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근본 없고 위아래도 없고 우당탕탕인 우여곡절속에 여행을 마무리 했으니, 그 여정의 기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기록을 하기 위해서는, 그때 우리가 방문했던 식당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말하듯이, 이는 우리의 조상님들도 당연시 여겼던 이야기니, 후손인 우리도 그 말을 따라야 함은 당연치사. 먹는걸 잘 먹어야 구경을 잘한다
후쿠오카 항구 근처 초밥
하카타항 토요이치
100엔~ 200엔의 가격으로 다양한 초밥을 맛볼 수 있다. 한 팩 가득 초밥을 담으면 대략 1200엔정도의 가격, 12000원의 초밥의 행복, 들어가면 어느정도 웨이팅을 할 각오는 해야한다. 그러니 전략적으로 움직이자. 점심시간이 시작되기전에 가던지 아니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움직이는게 중요하다
후쿠오카 하카타 역 근처 야키니쿠 집
원 갈비 프리미엄 텐진미나미즈미
일본에서 "형"을 만난장소, 이름이 말해주는 프리미엄이라는 "고급진" 식당이라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각각 칸막이 방도 있고 친절하시고 매너도 넘친다. 고기 사진이야 본편 14편참고.
후쿠오카의 다수 편의점
우리의 식당
돈이 없는데 식당가서 밥을 먹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편의점이 우리의 식당일지니. 의외로 가격대비 괜찮은 것이 많다. 아침일찍 일어나 6시나 6시 30분즈음에 출근을 준비하는 일본의 회사원들이 구매하는 것을 똑같이 구매해보면, 그들의 고충을 적잔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안녕, 후쿠오카"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나에게 있어 그를 만나는 이야기는, 어느 한 게임에서의 인연으로부터 시작을 해야 했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나에게 있어 용기를 북돋아준 존재였기도 하였고, 당시에 게임에서 만난 게임회사에 다니는 (다른)형(당시 28살) (지금은 본인 사업하심)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만나게 된 (또 다른) 형이었었는데 (당시 24살/해군 부사관) 이런 사람이 군대가 X 같다면서 전역을 해버리고
학위를 따시더니만 일본에서는 연봉 달달하게 먹으면서 개발자를 하고 있으니 사람이 호감이야 호감이 안 생길 수밖에, 물론 그 사이에 실패하고 좌절한 이야기를 아끼는 동생에게 분명하지 않았음을 인지는 하고 있으나,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상호 간의 예의랬다.
이 형은 일본에 가기 전, (당시 2022년) 내가 군에 있었을 때 면회를 한번 왔던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한창 코로나로 인해서 바빴던 시절이어서 그의 심리가 어떠한 심리를 가지고 있을지 이해를, 아니 그닥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있었을 때인데, 못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가 X 같아 전역을 한 사람이 동생을 보겠다고 또 다시 그의 발길을 돌려, 한 없이 그에게 폭력적이었던 집단이었던 "군대"로 면회를 온다.라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나를 소중히 여겼는지 알만한 대목이라고 난 생각한다.
물론 이 철없는 동생은, 이런 감정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달아.
"군에서 나를 보러 왔으니, 나도 형을 보러 후쿠오카 까지 가겠다"
하는 "받은 게 있으면 늦더라도 반드시 돌려준다"라는 철칙을 지키고자 떠난 후쿠오카 여정이었으니까.
일본에서 자리를 잡느라 바빴던 그는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시간이 났다.
일본에서도 잘 적응을 하였는지, 아니 뭐, 군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버티신 분이 고작 일본을 견디지 못할까.
삶의 경험치가 다르다는 것은 깊이 느낄 수 있었는데. 한국 전화로 형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어 채팅앱인 디스코드를 통해 통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사건은 벌어진다.
