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근본 없고 위아래도 없고 우당탕탕인 우여곡절속에 여행을 마무리 했으니, 그 여정의 기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기록을 하기 위해서는, 그때 우리가 방문했던 식당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말하듯이, 이는 우리의 조상님들도 당연시 여겼던 이야기니, 후손인 우리도 그 말을 따라야 함은 당연치사. 먹는걸 잘 먹어야 구경을 잘한다
100엔~ 200엔의 가격으로 다양한 초밥을 맛볼 수 있다. 한 팩 가득 초밥을 담으면 대략 1200엔정도의 가격, 12000원의 초밥의 행복, 들어가면 어느정도 웨이팅을 할 각오는 해야한다. 그러니 전략적으로 움직이자. 점심시간이 시작되기전에 가던지 아니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움직이는게 중요하다
일본에서 "형"을 만난장소, 이름이 말해주는 프리미엄이라는 "고급진" 식당이라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각각 칸막이 방도 있고 친절하시고 매너도 넘친다. 고기 사진이야 본편 14편참고.
후쿠오카의 다수 편의점
우리의 식당
돈이 없는데 식당가서 밥을 먹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편의점이 우리의 식당일지니. 의외로 가격대비 괜찮은 것이 많다. 아침일찍 일어나 6시나 6시 30분즈음에 출근을 준비하는 일본의 회사원들이 구매하는 것을 똑같이 구매해보면, 그들의 고충을 적잔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를 만나는 이야기는, 어느 한 게임에서의 인연으로부터 시작을 해야 했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나에게 있어 용기를 북돋아준 존재였기도 하였고, 당시에 게임에서 만난 게임회사에 다니는 (다른)형(당시 28살) (지금은 본인 사업하심)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만나게 된 (또 다른) 형이었었는데 (당시 24살/해군 부사관) 이런 사람이 군대가 X 같다면서 전역을 해버리고
학위를 따시더니만 일본에서는 연봉 달달하게 먹으면서 개발자를 하고 있으니 사람이 호감이야 호감이 안 생길 수밖에, 물론 그 사이에 실패하고 좌절한 이야기를 아끼는 동생에게 분명하지 않았음을 인지는 하고 있으나,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상호 간의 예의랬다.
이 형은 일본에 가기 전, (당시 2022년) 내가 군에 있었을 때 면회를 한번 왔던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한창 코로나로 인해서 바빴던 시절이어서 그의 심리가 어떠한 심리를 가지고 있을지 이해를, 아니 그닥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있었을 때인데, 못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가 X 같아 전역을 한 사람이 동생을 보겠다고 또 다시 그의 발길을 돌려, 한 없이 그에게 폭력적이었던 집단이었던 "군대"로 면회를 온다.라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나를 소중히 여겼는지 알만한 대목이라고 난 생각한다.
물론 이 철없는 동생은, 이런 감정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달아.
"군에서 나를 보러 왔으니, 나도 형을 보러 후쿠오카 까지 가겠다"
하는 "받은 게 있으면 늦더라도 반드시 돌려준다"라는 철칙을 지키고자 떠난 후쿠오카 여정이었으니까.
일본에서 자리를 잡느라 바빴던 그는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시간이 났다.
일본에서도 잘 적응을 하였는지, 아니 뭐, 군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버티신 분이 고작 일본을 견디지 못할까.
삶의 경험치가 다르다는 것은 깊이 느낄 수 있었는데. 한국 전화로 형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어 채팅앱인 디스코드를 통해 통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사건은 벌어진다.
형 가게 도착하면, 쉽게 찾을 수 있게 가게 앞에서 손들고 있어봐요
"니 어린데"
"?? 이미 올라왔는데요"
"이 시발"
"니 새끼 나한테 손들고 있으라며 먼저 들어오나"
"그렇지만 배가 고팠는걸"
아무튼 겨우겨우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서빙하는 로봇이 있는 불고기집. 전화로 예약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 웨이팅을 넣어두고 온 것이라 시간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보는 시야
만나자마자 날라오는 욕설
이 X새가 손들고 있으라매 지혼자 들어오노 X새끼가
일본 한복판에서 손들고 있는 남자 됬다 아이가
삶의 변곡에서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일본에 있었고, 후쿠오카라는 타지에서 괜찮은 수급을 받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의 독기를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의 눈매에는 보이지 않는 독기가 서려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굳이 그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멍청한 동생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멍청해야 하는 법,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으니.
몇 가지 멍청한 소리를 해주면서 변함없는 동생의 모습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분명 본인이 걸어온 길을 걷는 이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이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며, 또한 설령 그 고통을 겪더라도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러니까
드디어 만나는 야키니쿠(불고기)한국의 불고기와 일본의 불고기는 그 결을 달리한다산토리 맥주 - 맥주공장을 다녀오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우동 (내 뇌에 들어있는 것 ) 

인생이 어디로 갈 지 모를때, 고기를 먹어라 하는 말이 있다.
