덮어씌우고 자신은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경우가 그나마 감사한 상관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당신의 군생활에 심심한 유감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러한 관점에서 Fury 에서나오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을 때, 훌륭한 군인의 모습도 아닌 당장 만난 인연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은 빠르게 돌아가는 군에서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병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충격요법으로 전장에 빠르게 적응을 시키는 것이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생활관에서는 내가 그곳에 있었을 적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었던 지라, 누군가 혼내는 것을 싫어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그냥 내가 먼저 가서 혼내는 경우가 잦았었는데, 이는 부대에 있는 다른 간부한테 혼나기 전에 사전에 그 앞에서 내가 먼저 혼냄으로써 상황을 미연의 통제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에게는 단순히 못된 선임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가끔은 이러한 상황이 연출될 필요는 있었다.

 

이제 사무실에서는,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나는 막내 중에서 막내, 여기저기 불려 가는 삶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입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군 측 간부들이 가끔 깜박하는 순간이 많아 그 대화내역 중에 자신이 상한 감정을 그저 전달하는 메신저인 통역에게 쏟아내는 경우도 많았었는데, 별도리가 없이 그것을 들어주는 것도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말을 평생 군이라는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간부들이 듣는 것보다는, 일종의 소모품인 우리들이 듣고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이 행위자체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자동차의 범퍼가 된 것처럼, 간부님들 입장에서는 나의 역할은 충격완충제였지만, 나의 입장에서 나의 역할은 충격을 그대로 받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몇 번 흘려주고 다시 한번 업무를 시작하는 것을 일병 때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병사들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부에서는 "당신들의 행위가 작은 외교관임을 알고, 국가를 대표함을 알고 항상 행동에 주의할 것"이라는 지침을 내리곤 했었는데, 이 말은 병사들을 생각한 게 아니라 당연히도 간부들을 더 생각한 것이었지만, 그 말을 들었을때 들은 생각은 역시나 "윗사람들은 알리가 없다. 보여주는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근간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부면 "그건 너네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렇게 말을 하겠지. 

 

 

적당히 보여줘야지 그들은 만족한다

 


내 직속 통역장교님이 딱 그런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열정적이고, 자상한, 한 명의 아버지라는 생각이 드는 그의 존재지만, 군에 와서는 그러한 것은 필요 없이 FM을 좋아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좋아하는 도전정신이 넘치는 특전사령부출신의 남자였으니까. 그와 달리 "적당히 적당히 하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최선을 다해" 하는 나의 스타일은 맞지 않았고, 상관인 그에게 맞추기 위해 때로는 자처해서 초과근무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하였다.

 

그에게 사람취급을 받는것은 병장이 되고 나서야 일이었다고 난 생각한다. 덕분에 문장이나 단어의 조화가 맞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병이 생겨버렸으니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양날의 검인 그 장소, 군대라는 장소를 내 동생들에게는 반드시 가라고 하는 편이지만 막상 가게 되면 내가 걸어온 고통의 길을 걷이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물론, 내 말을 듣고 안 듣고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달려있지만 말이다

 

 


지금도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이 3명 정도 되는데,

사고만 안치고 변하되 너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장소다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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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후쿠오카의 셋째 날 이야기"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전역하고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이야기 6편

후쿠오카 여행은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후쿠오카 온천의 이야기"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전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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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악조건 (사실 악조건이라는 것도 아닌 게 자기가 만든 것임, 평소에 잘했으면 이런 일 없었음)을 이겨낸

우리는 역전의 용사들 이었다.

본래 오늘 만나기로 했던 "형"은 회사의 서버가 터지는 바람에
서버 복구를 위해 그의 발걸음을 옮겨야 했었고,

매번 언급만 되지 나오질 않음, 일본의 서버를 책임지는 남자


그를 만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온천까지 즐기고 나면, 배가 고프길 마련
안 그래도 나른하게 만들어진 정신상태에 경계태세를 다시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음식을 향한 갈망은 첫째 날 보다 더 심했었다. 
 