형 가게 도착하면, 쉽게 찾을 수 있게 가게 앞에서 손들고 있어봐요
"니 어린데"
"?? 이미 올라왔는데요"
"이 시발"
"니 새끼 나한테 손들고 있으라며 먼저 들어오나"
"그렇지만 배가 고팠는걸"
아무튼 겨우겨우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서빙하는 로봇이 있는 불고기집. 전화로 예약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 웨이팅을 넣어두고 온 것이라 시간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날라오는 욕설
이 X새가 손들고 있으라매 지혼자 들어오노 X새끼가
일본 한복판에서 손들고 있는 남자 됬다 아이가
삶의 변곡에서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일본에 있었고, 후쿠오카라는 타지에서 괜찮은 수급을 받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의 독기를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의 눈매에는 보이지 않는 독기가 서려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굳이 그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멍청한 동생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멍청해야 하는 법,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으니.
몇 가지 멍청한 소리를 해주면서 변함없는 동생의 모습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분명 본인이 걸어온 길을 걷는 이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이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며, 또한 설령 그 고통을 겪더라도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러니까
한창 고기를 먹으면서 그는 마지막 열차를 잡아 떠나야 했기에, "고기 먹기 타임어택"을 해주시고 값만 치르고는 집으로 갔다. 저번에 만나고 싶었을 때도, 분명 쉬는 날인데 서버가 갑자기 터져서 회사로 가시더니만 이번에는 막차를 놓치면 안 돼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곤 한다.
다시 항구로...
이제 돌아가자, 후쿠오카에서의 일은 다 보았다 아침은 간단히 맥도날드에서 해결했었다
배를 타고 일본에 간다는 것은 나쁘지 않았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워낙 엉뚱한 기질이 있는 "나"였어서, 어떠한 교통수단을 타던지 만족했을 것 같은데, 혹자가 말하길 "배를 타는 것은 비 효율적이에요, 시간도 더 걸리고 스트레스도 받아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답하길 "그래, 그걸 원하는 거니까"라고 답하겠다. 시대가 아무리 비행기보다 빠른 초고속 열차가 나오고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할지언정. 내 답은
색다른 경험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지난 2년간의 보상을 찾고 싶었다.
물론, 이성적인 사람은 당신에게 2년간의 보상을 주어야 할 대상은 당신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그곳에 넣고 당신의 생각의 근간마저도 바꿔버린 "국가"에게 있다고 말하기야 하겠지만은, 나는 답한다, 어쩌겠는가 젊은 2년 동안의 헌신을 보상하지 않는 것은 오랜,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며, 그 사랑이라는 것이 이제 와서야 병장월급 200만 원이다. "군대 좋아졌다."라고 말로 위로를 하고 있지만서도
이 생각에 관한 글은 논산편을 참고해달라
(수에즈 운하를 막았던 회사 "에버그린"의 배도 있었다.)
이로써 내 후쿠오카 여행의 이야기는 마무리 짓는다. 이 짧고도 긴 여행의 기간동안 느낀것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이 남았는데 무엇보다 내가 나의 입으로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너무 좋았다
군 이후로 처음 겪게 되는 "발언의 자유"
통역은 누군가의 입이 되어, 내가 내 의견을 2년동안 밝히지 못했기에 그래서 내 자유의지를 찾아 일본에 간 것도 있었다.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다시, 후쿠오카"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마지막 날의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나, 근처의 식당들을 방문했던 이야기도 빼먹었고 그리고 일본에서 만난 형의 이야기도 아직까지 안 하고 있는데, 여행은 여행대로 음식은 음식대로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 대로 구분해서 작성하고 자하는 의도였었다. 사전의 말을 안 해준 점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13편은 여행의 마지막이 되겠다.
처음 이 글을 작성할 때에는 후쿠오카 여행이 너무나 흔한 일이라, 다른 사람의 여행 블로그를 더 많이 읽지 왜 굳이 나의 후쿠오카 여행이야기를 볼려고 하는가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듣자 하니 "정상이 아니라 좋네요" 이런 것이랬다.
여러분께 감사함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돈키호테
아무튼, 각설하고, 마지막날은 돈 ~돈 돈~키 호테~ 를 가는 것이었는데, 일본에서 돈키호테라고 하면 잡다한 것들이 많은, 잡상인 팽귄. 한국에서도 이 돈키호테의 마케팅 전략을 착안하여 피에로 샵이라는 것을 운영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적인 감상에 맞지도 않아 금방 사라진 것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야기.
