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저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이겨내고 버텨내고 경험을 쌓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하루를 살고 하루를 죽는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의 가치를 잊지 않고 그다음 날의 밝은 미래를 꿈꾸면서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멈추지 않는 시계가 나를 압박하기보다는,
나에게 응원을 주는 하루가 되는 시기들을 반복하고 있다.
검도도 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나 스스로의 생각적 토대를 닦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날이 언젠가 끝나기를 빌면서
조커 게임을 처음 감상하게 된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인데, 2016년 즈음에 감상을 완료했으니 이는 벌써 근 9년 전의 일이 된다. 무려 9년 전의 작품을 다시 한번 보게 되어, 이전과 다른 나의 마음가짐으로 감상하는 조커게임이 나에게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적어보는 독후감이다.
초등, 중등, 고등 과정속에서 건담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었을까. 재래식 병기나 혹은 전략이나 전술에 관한 관심이 매우 높았었다. 이러한 성장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2차 대전의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모든 밀리터리 덕후가 겪어온 과정 중 하나였다.
그러한 , 밀리터리와 오타쿠가 합쳐진 삶을 살아온. 단어의 조합만 들어도 몸무게가 150kg 은 넘어 보이고 군대는 정신적인 장애로 면제를 받아 인생을 쉬운 길만 갈려고 하고 회피만 하면서 도망만 가왔을 거 같은 인식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은 20대 후반의 길로, 군대를 우여곡절 없이 전역하고, 예비군도 이제는 2년 차에 들어가면서 호주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것이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중간 과정에서 여러 우여 곡절이 없던 것은 아니다. 세상물정을 모른 채 피해망상을 가져 도망만 다니던 삶은 청산하고 좀 더 주도적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며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는 조커 게임과 관련이 없고, 생각의 흐름이 더 이상하기 전에 시작하는 조커게임의 리뷰
책이 출판된 날은 2008년이다, 애니메이션이 세상에 탄생한 것이 2016년이니. 세상에 빛을 보고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까지 8년이 걸린 것이다. 나무위키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애니메이션 + 전쟁 + 잘생긴 남자 들어 ㅣ등장이라는 주제 때문에 "우익" 애니메이션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하물며 일본 애니메이션 1화 2화만 해도, 한국인이 싫어하는 "일본 순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한때 많은 이야기가 나왔던, "소니코 애니메이션"
물론, 훌륭한 시청자들은 모든 것이 "우익"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고 나는 알고 있다. 애초에, "우익" 논란이라고 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비판하는 마음을 갖고 "끝끼지" 감상하는 행위 자체가 모순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2010년대 초반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청자들은 그때 당시의 감성이 그러했으니 말이다
애니메이션 또한 이야기의 시작이 쇼와 12년(1937년) 이야기임을 강조하면서 시작된다,
조커게임 도서,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책으로 담고 있다
배경
세계 대전의 불씨가 되살아난 쇼와 12년(1937년) 가을, 제국 육군의 유키 중령에 의해 스파이 양성 부문 'D 기관'이 극비리에 설립된다.
본토 출신의 군인을 존중하는 육군의 풍조에 반하여 기관원으로 뽑힌 것은 도쿄와 교토에 있는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초인적인 선발 시험을 아무렇지 않게 거친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마술사 같은 지략을 가진 유키 중령에게 폭약과 무전 조작법, 자동차와 비행기 조종법은 물론이고 소매치기, 금고털이 기술에 이르기까지 스파이 활동에 필요한 온갖 기술을 익히고 임지(任地)로 떠난다.
「죽지 마라, 죽이지 마라」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스파이에게 자결과 살인은 최악의 선택지라는 D 기관은 육군 중심부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아도 아군을 속이고 적의 의표를 찔러 세계 속을 암약한다.
도쿄, 상하이, 런던……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인텔리전스 미스터리.
사담
"돈, 명예, 국가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사람의 죽음까지도 모두 허구다. 제군의 미래에 기다리는 암담한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제군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매 순간 변화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의 재빠른 판단능력뿐이다."
물론, 나는 어느 나라에 파견된 정보요원이 아니다. 그저 말을 해야 한다면,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잊지 못하는 영혼일 뿐이다. 머나먼 타지에 있으면서, 이 나라의 문화나 역사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의 소속감을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타인으로써 위로해 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친한 친구의 장례식장에 위로를 해주러 가는 모습으로 내 형태는 호주에 남아 있는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한국이 있을지, 아니면 지금 내가 거주하는 곳이 있을지는 나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면서 그 영향력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마음을.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나는 "한국인"이다. 지금도, 아침마다 호주의 소식, 교통이나 날씨의 소식보다. 한국의 정세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뉴스를 확인하고 있고. "한국인"의 입장으로 미국이나 타국의 모습을 관찰하고, 나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 조국을 위한 최선의 판단을 하고 있다.
이는 분명, 나의 아이덴티티는 이 나라에서 살게 되고 죽게 되어서도 한국인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일말의 두려움이 작게 남아 나를 옥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제는 "별 상관" 이 없지 않나 하는 마음에, 내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는 선택이 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긴 하지 말이다. 지금도, 나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는 이야기를 할때에도 무의식 중에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는가?
"꽉 막힌 사고 방식"
내가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결국엔 나도, 누군가에게 타협하지 않는 사람임을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