한창 고기를 먹으면서 그는 마지막 열차를 잡아 떠나야 했기에, "고기 먹기 타임어택"을 해주시고 값만 치르고는 집으로 갔다. 저번에 만나고 싶었을 때도, 분명 쉬는 날인데 서버가 갑자기 터져서 회사로 가시더니만 이번에는 막차를 놓치면 안 돼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곤 한다.

다시 항구로...
이제 돌아가자, 후쿠오카에서의 일은 다 보았다 아침은 간단히 맥도날드에서 해결했었다
Big Mac 다시, 한국으로
배를 타고 일본에 간다는 것은 나쁘지 않았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워낙 엉뚱한 기질이 있는 "나"였어서, 어떠한 교통수단을 타던지 만족했을 것 같은데, 혹자가 말하길 "배를 타는 것은 비 효율적이에요, 시간도 더 걸리고 스트레스도 받아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답하길 "그래, 그걸 원하는 거니까"라고 답하겠다. 시대가 아무리 비행기보다 빠른 초고속 열차가 나오고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할지언정. 내 답은
색다른 경험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지난 2년간의 보상을 찾고 싶었다.
물론, 이성적인 사람은 당신에게 2년간의 보상을 주어야 할 대상은 당신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그곳에 넣고 당신의 생각의 근간마저도 바꿔버린 "국가"에게 있다고 말하기야 하겠지만은, 나는 답한다, 어쩌겠는가 젊은 2년 동안의 헌신을 보상하지 않는 것은 오랜,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며, 그 사랑이라는 것이 이제 와서야 병장월급 200만 원이다. "군대 좋아졌다."라고 말로 위로를 하고 있지만서도
마지막 날의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나, 근처의 식당들을 방문했던 이야기도 빼먹었고 그리고 일본에서 만난 형의 이야기도 아직까지 안 하고 있는데, 여행은 여행대로 음식은 음식대로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 대로 구분해서 작성하고 자하는 의도였었다. 사전의 말을 안 해준 점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13편은 여행의 마지막이 되겠다.
처음 이 글을 작성할 때에는 후쿠오카 여행이 너무나 흔한 일이라, 다른 사람의 여행 블로그를 더 많이 읽지 왜 굳이 나의 후쿠오카 여행이야기를 볼려고 하는가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듣자 하니 "정상이 아니라 좋네요" 이런 것이랬다.
여러분께 감사함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돈키호테
아무튼, 각설하고, 마지막날은 돈 ~돈 돈~키 호테~ 를 가는 것이었는데, 일본에서 돈키호테라고 하면 잡다한 것들이 많은, 잡상인 팽귄. 한국에서도 이 돈키호테의 마케팅 전략을 착안하여 피에로 샵이라는 것을 운영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적인 감상에 맞지도 않아 금방 사라진 것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야기.
돈키호테는 기억상에 건물 전체가 매장이었다, 듣자하니 돈키호테 후쿠오카 텐진 "본점"이라는 점, 즉 당연히 크기가 클 수밖에 없는 공간이랬다. 5층의 크기인가의 건물이었는데. 3층에서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내 기억이 잘못되어 있거나. 지하는 식료품 매장이 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이게 안내를 100% 믿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 가끔은 뜬금없는 곳에서 물건이 나와서 딱히 원하는 물건이 없으면 전체 층수를 한번 스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저녁에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에 방문하고 저녁에도 방문하는 일, 이 돈키호테를 우리는 그렇게 방문했다.
돈키호테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은, 역시나 성진국의 나라 답게 성인 용품들이 대 놓고 진열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마음속 유교아저씨가 "허허 , 역시 일본이라는 곳은 이런 공간이옵시다" 하면서
당시 내 마음속 아저씨
잉 쯧쯧 하면서 동전 파스랑 안약이나 구매해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가는길
10년 전에 일본을 방문한 적 이 있었는데 그때와 다른 점이 하나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은 유지 보수의 장점인 것인지 아니면 발전이 없는 단점인 것인지 그 악명이 말해주는 듯한 복잡한 구조를 띄고 있는 돈키호테였지만, 면세가 되는 매장 중에 이 정도 큰 매장은 없기 때문에 방문한 후쿠오카의 돈키호테 되시겠다.
