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7일

나는 한미연합사에서 어학병으로 전역을 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내가 말을  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를 내가 말할 수 없는지 매번 의문이 드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공유해도 될 것 같은 정보를 내 블로그에 공유하려고 한다. 

오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하는 마인드와 남들이 겪은 경험을 나도 하고 싶다는 의도로 군대에 간 것이었고,
지난 10년동안 날 괴롭혔던 우울증을 떨쳐내려고 군에 자원한 거였으니까.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하시는 게, 우울증이 심해서 군에 입대하셨다고요?

 

믿기 어려운것이지만,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시야로써는 끌려가는 공간이고,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어차피 국가가 보상하지 않는 공간인데 뭐 하러 가요? 아니 X발 지금 우울증 치료가 아니라 군대 때문에 우울해질 거 같다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이레귤러가 맞다. 

 

나는 수능을 5번 봤다, 2012년 보 X고에 입학하고, 변변치 않은 성적으로 1학년 수시를 날려버리고, 2학년때부터 시작된 그 우울증이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기보다는 집에서 도망가 학교를 가는 것을 선택했으니까. 그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더 다른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고 지금은 그리 생각한다. 

 

근데, 뭐 인생에 만약이 어딨어

 

 

5년, 자그마치 5년이라는 기간은 누군가가 보기에 짧은 시기라고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25% 를 차지하는 기간, 의사가 되는게 내 평생의 꿈이었고, 그리고 주변인들의 기대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난 내가 특별한 줄 아는 병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래요 뭐 5년동안의 수험기간. 이해합니다, 그러면 19살에 첫 수능을 치르셨을 테고, 20살 21살 22살 23살 , 어라 계산이 안 맞네요? 군대를 23살에 가신 게 아니잖아요? 

 

나 목표로 하는 곳은 오로지 한 곳이었는데, 그 시작부터 부정당해버렸으니, 인생이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1년, 그리고 정신 차리고 대학교 복학을 해 3학년까지 다녔으니, 이를 따지면 2년이라, 이렇게 하면 계산이 딱 들어맞는다. 수 없이 죽음을 생각했고, 약도 처방을 받았지만, 내 스스로를 절제해라 라는 조언을 내 멋대로 해석해 처방받은 약을 한꺼번에 먹어 3일 내지 4일 동안 사경을 헤맨 적도 있다. 살아있음에 안도하기보다는, 살아있음에 절망감에 한 없이 울었다. 이런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이기도 싫어했었으니까. 

 

예... 뭐.. 고생하셨고요.. 뭐.. 근데 뭐 인생살이는 잘 알겠어요. 분명 중간에 여러 가지 일이 더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당장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물어보지 않아도 될 거 같고. 어? 여기 보니까 대학교 학과가 어학병과 전혀 상관없는 학과네요? 이걸로 어떻게 통번역을 하셨어요? 

 

 

일단 지방거점대학을 일단 들어갔는데, 의대는 가지 못했고 뭐 약사도 아니고 한의대도 아니고, 한약을 공부했다. 한약을 공부하려면 한자를 많이 알아야 하는데, 1학년, 2학년에 한자가 너무나도 싫으니까 한자보다 영어를 더 공부했었다. 얼마나 공부를 했냐면 때론 하루종일 영어 뉴스를 틀어두고 하루종일 따라 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걸 메모하고 외웠다.

 

 사람을 보는 게 너무 무서웠고, 사람을 보는게 무섭다는 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할까 봐"  무서웠었던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었는데 수험생활을 길게 하다 보니까 머릿속은 아직 어린 고등학생에 멈춰있었다. 모순적인 상황은, 그렇게 세상과 단절되길 원했으면서 동시에 세상을 보는 창을 필요로 하는 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나 이미 성격은 신경질적으로 변했었고, 나를 향한 모든 말들을 모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차피 망한 인생, 삶을 정리하기 위해 일부러 날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래야만, 그도 내가 세상에 없어졌을때 그는 행복감을 느낄 테니까.

내 딴에서는 나를 신경쓰지 말아 달라는 아우성이었지만 말이다. 

 

2023년 7월 28일 

하지만 군대는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어학병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4살의 무렵이었다. 하루종일 게임을 하면서 대다수 친구들을 게임 속에서 만들었었는데, 하루종일 게임을 한다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도 함께 게임을 한 다는 것이고, 그들의 문화와 영어에 동화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예? 게임이요? 그러니까, 영어를 게임으로 배웠어요? 근데 그게 통역이된거고?

