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유학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가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빨리 가는 것 같으면서도 또한 느리게 흐르는 이 감정은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감정이 들게 한다. 내 주위 모든 것들이 어색했던 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수함의 순간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이 유학의 적응 기간이라는 3개월이 얼마나 고된 하루의 연속이었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하루의 소중함을 깨달아, 아니 시간의 소중함을 늦게라도 깨달아 뭐라도 하려고 하면, 일단 하기 싫은 감정이 몰려오기도 하는데 그래도 뭐 이 악물고 해내고 할려고는 있다. 생각의 관념을 그 근간부터 바꿔나아가는데에는 필요한 고통과 스트레스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유학을 끝내고 호주에 남게 될지, 아니면 한국에 돌아가게 될지 아니 2학년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인데, 어찌 저지 공부는 하고 있다. 그리고 배우는 것은 즐겁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즐겁고. 

 

평소에 뭐해요?

지금 하고 있는 것은

1. 코드잇 

2. 코드 아카데미 

3. 듀오링고 독일어 - 일본어

4. 말해보라 영어

5. 쇠질.

6. 블로그

7. 개인 유니티 프로젝트 

(7번 같은 경우는 머릿속에 "그나마 익숙한" 유니티의 사용 방법을 좀 익혀둠으로써 아키텍처의 이해를 높이기 위함)

 

많아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도 많은 양이긴 한데, 이것들을 굳이 구태여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은 스트레스받는 하루의 시간을 빨리 보내고 싶음이라... 그저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이 그리울 뿐이다. 특히 , 가끔가다 지나가는 헬리콥터 소리와 추운 날씨, 한강의 모습, 골목 골목길의 정, 이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 이제와서는 그렇게 특별해질 수가 없지 않은가. 

 

장소는 그립지 않고 사람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향수병이 왜 걸리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았었는데, 애초에 그렇게 나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못하는 것도 있었고 그리고 그렇게까지 중요시 여겨지지 않는다는 감정은 매번 있었기 때문에 별 수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표현을 못하시는 거지 분명 어딘가 사랑하는 구석이 있어 그러신 거겠지. 

 

코딩하는 몇 친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매번 깨닫기도 하고, 이 유학생활을 이겨내고 현지에서 취업을 하신 분들이 정말 독하고 독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진짜, 그만큼 유학 생활이 드라마처럼 파티에 가고 꿈만 같고 그러지는 않다. 무엇보다 생각이 기준점을 달리 해야 한다는 점은 스트레스를 넘어 고통이긴 한데, 이 고통의 끝에서는 적응해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한번 했었으니까 그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

최근 들어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뭐예요?

서양애들의 대다수는 근간이 "자기들이 국제학생들보다 영어를 잘할 것이다."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아니,  "난 동양인 보다 나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뿌리 잡혀있는 애들이 있다. 이들이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머릿속에 정의된 공역 자체가 잘 못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물론 이들은 학사를 공부하는 이들이기에 생각이 너무 어려 그런 생각을 한다고 난 생각하지만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생각을 굳이 구태여 바꿔줄 의향은 없고,
실력으로 쳐 바르는 의지만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주마

 

 

코딩은 어때요, 좋아요? 
장점 : 내 생각의 논리적 과정과 순서를 "의식"하게 해 준다. 그러니까 본래 " 커피를 마신다"라는 머릿속의 생각을, 1. 컵을 가져온다.
2. 물을 넣는다
3.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4. 꺼낸다
5. 커피를 넣는다
6. 마신다 
라는 과정으로 세분화해서 생각하는 요령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단점: 근데 몇 코드는 왜 작동되는지 모르겠음. 진짜, 작동되면 안 되어야 할 텐데 결과는 의도값이 나옴. 이게 좋은 게 아니라. 예를 들자면, "모기장을 만들어야지"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내가 모기장을 만들었지만,  그 모기장에 볼링공 구멍이 생겼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 진짜 이건 누가 대신 봐줘야 함 

