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입대하고 2023년에 전역을 했다. 이제 와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최근에 아는 동생들이 군에 가니까 준

비물을 물어봤기에 내가 제공 가능한 정보를 추려 공유를 했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으니까 내 블로그에 공유하고자 한다. 

 


여러모로 뒤 숭숭한 소문이 돌고있고, 심지어 안좋은 소식이 들리고있는 이 난세의 시대에 당신의 군번이 여름군번이라면, 그에 걸맞는 준비물을 챙겨가는게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니.

 

    훈련소에 입대하는 대다수의 장병들은 20대 초반이고, 게다가 잘 해봐야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장 뿐이니,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기 전이기 때문에, 이들을 노리는 것은,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치루는 우리의 미래의 장병들에게 "자랑스럽다" 한마디 하는 것보다. 그저 이들을 돈으로 보는 자들의 습격일테니, 그들의 습격에 앞서서 이 안내서를 작성하였다.

2021년 기준 군대 안내서.pdf
0.42MB

 

우선, 병무청에서 제공하는 안내서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입영부대에서 제공한다

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입영부대에서 제공합니다

 

 

다시한번 쉽게 말하면 

 

부대 앞에서 판매하는 것들좀 사지 마세요.
우린 분명 말했음.

 

틀린말은 아니긴한데, 그래도 워낙 훈련생활이 고되기도 하고, PX 를 갈 수 있는 시간이 입대후 2주차에 들어가고 나서 오기 때문에 그 2주간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하는 포스팅. 

 

이하 군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군필자 (나), 군필(진) 의 대화로 마무리 하겠다


 

 

 

 

작은 공병에 페브리지 담아가기 

 

그 발상이 천재적이라 감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군에서는 때론 어떤 일화 때문에 사람들에게 별명이 생기고는 한다. 이 이야기는 나의 사무실 별명 "욘두"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군 생활도중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말하고 싶다. 한창 코로나가 끝나가는 2022년의 중순의 기억이었다. 나와 함께 14년을 함께하던 강아지도 유명을 달리했었고,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나와 연락을 곧 잘하던 친구의 자살 소식에 그리고 5년 동안 울고 웃었던 친구관계도 무너지고 있었을 때.

 

내가 군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 그 자체로써도 기적이었다.  

 

내가 힘든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고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미 내 주변이 들은 나의 변화를 쉽게 알아차렸었다. 왜냐하면, 거의 하루종일 입에 담배만 물고 있었으니까. 그런 사정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본부대장은 나에게

정신과 상담을 하면 어떻겠냐 하는 이야기도 오갔었고,

행보관님도 작업이든 뭐든 군대에 미련이 없는 나의 모습을 이해하는 듯하였다. 

 

세상이 싫었다. 아니 군이라는 공간 자체가 싫었다. 그리고 이 울분을 외칠 대상도 없었다.

정신과 상담을 요청해주신것은 감사하지만,
다른 이들도 자기만의 사정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요청은 없는 것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머리를 숙이고도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하루하루 군 생활을 하고 있었었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아니 말할 대상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내 가족에게 한다면, 그들의 입장에선 걱정이라는 짐을 더 늘릴 뿐이니까.  그런 마음을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이야기로 한없이 위로의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머릿속에 강한 충격을 주고 싶었다. 아니 물리적인 충격이라기보다는 강한 변화를 향한 욕구가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머리를 해병대 컷으로 잘라보자 

 

이발병에게 부탁했다, 그냥 미친척하고 머리를 잘라달라고, 이 심경의 변화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더 큰 변화를 줌으로써 변화를 원했다. 어차피 군인에게 있어 한없이 멋 부린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니까. 중요한 건 당장의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병대 머리로 했다. 가장 엉뚱하고, 어색하고, 그리고 멍청해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지을 필요가 있었던 것. 그리고 규정상에 없는 일이다. 짧은 머리를 하라고 하였지, 어떠한 스타일로 짧은 머리로 하라고 하는 언급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병대 머리로 자르고 사무실에 갔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별명은 "욘두"가 되어있었다.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것을 의도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내 의도대로 돌아가는 상황이 펼쳐져있었다는 것이 내 마음속에 안심을 가져다주었다.

 

눈물을 흘릴 거면 보이지 않은 곳에서 해라, 하는 말을 지키기 위해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했었지만, 그때만큼은 기억이 난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아니 그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 소리 없는 울분을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감정으로 했던 변화. 

 

다른 이들은 그냥 좀 이상한 형이고 엉뚱한 형이라고 하겠지만, 나를 통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야 그만큼 위로가 되는 경우가 없었으니까. 덕분에 내가 전입왔을때 분위기하고 전역할 때의 분위기하고의 군대는 충분히 달라져있었다.

지금은? 

 

지금은 그때를 후회하기 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는 좋은 계기였던 것 같다. 벼랑 끝에서 살펴보는 나의 모습이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게 되는 좋은 계기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이야 또 다른 방법으로 대처를 하는 것을 시도해 보려고 하고는 있는데, 그 시도의 결과는 역시 처음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이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남을 만큼 대 실패인 것도 있지만, 좋은 교훈이 더 많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러한 경험이 있어 같은 실수를 하거나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그들에게 필요한 공감을 할 수있지 않을까.