 

그렇다, 게임에서 배웠다. 그래서 전문 영어는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부딪혀가면서 배웠다. 의대를 준비했던 머리는 겉치레가 아닌 법,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꿈꿨던 사람이니까. 물론 주변 친구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나를 응원해 주고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영어를 해봤자 어느정도 한다고" 라는 말이나, "너가 당장해도 유학다녀온 애들이 하는 병과를 너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라는 말이나, 그런 회의적인 시야를 나에게 남겼었다. 그들은 위로의 말을 한 거였을지 아니면 나의 현실을 자각하라는 말을 하는 거였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도전했고, 통과했고, 이겨냈고, 그리고 전역했다. 어떤 게임을 하셨나요?라는 말을 한다면, 나중에 포스팅으로 전달해 주겠다.

 

.......
할 말이 없네요. 아무튼, 군대이야기 계속해보세요

 

 

 

나의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들이 군이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믿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난 정말 그곳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났다

무너져도, 부서져도, 다시 한번 일어나 그 하루를 시작한다. 불만이 있어도, 해야 하는 것이기에 입대한 아이들이라 그리고 한국에서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 그런 것이겠지 

상처받고, 무너져도, 또다시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다음날을 살아간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그들은 보았고,

난 이 아이들의 반응을 보는 게 난 너무 행복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도, 바보 같은 형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도 않은 동기들이었고, 짜증을 내더라도 다시 한번 그 말의 의중을 살피는 사람들이었다. 생각이 얕은 것 같지만, 실은 깊고 굉장히 섬세하며 스스로의 임무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책임감도 있던 아이들이었다. 

 

물론 실수도 없지는 않았다, 말실수도 몇 번 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래도 화는 내지 않았다. 화를 내면, 이 아이들은 영원히 배우지 못할 것이니까. 스스로가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모른 채,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더 나은 길을 가지 못할 테니까.

 

물론, 군이라는 곳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적도 있던 것은 사실이다.

 

군에 같혀 있을때 사랑하는 이들을 군에 있을 때 너무 많이 잃었던 것도 있다. 몇 남아있던 친구도 운명을 달리 했었고, 17년동안 키우던 강아지도 세상을 떠났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고마운 아이들을 알게 되었으니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이미 지나간 일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니

 

이게 너무나 힘들어서 이 이야기를 상병 때 누군가에게 하려고 했었는데,

이 무거운 주제를 말하지 못했다. 이제 나에게 가벼워진 무게니 시작하는 나의 이야기자 시작의 에필로그. 

 

개인적인 감상은 그만하시고요,
군대 이야기나 하라니까요 

 

아니, ㅅㅂ  알겠습니다. 


 

입대하는게 즐거웠던 그 당시
너무나 행복했다
첫 배치가 연합사가 나오다
첫 휴가
고마운 친구
첫휴가

 

 

마지막 까지 좋은 말 해준 친구

 

이 친구는 이후에 나와 후쿠오카를 가게된다
첫 표창장

군대에서 발생한 일련의 이야기는, 내 감상을 묘사하는 적절한 짤방이나 만화를 포함한 포스팅으로 업로드를 하겠다.

 

왜냐하면

제9조(보호구역에서의 금지 또는 제한) ① 누구든지 보호구역 안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제1호, 제3호, 제7호, 제8호, 제11호 또는 제12호의 경우 미리 관할부대장등(제1호의 경우에는 주둔지부대장을 포함한다)의 허가를 받은 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4. 12. 30.>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구역 또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에의 출입. 다만, 군사작전상 장애가 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의 경우에는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
가. 통제보호구역
나. 울타리 또는 출입통제표찰이 설치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2. 통제보호구역 안에서의 건축물의 신축. 다만, 군사작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3. 통제보호구역 안에서의 수산동식물의 포획 또는 채취
4. 군사기지 또는 군사시설의 촬영ㆍ묘사ㆍ녹취ㆍ측량 또는 이에 관한 문서나 도서 등의 발간ㆍ복제. 다만,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가 공공사업을 위하여 미리 관할부대장등의 승인을 받은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오늘 포스팅 요약

 

죽을뻔 한 경험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죽음이 모든걸 변화시킨다.

 


조언을 아껴주지 않은 군에서 만난 모든 인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제 듣는 당신에게 너무 미안하다. 