선크림이나 사 오라는 말에 어떤 것이 선크림인지 몰라 산 물건은 선크림 회복로션이었고, 정말 다음에 올 때는 일본어 공부 좀 하고 와야겠다 하는 마음만 남았었다. 언어를 몰라 나 스스로가 잘못된 것이니 속이는 사람이 없지만, 내 스스로에게 속아 나 자신마저도 믿지 못하는 이 느낌은 정말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치욕스러우니,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방문하리라
돈키호테에 빨려들어가면 나오질 못해
(옆에서 짐 싸는 친구)
이 새끼는 왜 지혼자 갑자기 기분 안좋아졌지
(이후 친구와 원만하게 합의했습니다)
후쿠오카 항구
후쿠오카 항구에, 첫날의 도착을 후쿠오카 항으로 한 것이 있었으나 관광객으로써 후쿠오카 항의 도착하는 것은 정말 기분이 이상해진다. 우리가 도착할 때 쯔음에는 밤이었어서, 버스를 겨우 타고 숙소로 돌아가 그 주변을 관광할 상황이 안되었는데, 이제 낮이 되어 관광을 하자니 당연히 느낌이 이상할 수밖에.
후쿠오카 항
또한 건물 또한 색감이 워낙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서 어린이 놀이터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체험하러 오시는 분들이나 관광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거부감 없이 접근하기 위해 이렇게 디자인된 것이겠지.
일본에는 실제크기의 건담이 세 장소에 존재한다, 하나는 오다이바의 건담 ( 고등학교 시절 가고 싶었지만 가질 못했었다)
다른 하나는 후쿠오카의 건담, 그리고 마지막, 요코하마의 건담. 아마 건담 팬들이 아닌 이상, 어떤 건담이던지 간에 그냥 거대한 로봇이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는데, 건담에는 그 건담만의 철학과 역사가 있다. 전쟁의 역사와 어른들의 사정을 아이들이 보기 쉽도록 만든 그 이야기만큼은 나는 사랑하는데 후쿠오카에 자유여행인 이상 가야 할 의무가 있었다.
분명 특별할 것이 없는 버스 정류장의 길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어렸을 적에,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던 그 감상이 떠올라 순간 사진을 찍었다.
인간은 역시 기억의 노예, 지금 다시 보면 별 의미 없는 사진이지만 소개하고 싶었다.
뉴 건담 좋아
후쿠오카 라라포트에는 건담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도 많았었다
물론, 이 게임들은 고인 물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 같은 초보자가 호기심에 건들었다가는 돈이고 기분이고
눈물만 남기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니 그냥 보기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뉴 건담과 사자비라니
사진만으로도 전달이 곧 잘 안 되는 감동을 느끼려면 실제로 방문을 해야 한다,
이 장소에는 건담의 팬이라면 정말 감정 복 차오르는 디테일을 모두 고려했으니까.
후쿠오카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방문하면 좋겠다
만다라케 후쿠오카
스트라이크 위치즈 반갑고
만다라케를 방문함은 친구의 피겨를 사기 위함이었는데, 그와 동시에 이들의 마케팅 전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카운터에 엄청 이쁜, 왜 인형이 있지? 하고 구경 갔었는데
아르바이트하시는 분이었던 것.
이 사람을 보기 위해 오타쿠들도 만다라케까지 와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겠지. 그만큼 정말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였었다. 물론 나 같은 "파오후 금척굼척"은 적당히 예전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 사람은 이미 나 같은 사람을 수백수천이나 상대하느라 피곤하실 터이니. 자리를 피해 주도록 하자
옛날 애니나 찾아봐야겠다 하고 찾은 "스트라이크 위치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게된 것도 여러 가지 이야기도 담겨있고, 이 작품을 시작으로 "시마다 후미카네"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작품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회상의 잠길 수밖에 없는 샘 , 이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이는 나의 IETLS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일단 IETLS 란 쉽게 말해 해외 대학(영연방계열)을 입학하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통과 의례 중 하나이며 보통의 "영국" 계열의 대학교에선, 이 점수가 완성이 되어 있어야 입학을 받아준다.
이 시험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많은 이들이 듣고 알고있는, 미국이 TOEFL이나 GRE를 통해서 대학원테스트를 진행하기때문이요, 영국은 IETLS, 한번 보는데 무려 30만 원이나 들어가는, 꽤나 비싼 시험이다. 국제학생들이나 해외 대학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서 모른 적이 없는 시험서적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총알의 한발 한 발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나는 이미 IELTS 를 군대를 전역하고 보았었고, 3번째 시험을 치러둔 상태였었기 때문에 이 시험의 Writing의 악명에 관해서는 이미 익히 듣고 있었다. 일본에 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 학업의 신이라는 분을, 나의 소망을 일본의 신이 들어줄 리는 없겠지만은 그래도 동아줄하나 잡는 느낌으로 인사를 올리러 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영국 시험이니까 섬나라끼리 서로 친할꺼 아냐?
??: 아니요, 이 둘의 관계는 영국동양함대 궤멸이후로 사이 나빠졌어요
아뿔사!