물론 이것도 합리화인 경향이 강하지만 말이다. 

 

 


 

 

 

 

 

입대전(2021년)

 

 

2023년의 모습

다시 돌아가라면 

내 동기가 있는 조건 하에 다시돌아갈래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애국,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이 단어에는 나에게 있어 두 가지를 의미했다. 1. 국가가 무엇을 하던 질문하지 않고 따르는 것. 그리고 2. 국가가 올바른 길로 가길 원하는 마음. 이었었다. 진정한 애국심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은 내 군 생활동안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사연 없고 이야기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생각도 하며 매번 생각에 잠기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애국심이라는 "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하더라도 따르는 "맹목적인 충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감정에 관해 많은 역사가도 있었으며, 철학자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김구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으며, 충경에서는 "국가에 이로운 일이라면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제 와서 그렇게까지 의미는 없는 행위이기도 한 이야기 속에,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애국"된 행위라고 귀결되어 가는 것 같다. 
 
물론 부정적인 시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속에서, 서로 간의 애국심으로 인해 전쟁은 매번 있었고 그로 인해 그 단어를 맹목적인 종교로 취급하는 것도 있었으니까. 그를 대변하듯이,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은 애국자를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으니까 말이다. 
 
작금의 사건사고나 시위를 보다보면, 사람들마다 자기만의 애국이란 단어를 규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애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난 아직도 대답을 곧 잘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각은 상황에 따라 달리 생각하니까. 

 
나의 어학병 생활은 그 생각을 충분히 대변했었다. 군에 입대하기 전의 내 생각은, 군대라는 공간을 "국가에 충성하는 공간" 이라고 생각했으나 일련의 사건과 일련의 일처리 과정 그리고 통역의 일을 겪게 되면서 그 생각의 근간을 흔들었었는데, 지금도 이 글을 쓰는 와중에서도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은 아직도 날 사로잡고 있다. 
 

Nationalism(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와 그 반대되는 Internationalism(국제주의)
흔히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반댓말은 Individualism(개인주의)로 곧 잘 오해를 하지만은, 그 사전적 의미의 반대말은 국제주의를 거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Individualism(개인주의)의 반대말은 Collectivism (집단, 집산주의) 일 테니

(각설하고 , 이런 전문적인 이야기는
관련 전공자나 쓰신 분이나 아니면
유관 업무를 오랫동안 진행하신 분에게 질문을 하시도록 하옵시고. )
 

 
 


 

현 충 원

顯 忠 院

 

서울 현충원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군에서 현충원을 방문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2022년 봄의 어느 날이었는데, 하루하루 어떻게든 일을 빼고 싶어 하는 군인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이자 또한 사회의 공기를 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그리고 정말로 애국심이 투철하신 분들을 만나러 가는, 이 기회를 나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그보다도 "민간인" 으로써 방문하는 것이 아닌 "군인" 으로써의 방문을 하는 마음이 어떠한 마음일지도 궁금했었다. 
 

현충원, 나라를 위해 싸우시던 분들이, 혹은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신 분들이 잠드는 장소. 
거기에는 무명용사의 묘지도 있었다.
아니 묘지라기도 그런, 무명용사들을 위한 장소. 

 

운이 좋게도 군인으로서의 나의 신분을 생각하면서, 현충원 참배를 대표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떠오르는 기억, 2020년 경에, 전쟁기념관에 직접 방문해서 헌화를 한 적은 있었다. 당시에는 분명 어떠한 마음으로 방문해서 그 장소에 그런 기억을 두고 왔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래도 감정만큼은 남았었는데. 그 민간인 당시의 헌화와 그때 당시 군인으로서의 참배는 감정이 복잡 미묘할 수밖에. 
 
이 중 몇 명이, 죽고 나서야 나라가 그대들을 챙겨주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고, 그리고 지금의 있는 사람들 중에 얼마나 잊힌 존재들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잠겨 돌아가는 도중 보이는 "월남전 참전용사"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노인들이 먼저 간 전우들을 위해서 인사하러 오셨구나.
 

경례정도는 해드리자

 
내 조국의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전쟁터로 몰아넣으셨던 그런 분들이 있는 곳이면, 군복 입은 자로써 경례는 해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겠지. 마음에 작은 위로의 바람결이 불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하는 경례
그리고 그중, 나이가 좀 되어 보이시는 분이, 그 경례를 받아 주셨다. 이 마음이 전달되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든 싫든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도 잊지 못할 하루였다. 
 

아래의 사진들은 당시의 사진들이다. 

 


2023년의 기억

 

언젠가 다시,
다시 한번
다른 모습으로
이 장소를 다시 방문하고 싶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코엑스 군인할인 

첫 휴가는 설레는 것이고, 갇혀버린 100일 동안의 공간 속에서 빠져나와 처음 맞이 하는 사회의 공기,  철조망과 시멘트 벽으로 완성되어 있는 외부로의 침입과 내부로써의 탈출을 막는 공간을 빠져나가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 군인의 첫 휴가의 감성, 물론 내 자대는 서울이었기에, 첫 휴가는 서울에서 보내기로 했었다. 
 
