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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야나가와"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야나가와 뱃놀이와 오하나
그들이 말하는 "일본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야나가와에서는 뱃놀이를 체험가능한데, 이 지역의 역사와 도시 개발의 형태를 보면 흥미롭다고 안 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 전체가 물길이 지나지 않는 곳이 없는 형태를 띠고 있었으니까.
이러한 특성 때문일지라도 야나가와 뱃놀이는 야나가와시를 상징하는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한 번쯤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개인적인 내 감상은, 마치 베네치아가 전 세계를 히트하는 일류 게임이라면, 야나가와의 게임은 그 일류 게임을 따라가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는 카피 작품을 하는 느낌인데,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유럽의 모습을 원하지만 그 거리가 너무 멀 고자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야나가와도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 가깝고, 한국과 문화가 엇비슷한 일본에서 배를 타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 래프팅을 하는 느낌과 달리 잔잔한 힐링의 마음을 주기도 하니까.
또한 서비스의 측면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배를 타며 소규모 결혼식도 하는 모습도 직접 보았으니까.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이런 곳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인생에 결혼은 한 번이니
단점은 야나가와 물놀이라고 해도 베네치아를 벤치 마케팅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잘 알겠으나, 아쉬운 점은 많다. 무엇보다 서비스가 아날로그인 점, 이는 일본의 오랜 문제 이긴 한데 그들이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용하는데 익숙하면 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인지라. 안내를 하는 종이 팸플릿도 알아보는데 문제는 없지만
처음 보았을 때 받는 인상은
" 디자이너 좀 고용해 주세요 "
물론, 웹사이트는 정말 아름답게 꾸며놨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정보를 찾을 때 시도하는 것이 인터넷을 통한 접근이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을 고려해서 이쁘게 꾸며두려고 했던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 하지만 내가 무슨 평가를 하겠는가?
나는 관광객으로 온 것이니
타치바나 오하나
그리고 오늘의 만남은 "야나가와 뱃놀이"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영주였던 타치바나 가문의 이야기를 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들이 야나가와 뱃놀이를 하기 위해 기다리던 시간이 남아 있을 즈음에, 그 주변을 살펴본 결과 어느 한 대 저택을 발견했었고 그 대저택의 역사가 소개를 안 하고 넘어가기엔 좀 아쉬운, 그만큼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랬다.
타치바나 가문은 그 이름 명성이 의미하는 것처럼 야나가와 지방에서 가장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장소에 관한 정보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듣자 하니, 타치바나 가문은 야나가와 지방의 오랜 영주였다고 한다. 무려 400년 동안 야나가와 지방에서 기반을 쌓고 재단을 만들고 그리고 전후에는 미군정이 그들의 건물을 사용했다가 다시 그 건물을 되찾은 것은 얼마 안 된 이야기
건물을 외부에서 돌아보면서 살펴본 결과, 이 건물의 건축 양식은 서양식과 동양식의 혼용된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이 건물 자체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변화의 트렌드를 따르고 있었는데,
나는 이러한 건축양식을 이미 한번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용산
이 건축물의 건축 양식은 나로 하여금 용산의 군 시설을 생각나게 하였다. 아직까지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만약에 들어가 본 사람이 있거나 반환이 된 장소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내 말이 어떤 뜻을 의미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텐데, 서구식 건물을 따라 가 그들과 동급인 자리에서 서고 싶어 하는 그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그래도 그들을 너무 미워하진 말았으면 한다,
이들의 역사를 깊이 살펴보면 정말 애처로운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데,
이전에 방문했던 구마모토의 "가토"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센 조가하라 전투
우리야 임진왜란 이후로 일본과 전쟁의 역사는 향후 수백 년 동안 많이 나타나지 않지만, 일본은 두 개의 조직, 동군과 서 군으로 나뉘어 일본의 지배를 누가 해야 했나 하는 싸움을 했었다. 하긴, 7년 동안의 원하지 않던 전쟁은 서로를 병들게 하기 충분한 시간이었을 테니. 여기서 "타치바나 가"는 가토와 달리, 도쿠가와의 동군이 아니라 미츠나리의 서 군을 지지하고 있었다.
즉 어찌 보면 줄을 잘 못 섰었던 것, 전황은 이미 동군에게 기울었지만 이들은 아직 항복을 하지 않았었는데, 동군 측에서는 이들을 딱히 여겨 "어차피 진거 우리 편에 서라, 무의미하게 피 흘리지 말자" 하며 항복을 권유했지만, 그는 "의리를 저 버릴 수는 없다" 하며 거절했었다. 이는 오히려 가토의 입장에게서는 호감을 샀었는지, 결국엔 죽지는 않더라도 쫓겨났다가, 부흥을 해 다시 한번 돌아왔다는 일화 가 전해진다
이 무슨 드라마예요?라고 묻는다면, 정말로 그런 가문이다
. 이 타치바나 가문의 스토리를 듣다 보면 남자로서의 로망이 불타지 않는가.
이건 오래전의 이야기이다만, 또 근대에 오게 되면, 또 이 타치바나가문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바로 전후 미군정이 들어섰을 때, 본인들이 건국하고 이룩한 것들을 모두 빼았겼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족들의 힘을 한 곳에 모아서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으로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와~ 메데타시 메데타시
오하나 저택, 그 저택의 크기는 웅장하며, 주변의 야나가와 시에도 타치바나의 동상도 있는 것이 보면, 생각을 깊게 할 필요가 없이 어떠한 의미인지 충분히 전달이 된다. 심지어, 건물 내에는 연못까지 만들어 놨으니
이런 집을 가지려면 몇 대를 거쳐야 하나, 이런 생각과 함께, 야나가와의 뱃놀이를 체험하러
다시 이동하며 이번 편은 마무리
사연 없는 집안 없고, 드라마 없는 가족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부의 사정은 매번 다르기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의 기반을 다진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드는 이 애틋하며 표현이 불가능한 애매모호한 감정이 좋기에 이런 스토리를 매우 좋아한다.
본래, 가진 게 많은 자들이 드라마가 있는 법
심지어 본가도 아니고 별장이야
야나가와 미하시라 신사
대형 다자이후 오미쿠지와는 달리, 소규모 소상공인의 모습을 띄고 있는 야나가와 근처에 있던 신사, 물론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이 된 것처럼 딱히 참배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키고 있었지만, 굳이 구태여 이 벚꽃나무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 지역의 신에게 한번 인사 올리옵사. 100엔짜리 오미쿠지 뽑았더니.
"뭐야, 대길을 주시네"
"아고, 형님 외국인한테 대길을 주시면 우짭니까요 근데 이왕 준거 감사히 받겠습니다"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를지언정, 대길을 뽑았다.
아니 원래 대길이 많은 신사인가?
기준이 좀 다르신 건가 왜 그런 거 있잖아
아침에 100원을 줍는 걸 운이 좋다고 하는 거고 로또에 당첨되는 것도 운이 좋다고 하는 것인데, 둘 다 운이 좋은 것이며 그 기준이 다를 뿐. 다자이후는 정말 큰 신사라서 사람들이 로또 당첨되길 원하는 마음과 비슷하게 가는 것이고, 이런 작은 신사에는 크진 않지만 소소한 행복을 바라시는 분들이 오는 것인가?
뭐가 되었건, 여기에 계신 분은 나에게 크게 성하라 말씀을 해 주 셨으니,
인사라도 올리는 게 예의, 받는 게 있으니 돌려는 주어야지.
그러한 인사를 뒤로하고,
야나가와 속의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
참 ! 오하나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비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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