결과는 4월 중순에 나오기 때문에(당시 3월),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받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 축하여행이 될 것이고, 이 시험의 불합격을 받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이 여행이 불합격의 위로여행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었고.
결국, 그 사정을 아시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정성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외국인은 안 받는다는 그이의 마음인지 아니면 전 세계 사람들의 기도로 인해 업무적으로 피곤한 나머지
분명 재수를 하거나 삼수를 하거나 여러 가지 수험을 앞에 두고 있으신 분들이 대한민국 신에게는 빌기 좀 부끄러워서 일본신에게 간절히 바라던지 아니면 그냥 관광으로 "오~ 다자이후라는 곳에 있어서 가보니까 좋던데~ "
이렇게 가시는 것이던지
그 의도와 명분이 어떠하던, 그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다자이후에 계신 분이 알아서 하실 것이고.
(보아하니까 신사도 더럽게 크더구먼 이 정도 크기면 좀 들어줘라)
외국인이라고 외국말 한다고 이해 못 하실 분은 아니고
오랜 기간 동안의 경험으로 대충 눈빛만 봐도 누가 잘될지
아니면 누가 안되실지 아시는 분이겠죠.
그 전지 전능한 신이라고 하시는 분이 말입니다.
이 열차의 감성이 수 많은 철덕을 만들었겠지
일본이라는 장소까지 와서 이렇게 심정이 복잡해진 이유로써는 일단은 내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를 믿고 있지 않는 주제에 왜 다른 나라의 신에게 이렇게 각박한 이유는, 아무래도 그냥 좀 아니 꼬았기 때문.
그래 뭐 신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당신은 나쁘지 않다. 원망을 할 거면 우리 사이의 역사를 원망해주십사
당신은 죄가 없어
이라는 마음을 갖고 다자이후로 향하는 길
일본의 신사에 갈 때마다 가지는 마음가짐
타국의 신에게 고개 숙이지 말고
한국인으로서 동급으로 온 것이니 참배는 하지 말자
그래야지 이 X들이 지들 위치를 알 거 아냐
1910-1945 조선 신궁
(이제 와서 우리가 자의로 고개 숙이면 타의로 고개 숙였던 조상님에게 볼 면목이 없다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
다자이후 옆에 있던 작은 신사
고즈넉한 일본의 하늘, 이런 감성이 사람들을 일본으로 끄는 거겠지
다자이후 에서 내리는 열차, 외관은 다자이후를 위해 꾸며져있었다
이 다자이후에 오면서 두 가지 일화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는 일본의 열차표 시스템에 곤란에 빠진 사람을 돕는답시고 나섰다가,
그 문제는
어라???? 우리도 모르는데요
하고 죄송합니다 하고 도망갔던 것이요
두 번째로는 이 일본의 열차의 감상에 빠져 내릴 곳을 착각해 정말 생판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인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장소에 버려졌다는 것.
물론 이것은 스마트폰이 아니었다면, 즉 2000년대 초반이었다면 당혹스러웠겠지만,
우리는 핸드폰에 의존하는 자유의지가 없는 좀비 같은 존재.
덕분에 잘 빠져나와 다자이후로 오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 이야기는 이 글의 마지막 지도가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군 생활의 스트레스로 찐 이 살들
다자이후의 입구에서 찍은 멋쩍은 사진, 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사진을 그렇게 까지 찍고 싶지는 않았는데 친구가 제안을 했었고, 두 번째로는 다자이후의 메인 건물이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2년 동안의 군 생활 속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통역은 사진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적혀있던 걸로 기억해 그게 몸에 익어버린 것도 있었다. 그리고 보다시피 얼굴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패션도 그렇고 워낙 많이 망가진 상태였어서 기록을 남기기가 싫었다. 웃긴 이야기지만 막상 지금 사진을 찍힌 모습을 보고 있자 하니 찍어서 나쁠 게 없었다는 감성이 드니, 역시 나는 뭔가 직접 해봐야지 아는 스타일인가 보다
다자이후 - 후쿠오카이 고즈넉하고 나른해지는 일본의 감성만큼은 싫지가 않다
많은 이들의 시험의 소망이 있는 곳
한국인들도 많이 와서 적어 두시고 가시는
일본의 신사
잉어
잉어 2파오후 굼척 굼척다자이후의 입구는 화려했다
봄 향기를 맡으며 가는길
일본은 입시철이 아니고 입학시즌이었기 때문에,
찾은 관광객 분들은 대 다수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우연찮게도 한국인 단체 관광객분들과 만나 중간에 대화도 좀 하고 옆에서
안내를 해주시는 분들을 천천히 거리를 두면서 따라가면서 관광을 했었는데.
나쁘지 않은 인연을 이어가는 것 같아 좋았으나, 어디까지나 연락처를 주고받지 못하고 그냥저냥 떠나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