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은 중구 난방으로 편성되어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편은 소재가 진중한 만큼, 진중하게 작성되어있습니다
후쿠오카 여행은 매일 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매번 강조하고 싶다, 이게 이전의 삶의 경험이 억압되고 같혀있는 삶을 살았다가 만끽하는 타지에서의 자유는 정신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으니까.
(일단 기상나팔이 없다는 점에서)
2023년 3월 29일 아침
이전편에서 언급햇듯이, 아침부터 우리는 타치아라이로 향했다. 한국이었다면, 정류소에가서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기다리고 버스를 타고 기다리고 그 기다림의 연속이었겠지만, 일본은 또 다른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은 열차. 열차 아니겠는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마음이나, 일본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나 분명 기다림에는 지루함과 오는 여행을 향한 설렘이 넘치겠지만, 타국에서 겪는 기다림이란 감정은 그 겪어보지 않은, 다음의 설렘이 배가 되기에 열차 여행 또한 나쁘지는 않다.
웃긴 이야기다.
여러 매체에서 외국인이 한국지하철을 타고 놀라워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한국인이었던 내가
이제는 같은 처지의 외국인으로써
일본의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였으니 외국인의 입장으로써 보이는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
잡다한 생각의 흐름들을 느끼면서
시작지는 오하시역, 오하시역은 후쿠오카 텐진에서 조금만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역, 후쿠오카 중심지를 가르고 있는 (물리적) 중심지였다. 오하시역에서 출발한 우리의 여정, 갈길이 멀었다.
관련 포스팅은 다음편에 작성하도록 하겠다
목적지는 기린 맥주공장.
예약해둔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내 자신을 재촉해보자
내 시간을 재촉하는 방법은, 시간을 빨리가게 하는 방법이인데, 여러분들은 감히 생각하건데 시간을 빨리가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과학적인 질문도, 철학적인 질문도 아니고,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개념은 다 똑같은 길이의 시간이 주어지고 단순히 그 시작점이라는게 다르다는 건데, 무슨소리지? 이런 생각을 하신다면, 그 발상은 틀리지 않았다. 발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소리를 조금만 깊히 이해를 하신다면, 이 이야기는 즉슨.
내가 받아들이는 시간의 속도를 빨리하는 것
다르게 말하면, 다른 일에 집중하거나 혹은 잠을자는것
정신을 무장하고, 눈을 감고, 잔다
나는 서서가기 싫었으니까.
도착지는 오고리역, 후쿠오카 시를 떠나 밑으로 조금만 내려온다면 보이는 오고리시.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하남시정도의 거리라고 해야하나? 그보다도 창밖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일본의 모습이, 나로 하여금 다른 공간으로 끌고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체감으로는 더 가깝게 느껴젔던 것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잡혀있었기 때문이라.
그리고 이 오고리역에서 다시 다른 열차로 갈아탔어야 하였는데, 이 느낌은 한국에서 느끼지 못하는 열차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한칸짜리 열차, 열차라고 하기도 애매한, 트램
한국에서의 지하철에서 트램으로 갈아타는 느낌, 매우 새로운 경험. 그렇게 빠르지도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기능을 수행하고있는 오래된 열차의 길
오고리 시에서 위로 다시 빠져,
다치아라이로 가는 길
여기서 사건은 또 발생한다
야 여기 맞냐? 왜케 암것도 없어
일단은 맞는거 같은데, 라는 생각과 발걸음을 재촉해 나와보니 보이는 전투기가 올라가 있는 정류장.
근처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니,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본래 계획에는 없는 곳이지만, 본래 밀리터리를 좋아하기도 했었고 전쟁의 역사를 좋아하니까
온김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거 같다. 하는 생각.
평소에도 밀리터리 관련 역사를 좋아하고, 그 역사의 소용돌이의 중심지에 있던 2차대전의 참전 국가중 하나인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그들만이 기록하는 생각과, 그때당시 그들의 단어들을 난 알고싶었으니까.
역사는 절대 객관적으로 기록을 해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들이 어떤 말로 그 마음을 남겨도, 나는 피해자 국가의 시야로 이들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겠지만은 그래도 들어는 보자. 이 박물관에 어떤 의도가 남아 있고,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를 하는 마음을 갖고
치쿠젠동립 타치아라이 평화 기념관 | 관광지 | VISIT FUKUOKA - 후쿠오카현 공식 관광 홈페이지 (crossroadfukuoka.jp)
홈페이지는 매우 잘 해두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곳은 격납고를 개수해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장소, 듣자하니, 이곳은 과거 2차대전 당시에 미군의 폭격이 집중되었다고 한다. 우리야 식민지 시절이었고, 일본이 이야기하는 전쟁의 상처가 많다라는 것을 공감하는 것도 힘든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관광객으로 왔으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려고 열심히 노력을 해보자. 식민지 피해의 국가의 출신이 공감하는 전쟁 가해자의 전후 패배의삶은 어떤 모습인가?
이 상황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할지 나 또한 잘 모르겟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지금의 이야기를 해야지. 그들이 좋던 싫던, 그들은 우리의 이웃국가니까. 국가적 감정을 뒤로 하고 이해해보려고 하는 여정이니까,
그들의 이야기
이 타치아라이라 지역에 사는 일본 국민들이 전쟁에 피로감에 절어 있었다고 한다.
한없이 떨어지는 폭격, 매번 방공호에 숨어야하는 삶. 학교에 가도,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방공호로 가야하고, 그리고 그 방공호에서 폭격의 공포가 끝났을 무렵에 다시 고개를 내밀면 삶의 터전이 없어졌었던 이야기.