제목 진짜예요? 진짜 군대에서 하루 더 복무했어요? 멍청이예요? 아님 애국자예요?? 

이 글의 제목은 실화를 바탕으로, 아무런 과장없이, 객관적으로 기록된 내 이야기니까 말이다.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으며, 가족들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이지만 온라인에서 만큼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여포니까 공공연히 태연하게 작성하도록 하겠다. 

 

 

때는 마지막 찍턴을 위해 복귀했던 날

신분 상으로는 병장이었던 시절, 그리고 인생의 계획이 유학으로 결정되어 호주로 가기로 결정되었던 시기, 그러니까 요약을 하자면 병장(군휴학, 전북대학교 3학년) 이었다. 준비된 서류도 없었고 IELTS 점수도 없었고, 전역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공부를 하기는 싫었고 그렇다고 친구들 (이미 취업함, 여자친구 만나느라 바쁨, 돈 없음, 시간대가 안 맞음)에게 방해가 되고 싶었지는 않던 시절, 난 굉장히 무료하고 심심한, 마치 은퇴를 앞둔 회장님의 마음일까? 그냥 너무 심심했다. 

 

얼마나 심심했는지, 군대에서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작업이라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군대는 나에게 전역자의 예우를 다했고 안타깝게도 행보관님은 나에게 복무를 허용하지 않았다. 분명 간부님들 마음속에서는 어차피 나갈 애들인데 이런 애한테 굳이 일 시킬 필요도 없고 개인의 생활을 존중한 것이 분명하였겠지. 

 

하지만, 난 심심한 말년 병장, 심심하니까, 심심하니까 이병/일병 들의 일을 뺐고 싶었다. 부조리는 아니었던 것이, 원래 내 일이었던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내가 내 후임의 일을 해 줌으로써 내 후임이 편안하다면 나도 만족하고 그도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상황은 발생한다 

 

야간 경계 근무 인원 02:00 - 04:00 시 복무자가 격리됬는데요, 대체할 인원이 없어 

 

찍턴이었지만 새벽에 잠이 안와서, 경계근무 하는 애들 뭐 하고 있나 심심해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던 시절, 부대의 지리는 내 머릿속에 있었고 새로운 건물이 지어졌다길래 돌아다니고 싶었었다.

 

잠도 안오는 김에 12시부터 모든 곳을 들 쑤시고 다녔었다. 찍턴을 하는 2주 동안 무엇이 변했나, 다른 생활관의 분위기는 어떤가, 아니면 내 후임들이던, 내 동기들이던 뭘 하고 있을까? 

 

2층을 돌아보고, 1층 지휘통제실에 방문해 당시 야간 당직을 서고 있던 A 상병이랑 노가리(이야기) 까러 갔다. 근데 당직 사관님의 전전 긍긍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듣자 하니, 야간 당직 근무표의 2시 4시 복무자가 격리되어 대체자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코로나 때문에 복무가 불가능한 상황, 그리고 군 예규에 따라 대체 복무할 수 있는 인원이 없어 외부 병력을 충원해야 하나

 

아니면 새벽에 다른 병사를 깨워 굳이 구태여 상황을 설명하고 자원자를 받아야 하나 이럴 방도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그때

 

심심한 내가 

 

 "그거 제가 하겠습니다, 어차피 전역한 것은 맞는데, 신분상으로는 군인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당직사관 분은 말씀하셨다.

"아니 그래도, 네가 그렇게 해결해 주겠다면 고마운 일인데.. 전역자가 그런 거 한 거 내 군대 경험 4년 동안 없던 일이고..... 그래도 괜찮겠어? " 

 

말을 천천히 하고 있었다. 당황스럽지만 그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혹은 내가 어떠한 악의를 숨기고 또 다른 보상을 바라고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분명 그렇게 한 선임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난 대답했다, 

 

 

"난 심심하니까요" 

 

"? 무슨 이상한 소리니, 진짜" 

 

"거짓말 아니고 저 정말 심심해서 군대에서 좋은 기억도 많고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는데, 이것도 하나의 이벤트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저에게 있어서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그냥 살면서 재밌는 일련의 사건 사고 중 하나였습니다." 

 

A 상병은, 나에게 말했다 

 

"형 X 신이야?"

