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이 글의 제목은 군이라는 공간을 요약하는 제목이다. 그 공간은,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더러운 일을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하는 장소라는 것 말고도 , 정신적으로 부담되는 일도 자신의 임무인 만큼 해야 할 때가 많으며, 이 정신적인 부담이란 내가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하게 되는 일들이 태반이며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그런 장소이다. 난 이러한 일련 상황을 지켜보았때, 영화 Fury에서 전차장인 War Daddy가 신병에게 적군 포로의 등에 총알을 박아 넣으라는 말을 신병이 전쟁에서 적응을 하기 쉽도록 충격요법(galvanize)을 "배려"해주는 장면이 곧 잘 생각나곤 했다. 

 

 누군가의 입을 대신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들이 많다, 욕도 본인이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먹어야 하는 일도 많으며, 분노도 누군가를 대신해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런 억울한 상황 속에서, 어떠한 이유 때문에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고 설명하기보다는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상황을 무마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 뒤에 돌아오는 사람들 간의 인간관계를 후에 정리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을, 당장은 모든 책임을 지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그나마 어른스러운 행위다. 혼내기 싫은 일도 아니 혼내야 하는 일을, 싫은 소리 하는 상황 속에서 좋게 타일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좋게 타일러 가르침을 주는 상관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책임을 부하에게 덮어씌우고 자신은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경우가 그나마 감사한 상관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당신의 군생활에 심심한 유감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러한 관점에서 Fury 에서나오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을 때, 훌륭한 군인의 모습도 아닌 당장 만난 인연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은 빠르게 돌아가는 군에서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병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충격요법으로 전장에 빠르게 적응을 시키는 것이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생활관에서는 내가 그곳에 있었을 적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었던 지라, 누군가 혼내는 것을 싫어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그냥 내가 먼저 가서 혼내는 경우가 잦았었는데, 이는 부대에 있는 다른 간부한테 혼나기 전에 사전에 그 앞에서 내가 먼저 혼냄으로써 상황을 미연의 통제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에게는 단순히 못된 선임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가끔은 이러한 상황이 연출될 필요는 있었다.

 

이제 사무실에서는,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나는 막내 중에서 막내, 여기저기 불려 가는 삶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입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군 측 간부들이 가끔 깜박하는 순간이 많아 그 대화내역 중에 자신이 상한 감정을 그저 전달하는 메신저인 통역에게 쏟아내는 경우도 많았었는데, 별도리가 없이 그것을 들어주는 것도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말을 평생 군이라는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간부들이 듣는 것보다는, 일종의 소모품인 우리들이 듣고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이 행위자체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자동차의 범퍼가 된 것처럼, 간부님들 입장에서는 나의 역할은 충격완충제였지만, 나의 입장에서 나의 역할은 충격을 그대로 받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몇 번 흘려주고 다시 한번 업무를 시작하는 것을 일병 때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병사들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부에서는 "당신들의 행위가 작은 외교관임을 알고, 국가를 대표함을 알고 항상 행동에 주의할 것"이라는 지침을 내리곤 했었는데, 이 말은 병사들을 생각한 게 아니라 당연히도 간부들을 더 생각한 것이었지만, 그 말을 들었을때 들은 생각은 역시나 "윗사람들은 알리가 없다. 보여주는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근간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부면 "그건 너네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렇게 말을 하겠지. 

 

 

적당히 보여줘야지 그들은 만족한다

 


내 직속 통역장교님이 딱 그런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열정적이고, 자상한, 한 명의 아버지라는 생각이 드는 그의 존재지만, 군에 와서는 그러한 것은 필요 없이 FM을 좋아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좋아하는 도전정신이 넘치는 특전사령부출신의 남자였으니까. 그와 달리 "적당히 적당히 하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최선을 다해" 하는 나의 스타일은 맞지 않았고, 상관인 그에게 맞추기 위해 때로는 자처해서 초과근무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하였다.