오늘보는 친구가 내일 또 다시 볼 수 있을거라는 보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전쟁의 슬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 우리는 이 전쟁의 아픈역사를 전시함으로써 후대에 고통을 알리고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전쟁과 행복한 평화를 추구한다
라는게 이 박물관이 전달할려고 하는 이야기.
왜 이 타치아라이라는 지역이 미국의 폭격 대상이 되었는지는, 내가 추론컨테 아무래도 군수물자/공군기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 평화를 향한 호소의 방향성이 피해 국가의 출신으로써는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아니 지들이 전쟁일으켜두고 개 쳐발리니까 억울하다고 하네
진심 양아치들이네 이거
그래도,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야기 들어봐서 나쁠것들은 없으니, 어디까지나 내가 한국인임을 내려두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로간의 이해가 늘어나지 않을까. 긍정적인 곳으로 우리의 관계가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그리고 육안으로 확인한 신덴과 제로센
머릿속에서 스쳐가는 제로센 영화들
- 진주만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
- 불이 잘 붙는 비행기
- 함상충돌자살공격
- 당시 일본기술력의 상징
이런 마음으로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아무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혹은 책에서나 많이 보던 비행기였으니까.
또한 이 전투기가 이 박물관에 전시가 된 스토리도, 바닷속 깊히 추락해 잊혀진채 녹슬어가던 친구를 운좋게 찾아내 복구해낸 것, 일본에는 이렇게 본래의 형태가 곧 잘 남아 있는 전투기들은 많이 없다고 한다. 이 전투기를 보기 위해서 다른 지역에서 여기까지 오는 분들도 많다고 하고 심지어 이 전투기를 보기 위해외국인 관광객들도 이 제로센을 보기위해 온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우리는 더 많은 억압을 받았거늘, 우리가 우리의 뜻을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어느정도 울분이 남긴 이 마음을, 다시 한번 꾹 참고 관광했다. 그리고 전쟁의 막바지로 치닫는 순간 순간에 군부가 머릿속에 두었던 "본토 결전"의 마음으로 어린 조종사들 양성하고, 숙련되지도 않은 그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고서는 시간이지나 그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는 하는 말이 이것은 "전쟁의 상처야" 라고 말한다. 이 무슨 경우가 있나, 만약 그들이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정말로 그들의 입지로 구분하고 싶다면 그 가해자는 미군이 아닌, 강제 동원한 군부여야 할텐데,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동원이 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남편, 아들을 전쟁통으로 보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쟁속으로 빨려들어 간 것은 미국의 잘못이 아닌, 1941년에 진주만을 공습하고 필리핀 제도를 급습한 일본의 잘 못 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호소와 울분이 아닌, "그땐 그랬지" 하는 마음
나는 이들을 어찌 받아들여아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안에 보이는 조종사들의 사진들, 이 조종사들은, 전쟁속에서 "희생"되었던 아니, "특공"되어 버린 이 지역출신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단어의 조합으로 인해 머릿속이 지끈해지는 순간들에 출신 미상의 조종사들.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이 보는 시야가 아닌 "군대를 다녀온 사람" 의 시야로 볼려고 매우 노력을 했다. 그리고 보이는 20대, 아니 20대라고 하기도 애매모호한 20살 21살의 어린 나이의 조종사들, 분명, 1945년이면, 이미 너희들은 패배했었는데 그 패배의 끝을 향하면서도 어린 조종사를 하늘로 띄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의 삶은 20살에 멈춰버렸다. 아무런 성과도 없는 상태로, 인생의 업적이라는 것이 평화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사진의 형태로 남아버린 그 꽃다운 20살이라니, 내가 군에 있을때도 20살 어린 아이들 만큼은 크게 뭐라고 하지도 않았었는데, 아직 너무나도 어리고 세상을 밝게 살아가야 했을 그가, 그의 소속을 불문하고 그렇게까지 삶을 마무리 시켰어야 했었나.
한없이 유감이다.
또한 그 길을 따라 또 옆에 보이는 것은 신덴, 우리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밀덕 친구들이나 아니면 밀리터리 게임을 좋아하는 겜돌이 친구들에게는 익히 들어봐서 굳이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겠지만은, 일본의 전쟁 막바지속에서 개발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던 전투기, 이 전투기가 실제로 미군의 비행기와 맞닥뜨린것은 없었겟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으로써의 기분은 어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2층 특별관에도 들어갈수가 있었는데, 2층 특별관에서는 당시 소련이 전쟁포로들을 어떻게 취급하였는지, 그들의 포로 수용소의 일상과 군대의 억압된 문화 그리고 그 폭력성을 고스란히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야 근데, 읽다보니까 왜이리 익숙하지
그러니까 아침에 5시나 혹은 6시에 기상을해서, 점호를 하고 제설작업을 가거나 물자관리 혹은 수용소내 유지보수를 수행하고 음식맛이 없다는 것에 불평 불만을 하지 못하고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억울해도 그 호소를 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
아무튼, 상대국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의 시야로 보는 일본의 평화를 향한 노력은 불유쾌한 감정만 남겼다. 마음 한켠을 정리하고, 그래도 이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상대방을 이해할려는 시도 자체가, 앞서 더 조화를 이루며 나아갈려는 자세니까.
배가 고파졌다. 밥이나 먹으러가자
근처에 교통수단도 없고, 그냥 뚜벅이로 식당까지 걸어가야지.
우리가 찍은 사진들
타치아라이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관광지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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