 

"조용히 해 , 지금 엄청 재밌는 상황을 만들어서 행보관님이나 본부대장님이나 이런 소식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난 궁금하니까 " 

 

나는 정말 이렇게 말했다, 행보관님이나 본부대장님이나 다들 바쁘실 때이기도 하고 매번 병사들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위에서 아래에서 괴롭힘 받는 중간직의 마음을 난 깊이 이해하고는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당장 귀찮은 일이라고 해도 정말 진짜 하늘의 맹세코 심심한 병장이었으니까.  

 

 

"형... 형은 괜찮을지 몰라도 난 아직 군 생활 좀 남았어.... " 

 

이 말은 분명 나로 인해 발생한 후속조치로 인해 생길 잡다한 규제들이 본인들을 얽매일까 봐 하는 이야기겠지 혹은 내 이야기로 행보관님이나 아니면 본부대장님이나 미래의 병사들에게 혹은 미래의 전역자들에게 '00 이는 전역을 해도 애국심을 갖고 복귀해 당직을 섰다' 하는 정훈 교육을 하게 될지 하는 걱정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얼마나 귀찮은 선례를 남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어린 마음을 난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 나는 심심했고, 심심했고 , 그리고 심심했다. 

 

그 와중에 당직사관 님은 복무지에 적힌 격리된 병사의 이름을 삭선으로 긋고 그 위에 나의 이름을 적고 내가 사인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눈빛과, 이런 병사는 어떤 병사인가 하는 의문, 그리고 심심하다는 의도는 어떠한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을 안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렇다, 난 이런 사람들의 문제가 혼란스럽게 해결될 때 짓는 그 난해한 표정을 좋아한다. 

의도를 모르는 다른 사람의 선의 속에 그리고 그 선의 안에 어떠한 악의도 없으며 그저 본인의 만족감을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그러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자기 자신에게 발생을 한다면 본인은 안 할 것이지만 의외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니까 

 

 

어찌 되었으나 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고 당장은 의심스러우나 선택지가 없으니 찾아야 하는 해결책이 오직 내가 제안한 선택지일 때.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너무 좋았다. 

 

"만약에, 근무자 문제라면은 행보관님에게 던 본부대장님이던 좋게 설명하고 제가 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바라는 건 맛있는 음식이나 아니면 제 후임 편하게 군 생활해 달라는 거치장스러운 말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거래를 할 수 있는 입지에도 존재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전 그냥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행보관님과 본부대장님의 표정이 궁급합니다.  서류상 전역자가 복무에 들어간다는 것을 반드시 행보관님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 그리고 전 새벽에 조용히 떠나렵니다 "

 

이런 이상한 소리 괘변과 함께, 심심한 나는, 아니 병장인  난 복무지에 사인을 하고 군복을 정리한 다음 

지나가는 길에 나로 인해 수정될 필요가 있는 행정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A 상병에게 지나가며 말했다.

"야, 내 인생 술자리 썰 하나 사러 가는 건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 아니냐" 

 

"야 그리고 12-2시 누구냐? "

A 상병은 답했다.

"어.. B일병이야"

그 말을 들은 나는

"걔 나 아냐? 모르지 않냐? 재밌겠는데"

온갖 악의에 휘둘려있는 웃음을 지고는 나는 근심 어린 걱정을 하고 있는 A 상병을 뒤로하고, 지통실 문을 나섰다. 추운 겨울이었다. 시간은 2022년 12월 말, 2021년 7월, 여름 빛깔이 도는 군대에서 이제 그 활기참을 뒤로하고 각자의 시간을 위해 떠난 내 동기들을 생각하며, 

 

쌓인 눈들을 밟으며, 뽀드득뽀드득하는 그 소리가 이제는 얼마나 달콤한 소리로 들리던가.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당직을 겨우 끝내고도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내 얼굴을 비치던 붉은색 취침등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그저 전신의 감각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눈 삽을 들고 제설을 했던 그 장소를

 

난 이제, 웃으면서 보고 있다.

 

그 일말의 시련과 고통이 나에게 어떠한 성장을 줬는지 모른 채, 어떠한 이야기를 담게 되는지 나는 인지하고 있지 아니하고 가벼운 발걸음을 들고 난 경계근무에 나선다. 

 

그렇다, 마음이다, 이 마음이었다. 이 불변의 진리, 아무리 하기 싫었던 일도 사람의 상황이 어떠한 상황과 생각에 따라 같은 일도 이렇게 달리 느껴진다. 난 이런 걸 증명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스스로 겪어봐야 굳이 구태여 남들이 생각하기에 아니하는 것들을 겪어보아야 난 그 감정에 동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입김이 나온다.