 

그에게 사람취급을 받는것은 병장이 되고 나서야 일이었다고 난 생각한다. 덕분에 문장이나 단어의 조화가 맞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병이 생겨버렸으니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양날의 검인 그 장소, 군대라는 장소를 내 동생들에게는 반드시 가라고 하는 편이지만 막상 가게 되면 내가 걸어온 고통의 길을 걷이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물론, 내 말을 듣고 안 듣고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달려있지만 말이다

 

 


지금도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이 3명 정도 되는데,

사고만 안치고 변하되 너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장소다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후쿠오카의 셋째 날 이야기"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전역하고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이야기 6편

후쿠오카 여행은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후쿠오카 온천의 이야기"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전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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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악조건 (사실 악조건이라는 것도 아닌 게 자기가 만든 것임, 평소에 잘했으면 이런 일 없었음)을 이겨낸

우리는 역전의 용사들 이었다.

본래 오늘 만나기로 했던 "형"은 회사의 서버가 터지는 바람에
서버 복구를 위해 그의 발걸음을 옮겨야 했었고,

매번 언급만 되지 나오질 않음, 일본의 서버를 책임지는 남자


그를 만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온천까지 즐기고 나면, 배가 고프길 마련
안 그래도 나른하게 만들어진 정신상태에 경계태세를 다시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음식을 향한 갈망은 첫째 날 보다 더 심했었다. 
 
그래서, 이 짜증을 풀기 위해
(친구는 생각하지도 않고 계속 자기만 생각함)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근처 식당에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유명한 식당들은 이미 사람들이 많았었고
그런 식당에서 사용할 정도의 돈과 시간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남들이 가본 장소를 굳이 또 한 번 가자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한 생각의 끝에 도달한 곳은 어느 지도에서도 표기되지 않은 일식당이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안 되긴 하는데 점포명이 나오지 않음, 혹여나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남겨달라)
 
처음 배를 타고 떠나는 우리의 여정은 한없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들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잠겨
 
생각해 보면, 비 상식적인 일들이다.
여행이란 본디 계획으로 해야 하는 것인데
그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인 이번여정 
 
첫날에도 술을 마시긴 했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술을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기도 하며
술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고 빠르게 취하는 나로서는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는데
(맥주 500ml 이상 마시면 응급실에서 리스폰)
 
어디 한번 일본의 의료체계를 믿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온 술집
구글 지도에서도 곧 잘 나오지 않는 곳에 있는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기록 외의 공간
이 상황 자체가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마음에 쏙 드는 상황
내가 모르는 것을 마주하는,

아니 설령 계획을 짜고 왔다면 겪지 못했을 경험
길이 나는 대로 걷다 보니 나오는 장소
 
이러한 분위기는 나로 하여금 더욱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게 한 것 같았는데

 
그 상황을 묘사하자면 작은 술집이었다

애초에 외국인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고
처음에는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음식을 먹으니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우리를 안 좋게 쳐다보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인 손님을 싫어하셨던 것인지 
사장님은 젊은 30대 중반의 모습으로 보였었고

외국인인 우리를 경계하는 듯인지 아니면 어찌 반응해야 할지 좋을지

매뉴얼이 없어 계속해서 쳐다보는 듯했지만
 
나중 가서는 자릿세(일본은 가끔 자릿세를 내야 한다)

포함 대략 7천엔 가량을 자리에 앉아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보아하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장님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게 되었다
 
식당의 모습은 벽에 사진과 어디서 받은 지 모르는
Certificate, 인증서들이 보이기도 했다.


일본어로 적혀있어 뭐라고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날 매출의 15% 이상은 우리가 책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친구가 먹은 카레우동


당시 먹은 닭갈비 사진과 친구의 카레가락국수
 
기억에 남는 것은 매운 닭갈비
 
친구는 매운 것을 좋아하는지 먹어보고 맵지 않다고 말하여
 
구랭? 나도 먹어야지 
하고 입에 넣은 순간 터지는 순간의 매운맛
 
그렇다
매운 닭갈비란
 
닭갈비를 양념에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캅사이신에 담갔다 한번 뒤집은, 캡사이신 덩어리였던 것
거짓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속이는 마음도 없었을 터인데
 
이 매운맛은, 나로 하여금 친구를 향한 배신감이 느껴졌었다
(? 양아치네 이거)
 
너무 매운 나머지 물을 찾으면서
친구를 주먹으로 때렸는데
(이 문장에 거짓은 없다)