돈키호테는 기억상에 건물 전체가 매장이었다, 듣자하니 돈키호테 후쿠오카 텐진 "본점"이라는 점, 즉 당연히 크기가 클 수밖에 없는 공간이랬다. 5층의 크기인가의 건물이었는데. 3층에서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내 기억이 잘못되어 있거나. 지하는 식료품 매장이 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이게 안내를 100% 믿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 가끔은 뜬금없는 곳에서 물건이 나와서 딱히 원하는 물건이 없으면 전체 층수를 한번 스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저녁에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에 방문하고 저녁에도 방문하는 일, 이 돈키호테를 우리는 그렇게 방문했다.
돈키호테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은, 역시나 성진국의 나라 답게 성인 용품들이 대 놓고 진열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마음속 유교아저씨가 "허허 , 역시 일본이라는 곳은 이런 공간이옵시다" 하면서
잉 쯧쯧 하면서 동전 파스랑 안약이나 구매해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가는길
10년 전에 일본을 방문한 적 이 있었는데 그때와 다른 점이 하나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은 유지 보수의 장점인 것인지 아니면 발전이 없는 단점인 것인지 그 악명이 말해주는 듯한 복잡한 구조를 띄고 있는 돈키호테였지만, 면세가 되는 매장 중에 이 정도 큰 매장은 없기 때문에 방문한 후쿠오카의 돈키호테 되시겠다.
선크림이나 사 오라는 말에 어떤 것이 선크림인지 몰라 산 물건은 선크림 회복로션이었고, 정말 다음에 올 때는 일본어 공부 좀 하고 와야겠다 하는 마음만 남았었다. 언어를 몰라 나 스스로가 잘못된 것이니 속이는 사람이 없지만, 내 스스로에게 속아 나 자신마저도 믿지 못하는 이 느낌은 정말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치욕스러우니,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방문하리라
(옆에서 짐 싸는 친구)
(이후 친구와 원만하게 합의했습니다)
후쿠오카 항구
후쿠오카 항구에, 첫날의 도착을 후쿠오카 항으로 한 것이 있었으나 관광객으로써 후쿠오카 항의 도착하는 것은 정말 기분이 이상해진다. 우리가 도착할 때 쯔음에는 밤이었어서, 버스를 겨우 타고 숙소로 돌아가 그 주변을 관광할 상황이 안되었는데, 이제 낮이 되어 관광을 하자니 당연히 느낌이 이상할 수밖에.
또한 건물 또한 색감이 워낙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서 어린이 놀이터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체험하러 오시는 분들이나 관광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거부감 없이 접근하기 위해 이렇게 디자인된 것이겠지.
후쿠오카 도초지 절
라라포트 후쿠오카
일본에는 실제크기의 건담이 세 장소에 존재한다, 하나는 오다이바의 건담 ( 고등학교 시절 가고 싶었지만 가질 못했었다)
다른 하나는 후쿠오카의 건담, 그리고 마지막, 요코하마의 건담. 아마 건담 팬들이 아닌 이상, 어떤 건담이던지 간에 그냥 거대한 로봇이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는데, 건담에는 그 건담만의 철학과 역사가 있다. 전쟁의 역사와 어른들의 사정을 아이들이 보기 쉽도록 만든 그 이야기만큼은 나는 사랑하는데 후쿠오카에 자유여행인 이상 가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 세 건담의 이야기는,
나무위키를 참고해 달라.
분명 특별할 것이 없는 버스 정류장의 길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어렸을 적에,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던 그 감상이 떠올라 순간 사진을 찍었다.
인간은 역시 기억의 노예, 지금 다시 보면 별 의미 없는 사진이지만 소개하고 싶었다.
물론, 이 게임들은 고인 물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 같은 초보자가 호기심에 건들었다가는 돈이고 기분이고
눈물만 남기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니 그냥 보기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사진만으로도 전달이 곧 잘 안 되는 감동을 느끼려면 실제로 방문을 해야 한다,
이 장소에는 건담의 팬이라면 정말 감정 복 차오르는 디테일을 모두 고려했으니까.