기분: 코드를 쓰는 것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이 든다. 악보를 쓰는 그 악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보듯이, 코드를 쓴다는 것은 그 조화와 아름다움을 보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한 번쯤 만져본 코딩 언어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Python

2. Java

 - 대학교 필수였기 때문 

 

그리고 찍먹(찍어보기) 

3. Java Script 

4. Type Script  - 트위터에 보이길래 호기심에 건들어봄. 

5. C# - Unity의 좋은 친구, Game Develop에 필요하다고 해서 찍먹 해봄

6. XML - Python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건들어봄 

 

무슨 언어가 내 성향에 맞는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거 저거 찔러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SQL 언어를 배우고 있기도 한데, 언어를 배우다 보니 Linear Algebra 나 Algorithm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본래 언어를 좋아하는 성격이 있어서 컴퓨터 언어를 배운다는 건, 내가 모르는 세계의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배우고는 있는데, 이 해석이 어찌어찌 나하고 잘 맞아 빨리 배우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있어 "외국어"인 컴퓨터 언어를 사용하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한다. 

 

(잠깐, 이 생각이면 수학도 따로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학원 가실래요?

죽기 전에 "박사"님 소리 듣고 싶기도 하고, 나중에 자식 낳으면 대학원 보내고 싶은 것은 있는데, 일단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자식에게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니 대학원에 한번 가보고 박사를 따고 세상을 보고 싶긴 하다. 

 

물론, 학위가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게 되었다면, 전 세계가 박사님들로 넘쳐나서 박박 박사님 슈퍼 박사 울트라 짱 박사 이런 거 있지 않을까? 대학만 가면 성공하고 취업하고 다 될 것이라는 것은 예전이야기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과 사람을 얻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다들 좋은 대학 보내려고 그렇게 공부를 시키는 것이겠지 

1학년 2학기, 어떻게든 버텨보자.
앞으로 3년이다. 3년이면 된다.

 

 

오늘 짤방은 소녀소녀한 감성으로

 

 


 

 

2023년 1월 27일

나는 한미연합사에서 어학병으로 전역을 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내가 말을  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를 내가 말할 수 없는지 매번 의문이 드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공유해도 될 것 같은 정보를 내 블로그에 공유하려고 한다. 

오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하는 마인드와 남들이 겪은 경험을 나도 하고 싶다는 의도로 군대에 간 것이었고,
지난 10년동안 날 괴롭혔던 우울증을 떨쳐내려고 군에 자원한 거였으니까.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하시는 게, 우울증이 심해서 군에 입대하셨다고요?

 

믿기 어려운것이지만,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시야로써는 끌려가는 공간이고,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어차피 국가가 보상하지 않는 공간인데 뭐 하러 가요? 아니 X발 지금 우울증 치료가 아니라 군대 때문에 우울해질 거 같다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이레귤러가 맞다. 

 

나는 수능을 5번 봤다, 2012년 보 X고에 입학하고, 변변치 않은 성적으로 1학년 수시를 날려버리고, 2학년때부터 시작된 그 우울증이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기보다는 집에서 도망가 학교를 가는 것을 선택했으니까. 그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더 다른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고 지금은 그리 생각한다. 

 

근데, 뭐 인생에 만약이 어딨어

 

 

5년, 자그마치 5년이라는 기간은 누군가가 보기에 짧은 시기라고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25% 를 차지하는 기간, 의사가 되는게 내 평생의 꿈이었고, 그리고 주변인들의 기대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난 내가 특별한 줄 아는 병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래요 뭐 5년동안의 수험기간. 이해합니다, 그러면 19살에 첫 수능을 치르셨을 테고, 20살 21살 22살 23살 , 어라 계산이 안 맞네요? 군대를 23살에 가신 게 아니잖아요? 