음식 위에 올라가 있던 것은

사실 캅사이신 가루들이었고
일본인 기준에서 매운맛은 한국인에게 맵지 않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먹은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것이었다
 
 
사장님도 그 모습을 보더니만

웃음을 참지 못하시고
빵 터져버린 그 상황


 
이 가게의 직원분들도 어느 정도

나의 성격을 파악했을 즈음에
매워 죽어 가는 나를 구원한 것은 맥주였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없지만,

그 이후의 쾌락을 위해서 고통을 일부러 느끼는 것
이후의 보상을 충분히 전달해 주었는데


그래도 그 매운맛 속에서 억울한 감정은 어디 가지 않았었다.
(이분 안 나온다고 친구 버리고 가고 매운 거 먹었다고 사람 패고 인성문제 있는 거 같은데)
 
그 상황을 즐기고 있던 친구는 말없이 웃기만 하고 있었는데
(내 기억상)
지금 와서 물어보았을 때 그의 답은 명확하였다
 
물론 훌륭한 교우관계에 사이에서 서로 미안한 마음
서로 간의 감정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온

나로서는 그냥 넘어가는 해프닝이었지만 말이다
 
친구끼리는 사과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서로 다름을 매번 알려준 친구가 있어 고마운 이야기지만)
 
서로 말없이 이해하고 나중에 배로 갚으면  그만인 이야기
 
당한 것이 있으면 돌려주고
받은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려준다

야라레타라 야리카에수


 
한자와 나오키식 운영
(일본 하면 좋아하는 드라마)
 

그렇지만 당신은 당한 것도 없는데 친구를 버리고 가고 매운 거 먹었다고 사람을 팼잖아요! 

조용히 하세요
 
아무튼 그런 즐거움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숙소로 짐을

마무리하면서
 
그날의 잊지 못하는

맥주공장
 

 

전역하고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이야기 5편

후쿠오카 여행은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기린 맥주공장입니다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해 주십사 전역하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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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어디를 갔는지 설명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날의 하루가 너무 즐거웠기에
남아있는 사진이 많이 없다

 

 


당시 식당을 향한 우리의 여정

 

가게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제일 아쉽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미군은 오랜 전쟁의 경험으로 수많은 실전 경험치를 얻었다. 덕분에 천조국이라는 별명과 함께,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막강한 군사력의 나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군 생활동안, 인터넷이나 TV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아직도 난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높은 계급을 두려워하지만, 난 두려워하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나의 소속도 있었지만 사람의 계급을 무서워하지 않는 나의 성향도 있었다. 이런 성향은 군에서 있어야할 사람이 아니지만, 어찌 되었던 국가는 나를 불렀고 나는 그 부름에 응해 복무를 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외로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 붙은 고체 연료에 몸을 녹이고 있었던 그와 나의 이야기다.

그저 담배로 완성되가는 인연

그의 모습이 마음 한켠속에서 궁금증이 생겼던 나는  

 

 

"Ah yes sir, What kind of reminiscent makes you want to smoke?"

아, 있고 말고요, 어떤 즐거운 추억이 담배를 피우게 할렵니까

 

그는 나지막이 웃으면서 

"Bullshit"

개소리

 

그러면서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키는 그의 모습에

시멘트 주차장 턱에 주저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앉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Oh sir, don't treat your alliance like that" 

동맹국을 그리 대해주진 말아 주시옵사

 

그는 그 말에, 다시 한번 내 군복을 보고는 눈이 커지시더니

 

 

 

"Ah, I thought you were one of us, where did you get your English?"

아 우리 편인줄 알았지, 영어는 어디서 배웠나?

 

나는 게임에서 배웠다고 말을 하진 못하였고

 

"taught by myself, and Uni sir"

혼자 자습했죠, 대학이기도 하고

 

그는 대학이라는 말에, 생각에 한편 잠기더니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한번 더 피웠다.