후쿠오카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방문하면 좋겠다
만다라케 후쿠오카
만다라케를 방문함은 친구의 피겨를 사기 위함이었는데, 그와 동시에 이들의 마케팅 전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카운터에 엄청 이쁜, 왜 인형이 있지? 하고 구경 갔었는데
아르바이트하시는 분이었던 것.
이 사람을 보기 위해 오타쿠들도 만다라케까지 와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겠지. 그만큼 정말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였었다. 물론 나 같은 "파오후 금척굼척"은 적당히 예전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 사람은 이미 나 같은 사람을 수백수천이나 상대하느라 피곤하실 터이니. 자리를 피해 주도록 하자
옛날 애니나 찾아봐야겠다 하고 찾은 "스트라이크 위치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게된 것도 여러 가지 이야기도 담겨있고, 이 작품을 시작으로 "시마다 후미카네"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작품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회상의 잠길 수밖에 없는 샘 , 이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야나가와"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야나가와 뱃놀이와 오하나
그들이 말하는 "일본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야나가와에서는 뱃놀이를 체험가능한데, 이 지역의 역사와 도시 개발의 형태를 보면 흥미롭다고 안 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 전체가 물길이 지나지 않는 곳이 없는 형태를 띠고 있었으니까.
이러한 특성 때문일지라도 야나가와 뱃놀이는 야나가와시를 상징하는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한 번쯤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개인적인 내 감상은, 마치 베네치아가 전 세계를 히트하는 일류 게임이라면, 야나가와의 게임은 그 일류 게임을 따라가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는 카피 작품을 하는 느낌인데,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유럽의 모습을 원하지만 그 거리가 너무 멀 고자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야나가와도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 가깝고, 한국과 문화가 엇비슷한 일본에서 배를 타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 래프팅을 하는 느낌과 달리 잔잔한 힐링의 마음을 주기도 하니까.
또한 서비스의 측면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배를 타며 소규모 결혼식도 하는 모습도 직접 보았으니까.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이런 곳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인생에 결혼은 한 번이니
단점은 야나가와 물놀이라고 해도 베네치아를 벤치 마케팅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잘 알겠으나, 아쉬운 점은 많다. 무엇보다 서비스가 아날로그인 점, 이는 일본의 오랜 문제 이긴 한데 그들이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용하는데 익숙하면 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인지라. 안내를 하는 종이 팸플릿도 알아보는데 문제는 없지만
처음 보았을 때 받는 인상은
" 디자이너 좀 고용해 주세요 "
물론, 웹사이트는 정말 아름답게 꾸며놨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정보를 찾을 때 시도하는 것이 인터넷을 통한 접근이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을 고려해서 이쁘게 꾸며두려고 했던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 하지만 내가 무슨 평가를 하겠는가?
나는 관광객으로 온 것이니
타치바나 오하나
그리고 오늘의 만남은 "야나가와 뱃놀이"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영주였던 타치바나 가문의 이야기를 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들이 야나가와 뱃놀이를 하기 위해 기다리던 시간이 남아 있을 즈음에, 그 주변을 살펴본 결과 어느 한 대 저택을 발견했었고 그 대저택의 역사가 소개를 안 하고 넘어가기엔 좀 아쉬운, 그만큼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랬다.
