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안녕, 후쿠오카"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나에게 있어 그를 만나는 이야기는, 어느 한 게임에서의 인연으로부터 시작을 해야 했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나에게 있어 용기를 북돋아준 존재였기도 하였고, 당시에 게임에서 만난 게임회사에 다니는 (다른)형(당시 28살) (지금은 본인 사업하심)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만나게 된 (또 다른) 형이었었는데 (당시 24살/해군 부사관) 이런 사람이 군대가 X 같다면서 전역을 해버리고
학위를 따시더니만 일본에서는 연봉 달달하게 먹으면서 개발자를 하고 있으니 사람이 호감이야 호감이 안 생길 수밖에, 물론 그 사이에 실패하고 좌절한 이야기를 아끼는 동생에게 분명하지 않았음을 인지는 하고 있으나,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상호 간의 예의랬다.
이 형은 일본에 가기 전, (당시 2022년) 내가 군에 있었을 때 면회를 한번 왔던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한창 코로나로 인해서 바빴던 시절이어서 그의 심리가 어떠한 심리를 가지고 있을지 이해를, 아니 그닥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있었을 때인데, 못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가 X 같아 전역을 한 사람이 동생을 보겠다고 또 다시 그의 발길을 돌려, 한 없이 그에게 폭력적이었던 집단이었던 "군대"로 면회를 온다.라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나를 소중히 여겼는지 알만한 대목이라고 난 생각한다.
물론 이 철없는 동생은, 이런 감정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달아.
"군에서 나를 보러 왔으니, 나도 형을 보러 후쿠오카 까지 가겠다"
하는 "받은 게 있으면 늦더라도 반드시 돌려준다"라는 철칙을 지키고자 떠난 후쿠오카 여정이었으니까.
일본에서 자리를 잡느라 바빴던 그는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시간이 났다.
일본에서도 잘 적응을 하였는지, 아니 뭐, 군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버티신 분이 고작 일본을 견디지 못할까.
삶의 경험치가 다르다는 것은 깊이 느낄 수 있었는데.
한국 전화로 형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어 채팅앱인 디스코드를 통해 통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사건은 벌어진다.
형 가게 도착하면, 쉽게 찾을 수 있게 가게 앞에서 손들고 있어봐요
"니 어린데"
"?? 이미 올라왔는데요"
"이 시발"
"니 새끼 나한테 손들고 있으라며 먼저 들어오나"
"그렇지만 배가 고팠는걸"
아무튼 겨우겨우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서빙하는 로봇이 있는 불고기집.
전화로 예약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 웨이팅을 넣어두고 온 것이라
시간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날라오는 욕설
이 X새가 손들고 있으라매 지혼자 들어오노 X새끼가
일본 한복판에서 손들고 있는 남자 됬다 아이가
삶의 변곡에서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일본에 있었고, 후쿠오카라는 타지에서 괜찮은 수급을 받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의 독기를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의 눈매에는 보이지 않는 독기가 서려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굳이 그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멍청한 동생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멍청해야 하는 법,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으니.
몇 가지 멍청한 소리를 해주면서 변함없는 동생의 모습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분명 본인이 걸어온 길을 걷는 이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이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며, 또한 설령 그 고통을 겪더라도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러니까
한창 고기를 먹으면서 그는 마지막 열차를 잡아 떠나야 했기에, "고기 먹기 타임어택"을 해주시고 값만 치르고는 집으로 갔다. 저번에 만나고 싶었을 때도, 분명 쉬는 날인데 서버가 갑자기 터져서 회사로 가시더니만 이번에는 막차를 놓치면 안 돼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곤 한다.
다시 항구로...
이제 돌아가자, 후쿠오카에서의 일은 다 보았다
아침은 간단히 맥도날드에서 해결했었다
배를 타고 일본에 간다는 것은 나쁘지 않았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워낙 엉뚱한 기질이 있는 "나"였어서, 어떠한 교통수단을 타던지 만족했을 것 같은데, 혹자가 말하길 "배를 타는 것은 비 효율적이에요, 시간도 더 걸리고 스트레스도 받아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답하길 "그래, 그걸 원하는 거니까"라고 답하겠다. 시대가 아무리 비행기보다 빠른 초고속 열차가 나오고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할지언정. 내 답은
색다른 경험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지난 2년간의 보상을 찾고 싶었다.
물론, 이성적인 사람은 당신에게 2년간의 보상을 주어야 할 대상은 당신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그곳에 넣고 당신의 생각의 근간마저도 바꿔버린 "국가"에게 있다고 말하기야 하겠지만은, 나는 답한다, 어쩌겠는가 젊은 2년 동안의 헌신을 보상하지 않는 것은 오랜,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며, 그 사랑이라는 것이 이제 와서야 병장월급 200만 원이다. "군대 좋아졌다."라고 말로 위로를 하고 있지만서도
이 생각에 관한 글은 논산편을 참고해달라
(수에즈 운하를 막았던 회사 "에버그린"의 배도 있었다.)
이로써 내 후쿠오카 여행의 이야기는 마무리 짓는다.
이 짧고도 긴 여행의 기간동안 느낀것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이 남았는데
무엇보다 내가
나의 입으로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너무 좋았다
군 이후로 처음 겪게 되는
"발언의 자유"
통역은 누군가의 입이 되어,
내가 내 의견을 2년동안 밝히지 못했기에
그래서 내 자유의지를 찾아
일본에 간 것도 있었다.
목적지는 부산, 거기서 다시 서울, 그리고 다시 집으로 가는길.
이로써 후쿠오카 여정의 이야기는 끝, 다음이야기는 방문한 식당이야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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