다시 보니 보이는 그의 얼굴,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라틴계열의 남자

그의 억양속에서 알 수 있었던것은 미국 남부 출신이었다

 

"Are you working in Korea sir or just got it from the mainland" 

한국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본토에서 오셨습니까

 

내가 묻자

 

"Mainland, the US"

본토, 미국

 

그는 그리 대답하면서, 밤하늘을 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두돈반 차량이 앞에 지나가고,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미군 병사들,

그 사이 속에 담배를 피우러 온 병사들 조차 계급을 보고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계급은 어둠 속에 있어 보이지 않았기도 하였으며,

나의 마지막 훈련이기도 하였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대화를 계속했다

 

"How's Korea so far?"

한국은 어땠어요?

 

"was good, it is an amazing country, well developed"

좋았지, 대단한 나라야, 발전도 하고

 

그런 담배 한 모금 끝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전역 후에 내 인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서 이기도 하였으며

그리고 군에 자원하는 미군들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갈, 사회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내 마음을 공감할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앞에서 타고 있는 고체연료통

 

 

"Why did you join the military?"

왜 군에 자원했나요?

 

"Heh, heh, someone asks 'the' question"

허, 이제 누가 "질문"좀 하는군 그래

 

"Because I didn't know what to do"

왜냐하면,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it has been almost 15 years"

15년 정도 되었다네

 

"I spent 6 years at the community college" 

6년 정도 커뮤니티 칼리지 대학을 다녔었지

 

"All my friends were moved on or doing their own stuff, and I felt I was left behind"

내 친구들은 모두 앞서 나아간 거 같았는데, 나 혼자 뒤에 남은 것 같았어

 

"So, I signed up for the military, luckily I could take an officer course"

그래서 군에 자원했지, 운 좋게도 학위가 있어 장교를 할 수가 있었거든

 

"And here I am, lieutenant Major, probably applying for the next promotion" 

그래서 여기에 중령으로 있지, 아마 다음번에 예비역진급을 자원할 거야

 

그랬다, 나는 지금, 예비역 중령과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예비역도 진급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었기에

그런 인연이 우리를 만남으로 이끌었고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본토에서 여기까지 날아와 야간에 배치되시면서 

피곤한 훈련의 끝에 잠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것

그때 당시와 가장 비슷한 컨테이너

"Which office do you work in, Soldier?"

어디 사무실에서 일하지, 병사?

 

"Engineer, sir"

공병입니다

 

"Fxking Shit"

 

공병가면 철 들어

이런 씨 X

 

공병이라는 말에 튀어나오는 그의 욕설,

"You are right sir" 

완벽하신 평가시네요

 

"I was an Engineer course as well when I was in the camp. I didn't like it"

나도 공병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다네, 좋진 않았어

 

"but I loved visual inspection, it is a combination with fancy words,
just looking around with a chopper"
검수하는 걸 좋아했었어, 멋진 단어처럼 들리지만, 그냥 헬리콥터 타고 돌아다니는거라네

 

"Frankly speaking, I do that for the helicopter"

솔직히 말해서 헬리콥터 때문에 하는 거였거든. 

 

담배 한 모금이 다 끝나갈 즈음에,

그는 다시 나를 보고 말했다

 

"Do you have a spare cigarette?"

남는 담배 있나?

 

주머니 속에는 사무실 중사분이 좋아하시는 담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라이터도

입에 한 개비 드리고 라이터로 불을 지펴드리면서

 

"Hope you like the mild one" 

부드러운거 좋아해주시길 말입니다

말보로 마일드 골드를 한개비 지펴드리고는 

 

"I wish I have a boy like you in my office, they aint do shit"

너 같은 녀석이 내 사무실에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지금 있는 것들은 이런 걸 안 해

 

"what you meant sir, I aint doing anything right now"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누구보다 호쾌하게 웃으시면서

 

"Attaboy, if you visit the US someday, I will show you my place around " 

재밌는 친구구만, 미국에 언젠가 오면 내 사는 곳을 좀 안내해 주지

 

"How can I return your favor? I am just a humble sergeant. please no"

제가 어찌 그런 걸 돌려줄 수 있나요, 그냥 병장인데 말입니다. 그런 말 마십시오

 

그는 이런 이야기 속에 담배를 물고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I was young as well like you"

나도 너처럼 젊었는데

 

그리고 반사되는 눈망울 속의 빛

어느 정도 조용한 시간을 가진 후에, 담배를 한 개비 같이 피고는

 

"Yes, and I'd be old like you sir"