타치바나 가문은 그 이름 명성이 의미하는 것처럼 야나가와 지방에서 가장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장소에 관한 정보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듣자 하니, 타치바나 가문은 야나가와 지방의 오랜 영주였다고 한다. 무려 400년 동안 야나가와 지방에서 기반을 쌓고 재단을 만들고 그리고 전후에는 미군정이 그들의 건물을 사용했다가 다시 그 건물을 되찾은 것은 얼마 안 된 이야기
건물을 외부에서 돌아보면서 살펴본 결과, 이 건물의 건축 양식은 서양식과 동양식의 혼용된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이 건물 자체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변화의 트렌드를 따르고 있었는데,
나는 이러한 건축양식을 이미 한번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용산
이 건축물의 건축 양식은 나로 하여금 용산의 군 시설을 생각나게 하였다. 아직까지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만약에 들어가 본 사람이 있거나 반환이 된 장소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내 말이 어떤 뜻을 의미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텐데, 서구식 건물을 따라 가 그들과 동급인 자리에서 서고 싶어 하는 그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그래도 그들을 너무 미워하진 말았으면 한다, 이들의 역사를 깊이 살펴보면 정말 애처로운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데, 이전에 방문했던 구마모토의 "가토"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센 조가하라 전투
우리야 임진왜란 이후로 일본과 전쟁의 역사는 향후 수백 년 동안 많이 나타나지 않지만, 일본은 두 개의 조직, 동군과 서 군으로 나뉘어 일본의 지배를 누가 해야 했나 하는 싸움을 했었다. 하긴, 7년 동안의 원하지 않던 전쟁은 서로를 병들게 하기 충분한 시간이었을 테니. 여기서 "타치바나 가"는 가토와 달리, 도쿠가와의 동군이 아니라 미츠나리의 서 군을 지지하고 있었다.
즉 어찌 보면 줄을 잘 못 섰었던 것, 전황은 이미 동군에게 기울었지만 이들은 아직 항복을 하지 않았었는데, 동군 측에서는 이들을 딱히 여겨 "어차피 진거 우리 편에 서라, 무의미하게 피 흘리지 말자" 하며 항복을 권유했지만, 그는 "의리를 저 버릴 수는 없다" 하며 거절했었다. 이는 오히려 가토의 입장에게서는 호감을 샀었는지, 결국엔 죽지는 않더라도 쫓겨났다가, 부흥을 해 다시 한번 돌아왔다는 일화 가 전해진다
이 무슨 드라마예요?라고 묻는다면, 정말로 그런 가문이다 . 이 타치바나 가문의 스토리를 듣다 보면 남자로서의 로망이 불타지 않는가.
이건 오래전의 이야기이다만, 또 근대에 오게 되면, 또 이 타치바나가문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바로 전후 미군정이 들어섰을 때, 본인들이 건국하고 이룩한 것들을 모두 빼았겼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족들의 힘을 한 곳에 모아서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으로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와~ 메데타시 메데타시
오하나 저택, 그 저택의 크기는 웅장하며, 주변의 야나가와 시에도 타치바나의 동상도 있는 것이 보면, 생각을 깊게 할 필요가 없이 어떠한 의미인지 충분히 전달이 된다. 심지어, 건물 내에는 연못까지 만들어 놨으니
이런 집을 가지려면 몇 대를 거쳐야 하나, 이런 생각과 함께, 야나가와의 뱃놀이를 체험하러 다시 이동하며 이번 편은 마무리
사연 없는 집안 없고, 드라마 없는 가족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부의 사정은 매번 다르기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의 기반을 다진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드는 이 애틋하며 표현이 불가능한 애매모호한 감정이 좋기에 이런 스토리를 매우 좋아한다.
본래, 가진 게 많은 자들이 드라마가 있는 법
심지어 본가도 아니고 별장이야
야나가와 미하시라 신사
대형 다자이후 오미쿠지와는 달리, 소규모 소상공인의 모습을 띄고 있는 야나가와 근처에 있던 신사, 물론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이 된 것처럼 딱히 참배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키고 있었지만, 굳이 구태여 이 벚꽃나무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 지역의 신에게 한번 인사 올리옵사. 100엔짜리 오미쿠지 뽑았더니.
"뭐야, 대길을 주시네"
"아고, 형님 외국인한테 대길을 주시면 우짭니까요 근데 이왕 준거 감사히 받겠습니다"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를지언정, 대길을 뽑았다.
아니 원래 대길이 많은 신사인가?
기준이 좀 다르신 건가 왜 그런 거 있잖아
아침에 100원을 줍는 걸 운이 좋다고 하는 거고 로또에 당첨되는 것도 운이 좋다고 하는 것인데, 둘 다 운이 좋은 것이며 그 기준이 다를 뿐. 다자이후는 정말 큰 신사라서 사람들이 로또 당첨되길 원하는 마음과 비슷하게 가는 것이고, 이런 작은 신사에는 크진 않지만 소소한 행복을 바라시는 분들이 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