그래서, 이 짜증을 풀기 위해
(친구는 생각하지도 않고 계속 자기만 생각함)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근처 식당에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유명한 식당들은 이미 사람들이 많았었고
그런 식당에서 사용할 정도의 돈과 시간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남들이 가본 장소를 굳이 또 한 번 가자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한 생각의 끝에 도달한 곳은 어느 지도에서도 표기되지 않은 일식당이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안 되긴 하는데 점포명이 나오지 않음, 혹여나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남겨달라)
 
처음 배를 타고 떠나는 우리의 여정은 한없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들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잠겨
 
생각해 보면, 비 상식적인 일들이다.
여행이란 본디 계획으로 해야 하는 것인데
그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인 이번여정 
 
첫날에도 술을 마시긴 했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술을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기도 하며
술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고 빠르게 취하는 나로서는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는데
(맥주 500ml 이상 마시면 응급실에서 리스폰)
 
어디 한번 일본의 의료체계를 믿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온 술집
구글 지도에서도 곧 잘 나오지 않는 곳에 있는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기록 외의 공간
이 상황 자체가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마음에 쏙 드는 상황
내가 모르는 것을 마주하는,

아니 설령 계획을 짜고 왔다면 겪지 못했을 경험
길이 나는 대로 걷다 보니 나오는 장소
 
이러한 분위기는 나로 하여금 더욱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게 한 것 같았는데

 
그 상황을 묘사하자면 작은 술집이었다

애초에 외국인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고
처음에는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음식을 먹으니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우리를 안 좋게 쳐다보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인 손님을 싫어하셨던 것인지 
사장님은 젊은 30대 중반의 모습으로 보였었고

외국인인 우리를 경계하는 듯인지 아니면 어찌 반응해야 할지 좋을지

매뉴얼이 없어 계속해서 쳐다보는 듯했지만
 
나중 가서는 자릿세(일본은 가끔 자릿세를 내야 한다)

포함 대략 7천엔 가량을 자리에 앉아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보아하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장님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게 되었다
 
식당의 모습은 벽에 사진과 어디서 받은 지 모르는
Certificate, 인증서들이 보이기도 했다.


일본어로 적혀있어 뭐라고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날 매출의 15% 이상은 우리가 책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친구가 먹은 카레우동


당시 먹은 닭갈비 사진과 친구의 카레가락국수
 
기억에 남는 것은 매운 닭갈비
 
친구는 매운 것을 좋아하는지 먹어보고 맵지 않다고 말하여
 
구랭? 나도 먹어야지 
하고 입에 넣은 순간 터지는 순간의 매운맛
 
그렇다
매운 닭갈비란
 
닭갈비를 양념에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캅사이신에 담갔다 한번 뒤집은, 캡사이신 덩어리였던 것
거짓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속이는 마음도 없었을 터인데
 
이 매운맛은, 나로 하여금 친구를 향한 배신감이 느껴졌었다
(? 양아치네 이거)
 
너무 매운 나머지 물을 찾으면서
친구를 주먹으로 때렸는데
(이 문장에 거짓은 없다)


음식 위에 올라가 있던 것은

사실 캅사이신 가루들이었고
일본인 기준에서 매운맛은 한국인에게 맵지 않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먹은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것이었다
 
 
사장님도 그 모습을 보더니만

웃음을 참지 못하시고
빵 터져버린 그 상황


 
이 가게의 직원분들도 어느 정도

나의 성격을 파악했을 즈음에
매워 죽어 가는 나를 구원한 것은 맥주였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없지만,

그 이후의 쾌락을 위해서 고통을 일부러 느끼는 것
이후의 보상을 충분히 전달해 주었는데


그래도 그 매운맛 속에서 억울한 감정은 어디 가지 않았었다.
(이분 안 나온다고 친구 버리고 가고 매운 거 먹었다고 사람 패고 인성문제 있는 거 같은데)
 
그 상황을 즐기고 있던 친구는 말없이 웃기만 하고 있었는데
(내 기억상)
지금 와서 물어보았을 때 그의 답은 명확하였다
 
물론 훌륭한 교우관계에 사이에서 서로 미안한 마음
서로 간의 감정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온

나로서는 그냥 넘어가는 해프닝이었지만 말이다
 
친구끼리는 사과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서로 다름을 매번 알려준 친구가 있어 고마운 이야기지만)
 
서로 말없이 이해하고 나중에 배로 갚으면  그만인 이야기
 
당한 것이 있으면 돌려주고
받은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려준다

야라레타라 야리카에수


 
한자와 나오키식 운영
(일본 하면 좋아하는 드라마)
 

그렇지만 당신은 당한 것도 없는데 친구를 버리고 가고 매운 거 먹었다고 사람을 팼잖아요! 

조용히 하세요
 
아무튼 그런 즐거움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숙소로 짐을

마무리하면서
 
그날의 잊지 못하는

맥주공장
 

 

전역하고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이야기 5편

후쿠오카 여행은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기린 맥주공장입니다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전역하고 후

igewaedam630.tistory.com

7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어디를 갔는지 설명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날의 하루가 너무 즐거웠기에
남아있는 사진이 많이 없다

 

 


당시 식당을 향한 우리의 여정

 

가게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제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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