그럼요, 저도 당신처럼 늙을 것입니다

 

그 호기 넘치는 발언에, 그는 그 상황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Normally people are intimidated by my rank, but you don't"

보통이면 사람들은 내 계급에 겁먹는데, 넌 안 그러는구나

 

"What you can do sir? I am in a different uniform" 

선생님이 어쩌시겠습니까, 전 다른 군복을 입고 있는데요

 

그러자 고개를 한번 끄덕이시더니 

 

"You are right, smart" 

그 말도 맞지, 똑똑하군

 

시간이 되었다, 쉬는 시간 15분간의 대화 담배를 한 개비 피고 시멘트 바닥에 앉아 대화를 했던 그 자리

"Sir, I gotta go back to my place, gotta translate it " 

제가 가봐야 할 거 같아서요, 번역하러 가야 합니다

 

"Oh, sorry, thank you for a cigarette" 

아 미안하네, 담배 고맙네.

 

"What's your name son? "

이름이 뭔가? 

 

"000, sir"

000입니다

 

 

"I will keep that in my mind"

내 기억해 두지

 

 

그것이 그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훈련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렀다가 자유여행을 몇 번 하고는 돌아갔겠지만은

난 아직도 이 대화가 머릿속에 맴돈다

 

맴도는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로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몰랐기 때문에

보통이면 2년 제인 Community College를 6년 동안 다녔다는 것과

일반 병사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토로해 준 그의 삶의 대한 자세가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은 수많은 통역과 번역 속의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사람의 경계심을 풀어버리게 만드는 기술을 나 스스로가

체화하고 있었을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니면 그가 단순히 대화할 사람을 필요로 했었을는지는 모르겠다.

 

선임들이 좋아하는 담배부터 시작해서 사무실 속 간부님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모두 파악해 둔 상태에서 

운이 좋게 남아있던 담배 한 갑이 그에게 적잖이 감동을 주었을지는 모르겠다.

군납 담배라 맛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담배 한 모금 속에 두 남자는 인생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대화를 길게 하지 못함에 아쉬움이 남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었다.

그런 곳이다. 다양한 인생을 가진 사람이 만나는 곳.

  가끔은 이러한 감성이 그리운것 같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애국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난 생각한다. 다만 다들 정도의 차이인 것이지 나라를 사랑하고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은 희생정신은 한국인의 마음속 안에 뿌리 깊이 들어있다고 난 항상 그리 믿어왔다.

이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나라에게 보답은 하였지만,

사람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했던 나의 회고록이기도 하며
아직도 그 일에 관해서 죄책감을 느낄 때가 더 많은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큰 이야기다. 
 
이야기는 나의 상병 3호봉 내지 4호봉 당시로 가야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그래도 혹여나 군의 시스템에 관해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이병은 훈련소를 제외하고 자대배치 2개월이 조금 지나면 일병의 계급장을 달게 되고,
일병 6개월이 지나 상병, 그리고 상병 3호봉으로 가게 된다면 대략

군대에서 지낸 시간 1년이 조금 넘는,
어찌 보면 사람구실을 착실히 해내는,

일병이면 1인분만 해도 칭찬을 받지만 상병일 때는 1.2인분 아니

1.4인분 정도 하게 되는 그 구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
 
함께한 기간이 1년이 다가가게 되는 만큼, 한없이 넘쳐나는 스트레스 속에서

일병에겐 의지할 수 있는 실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구간이다.

게다가 18개월이라는 군 생활 속에서, 쌓인 휴가를 제외하고 나서는 6개월 남짓 전역까지 얼마 안 남은 상황
 
물론,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할 것은 나와 나의 역할은 특직부 대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병사들끼리의 끈기와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다른 부대의 이야기보다는,


사무실에서의 상호간의 업무 이해와 효율이 올라갔었는데.
이러한 요소는 미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었다.
비록 우리의 관계는 사무적으로 연결되었을지언정
인간으로서의 관계는 사무적 한정으로 연결되어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보이지 않는 바운더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매번 상기시켜주곤 했었다
 
비록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더라도,

다른 군복을 입었음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의 일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말이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친구 사귀기가 힘들어진다고
왜냐하면 서로의 바운더리를 존중하게 됨으로써 그 거리감을 굳이 구태여 좁히지 않으려고 함에 있는데
 
이 비슷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곳이 내가 일하는 곳이었다. 
난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물론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매번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우리의 관계는 업무적 관계 
쌍무적 계약관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하였으니깐 
 
상대방도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는 있는 것 같았다
. 