겨울이었다. 같은, 그 같은 겨울이었다. 

 

"워메 날씨는 죽이네"

 

하면서 나서는 설레는 발걸음,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는, 아니 내 존재 자체를 알리가 없는 A 일병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맞이할까. 어떤 장난을 쳐볼까 하는 마음을 갖고 난 오랜만에, 총 6개월 만의 내 근무지였던, 아니 내 근무지인 그곳을 향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나는 외친다 

"야, 나와" 

 

B 일병, 전입 온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다. 내 존재를 알리가 없다. 훈련소를 마치고 2주간의 보호기간을 끝내고 겨우겨우 이제 와서 경계근무를 서는 일병이랬다. 빡빡 깎은 저 머리를 내 모를 리가 있나, 나도 분명 저리 어리바리하고 상황 돌아가는 것이 급박했는지 모른 채, 앉아 있었겠지, 무엇을 잘 못했는지 모른 채. 

 

그는 나에게 말했다

 

"? 누구십니까" 

 

나는 대답한다 

 

"야 나오라고"

 

B 일병은 일어난다.

"아 예, "

 

주섬 주섬 공부하고 있던 아니, 무언가를 적고 있던 책을 자기 가방 속에 넣으면서 옷을 입기 시작한다. 원래라면 허용되지 않던 행위다. 아니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일병이, 전입 온 지 얼마도 되지 않은 일병이 이런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그의 군 앞길이 어떻게 꼬일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겠지. 혹은 내 동기, 후임들이 서로서로 편하게 하자고 하는 그 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 설레는 감정과 어찌 보면 분노, 아니 아련한 그 마음이었다. 아련한가? 왜 아련한가? 전역자들은 아는 감정이 아니던가. 그가 걱정되었지만 , 이제 내가 상관하면 안 되는 사람.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창창한 이제 막 20대의 길의 발걸음을 걷기로 하는 자 아닌가? 

 

이런 속마음을 숨기고 난 다시 말했다. 

이럴 때 필요한 표정은 

어느 정도 화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 X끼보소 ?

 

"어? 어? 쉬 끼마 나오라니까 진짜 나오네 , 경계근무 그렇게 할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B 일병은 말했다. 

 

순간 지었던 그이의 표정

 

"아니"

 

아, 이 당황스러움, 그 혼란하고 멈추지 않는 땀, 행동은 모두 정지된 상태.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오고 갔을고?

생전 보지도 못한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 자리를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 나오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니. 

여기서 다시 한번 몰아쳐주자, 이 경험이 그에게 다른 실수를 예방하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되게 해 줄 테니,

혹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가 맡은 바 임무를 다 해야 하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 선임자의 의무. 그리고 짧지만 군복 입은 자의 의무 아니겠는가. 

 

나는 또 말했다.

 

"아니?"

 

그는 당황했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이러한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퍼져나가게 된다면 다른 이들에게 남겨질 이미지를, 분명 두려워하는 거겠지. 첫인상이, 그의 앞날의 군대 생활이, 어떻게 될 건지 아니면 내가 누군지 아, 그 표정 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아니야, 가봐, 가서, 보고하고 올라가. 나에게 질문하지 말고, 해봤자 의미 없어, 내가 누군지도 알려고 하지 마, 어차피 몰라도 되는 사람이야." 

 

틀린 말 하나 없는 그 문장 하나하나.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단결"

 

난 그의 경례를 받았다. 온갖 잘못된 절차 속에 경례만큼은 제대로 하는구나. 

 

"단결"

 

새벽이다

 

나의 마지막,  군인으로서의 새벽이다.

 

다음날은, 

 

그날의 걱정을 마음속에 안고 살아가겠지.

 

신병이 올 때마다 어떤 신병이 오게 될지 항상 궁금했던 나의 이야기들, 그걸 접어둔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 인지하지 못한 채 나는 내 군대의 이야기를 접어둔다. 

 

 

겨울이었다.


 

 

신병이 들어올때마다 찾아가서 어떤애였는지 물어보던 그 시절
훈련에서 나오는 미군 밥이 맛있던 그 시절
번역하고 있는데 단어 하나 때문에 4시간 5시간 정도 고민하다가 대충 하라고 해서 대충했는데 나중가서 왜 대충했냐고 드럽게 혼났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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