부대에서 나와서 삼각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코엑스를 방문한 이유는 잠실 아쿠아리움과 다른 코엑스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함이었는데. 그 입지가 삼성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직장인들이 데이트를 하거나 가족단위로 놀러 오는 곳. 
 
아쿠아리움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물고기가 좋기때문, 나의 퍼스널 아이콘이 상어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속 깊이, 하늘을 날지는 못해도 물속을 자유히 유영하는 상어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들려오는 고래의 소리를 상상하면, 마음이 한편 나아지기 때문인데, 오늘의 포스팅은 그러한 물고기를 좋아하는 내가 찾은 코엑스 아쿠아리움 (첫 휴가)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년 6개월 동안의 군 복무 동안, 휴가는 정확히 2번 나갔었다. 사회가 코로나로 아직 시끄러웠을 무렵이기도 하여 휴가를 나가지 않으면 않을수록 남아있는 기간동안 전역을 빨리 시켜주는 정책이 있었기 때문인데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 정책을 활용해, 통칭 "원기옥" (휴가를 100일 이상 모아 전역을 3개월 혹은 그 이상 빨리하는 일)을 던지는 사람의 이야기나. 혹은 휴가를 나갔다가, 사회에서 코로나에 걸려 "미복귀 명령"(군부대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함)을 받아, 사회에서 전역식 없이 전역을 해버리는 이야기도 곧 잘 들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 난 100일 휴가 + 신병위로 휴가 + 연가를 사용하여 2주 동안 휴가를 갔었는데, 2주라는 시간이 이렇게나 긴 시간이고 지루한 일정의 연속인 줄 알았다면 , 2주가 아니라 3일만 나올걸 하는 사견을 뒤로하고 첫 휴가 방문지는 코엑스였었다
 

당시 방문했던 코엑스의 사진

코엑스는 군인할인을 제공한다는 것을, 휴가증 없이 도착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그때였었다. 뒤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이시는 남성분이 나와, 내 사정을 이야기하는 걸 듣고 든. 1. 내 짧은 머리를 보고 (당시 일병) 잠시 생각하다가,, 2. 내 군번줄을 보고(군번줄은 죽어도 벗지 말아라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 3. (심지어 신분확인을 하겠다고 군복 입은 사진을 찍은 최근 모습도 보여주고 내 인스타그램도 보여줬었다), 생각에 잠시 잠기시더니 나지막이 말씀하시건대
 

"잠시만요 뭐 마지막으로 하나 확인 좀 할게요"

 

"육군 복무 신조"

 

예? 네? 에? 우리의 결의

 

"예 확인했고, 다음부턴 '휴가증' 지참하고 다녀요"

 
하고 데스크에 있던 직원 분에게 "저분 군인 맞으니까, 군인 할인 적용시켜 줘" 말을 해주셨었다.
다행히도, 당시 일병의 티를 벗지 못한 나의 기억 덕분에,  나에게 있어 감사할 일을 해주신 샘. 
 
참, 코엑스의 군인 할인은 30% 깎아준다. 휴가를 나가는 군인 장병 여러분들은 고등학교 시절 수험표로 할인받던 기억을 잘 활용해 군인 휴가증을 몸에 지니고 다니자. 요즘이야 핸드폰 앱으로 휴가증을 대체하는 것도 있지만, 가끔 이렇게 아날로그로 확인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휴가증 지참은 필수인 샘이었던 것
 

참, 방금 있었던 일화는 그냥 일화일 뿐, 따라 하지 말라.

상어 좋아
사실 상어 보러 왔어 상어좋아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굳이 구태여,
소중한 휴가를 할애하여 들어온 이유는
"상어"를 보기 위함인데, 휴가 복귀 이후에 선임들이 한 이야기로는 

 
 

"이 새끼는 지가 갇힌 곳에서 나가서 굳이 갇혀있는 애를 보고 오네 ㅋㅋㅋ" 

 
라고 자조스러운 말을 하겠지만은, 난 그만큼 상어라는 동물의 행태가 좋기도 했었다. 이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 그중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이유로써는 , "상어는 사람을 원래 공격하지 않는 동물이지. 그런 동물임을 대다수 사람들은 JAWS라는 영화 때문에 오해를 하곤 해 무서워한다"라는 이야기. 
 
그러한 상어의 이야기를 알렸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그저 바닷속 물고기 중에서 최상의 포식자였던 것을 곧 잘 기억하지만, 상어의 행태는 "무서운 존재" 라기보다는 한 없이 귀여운 존재라고도 생각한다. 
 
 

난 정말 상어를 좋아한다, 연골어류라는 매력이 너무 좋다

2012년의 이야기가 아닌, 2021년 12월 14일의 이야기. 
물고기는 물 속에서만 자유롭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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