개인 간의 관계를 보기 전의 양국 간의 상호호혜관계를 봐야 한다는 시야

(개인을 보기전에 국가를 봐야 한다)
참 사람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그 조직을 대표하는,

아니 그 조직의 거대한 톱니바퀴 중 하나인 사람
내가 당장 이 장소에서 어떻게 접근하던,

그는 나를 동시에 사람으로 보기 전에 하나의 메신저로써 부품으로써 날 받아들이겠지.
 
우리의 임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한 가지,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 측
 
한국이라는 "타지"땅에서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이곳에 와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있어봐야
 
그의 직장상사
 
하지만, 직장상사에게 본인의 외로움과 감정의 힘듦을

토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어느 나라의

사회생활 속에서 Big NoNo였으니까
 
그와 달리 한 측은 서로의 문화권으로 이해관계가 하나 되어

외로움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점이 있긴 했었다
 
이제 이러한 이해와 함께 오늘의 이야기를 해보자


구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용산의 사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미국이, 아니, "그"가 나에게 감정 섞인,

눈물 맺힌 질문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였을 때
 
난 "사람"으로서의 답보다,

"조직"으로써의 답을 주었다는 것을
 
어느 날이었다, 조용했던 하루 중에 그의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를 연락받은

나는 노트와 팬을 챙겨 달려갔다.
(통역병에게 노트와 팬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게 좋다, 언제 통역이 발생할지 모르니)
 
그날은 이상하게도, 누가 그의 방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함을 깨닫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는데,

본래 나는 한국군 소속으로써 통역을 찾는다면 한국군 간부님이 더 많이 찾는다.
 
그러나 그날은, 미국에서 먼저 나에게 연락이 온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방에서 그는 의자를 하나 두고는,

나에게 앉으라는 손짓으로

"어서 와"

Come on in
sit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

패기 넘치던 그는 온데간데없고, 지쳐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한국 측에서 나에 관한 평가를 알려줄 수 있겠나? 다른 것이라도 괜찮다네, 아무거라도 좋으니 "

Can you tell me what's going on about me ROK side?
Anything
 
침묵
 
조용한 침묵이 아닌
 

 
침묵
 
몇 초였을지 모르는 시간 이후에,

난 대답했다
 

Can't do that Major, I do not have any liberty to say anything unless it's an official comment.

죄송합니다 소령님, 저는 공식적인 답이 아니면 개인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아무거 나라도 좋네

Anything, it's just any comment.
 

Sorry sir, you would understand this if you were in my shoes

유감입니다, 제 처지에 있으면 이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다, 난 그 사람의 희망을 향한 손짓을 
교육받은 대로

그러니까

나라가 나에게 위임했던 대로 단호하게 행동했다.
설령 동맹국이라고 할지라도,
타국타국, 또한 이전에
간부님이 매번 나에게 말씀해 주셨던
 
 
어디까지나 내가 공식적으로 행동할 때 네가 움직이는 거야
너는 개인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너의 입이 나라의 입이다 하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녀
 
그러한 배경 속에 맞닥뜨리는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날의 상황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날이 자랑스러웠다는 생각보다는 
틀리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생각보다는
그 상황이 일어나게 된 ,

 

그에게 있어 악조건 같은 상황들이 생각이 난다
 
그의 부탁을 듣지 않은 행동 자체는 올바르긴 했었다

,
통역은 통역인 만큼,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남기고
그 상황의 평가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일들이며
그저 걸어 다니는 파파고의 임무를 완수하다 보면은
특출 난 영어 실력과 함께 전역의 아침을 맞이하면 된다.

 


나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거기까지니까.
 
 
지나간 일을 신경 왜 쓰냐고 하면
일말의 책임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병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난 올바른 일을 했다
 

그날은 흐린 날이었고
흙냄새와 더불어 오랜 카펫의 냄새 속에서 있는
그런 담배 한 개비가 생각난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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