 

나 목표로 하는 곳은 오로지 한 곳이었는데, 그 시작부터 부정당해버렸으니, 인생이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1년, 그리고 정신 차리고 대학교 복학을 해 3학년까지 다녔으니, 이를 따지면 2년이라, 이렇게 하면 계산이 딱 들어맞는다. 수 없이 죽음을 생각했고, 약도 처방을 받았지만, 내 스스로를 절제해라 라는 조언을 내 멋대로 해석해 처방받은 약을 한꺼번에 먹어 3일 내지 4일 동안 사경을 헤맨 적도 있다. 살아있음에 안도하기보다는, 살아있음에 절망감에 한 없이 울었다. 이런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이기도 싫어했었으니까. 

 

예... 뭐.. 고생하셨고요.. 뭐.. 근데 뭐 인생살이는 잘 알겠어요. 분명 중간에 여러 가지 일이 더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당장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물어보지 않아도 될 거 같고. 어? 여기 보니까 대학교 학과가 어학병과 전혀 상관없는 학과네요? 이걸로 어떻게 통번역을 하셨어요? 

 

 

일단 지방거점대학을 일단 들어갔는데, 의대는 가지 못했고 뭐 약사도 아니고 한의대도 아니고, 한약을 공부했다. 한약을 공부하려면 한자를 많이 알아야 하는데, 1학년, 2학년에 한자가 너무나도 싫으니까 한자보다 영어를 더 공부했었다. 얼마나 공부를 했냐면 때론 하루종일 영어 뉴스를 틀어두고 하루종일 따라 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걸 메모하고 외웠다.

 

 사람을 보는 게 너무 무서웠고, 사람을 보는게 무섭다는 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할까 봐"  무서웠었던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었는데 수험생활을 길게 하다 보니까 머릿속은 아직 어린 고등학생에 멈춰있었다. 모순적인 상황은, 그렇게 세상과 단절되길 원했으면서 동시에 세상을 보는 창을 필요로 하는 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나 이미 성격은 신경질적으로 변했었고, 나를 향한 모든 말들을 모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차피 망한 인생, 삶을 정리하기 위해 일부러 날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래야만, 그도 내가 세상에 없어졌을때 그는 행복감을 느낄 테니까.

내 딴에서는 나를 신경쓰지 말아 달라는 아우성이었지만 말이다. 

 

2023년 7월 28일 

하지만 군대는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어학병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4살의 무렵이었다. 하루종일 게임을 하면서 대다수 친구들을 게임 속에서 만들었었는데, 하루종일 게임을 한다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도 함께 게임을 한 다는 것이고, 그들의 문화와 영어에 동화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예? 게임이요? 그러니까, 영어를 게임으로 배웠어요? 근데 그게 통역이된거고?

 

그렇다, 게임에서 배웠다. 그래서 전문 영어는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부딪혀가면서 배웠다. 의대를 준비했던 머리는 겉치레가 아닌 법,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꿈꿨던 사람이니까. 물론 주변 친구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나를 응원해 주고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영어를 해봤자 어느정도 한다고" 라는 말이나, "너가 당장해도 유학다녀온 애들이 하는 병과를 너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라는 말이나, 그런 회의적인 시야를 나에게 남겼었다. 그들은 위로의 말을 한 거였을지 아니면 나의 현실을 자각하라는 말을 하는 거였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도전했고, 통과했고, 이겨냈고, 그리고 전역했다. 어떤 게임을 하셨나요?라는 말을 한다면, 나중에 포스팅으로 전달해 주겠다.

 

.......
할 말이 없네요. 아무튼, 군대이야기 계속해보세요

 

 

 

나의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들이 군이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믿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난 정말 그곳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났다

무너져도, 부서져도, 다시 한번 일어나 그 하루를 시작한다. 불만이 있어도, 해야 하는 것이기에 입대한 아이들이라 그리고 한국에서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 그런 것이겠지 

상처받고, 무너져도, 또다시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다음날을 살아간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그들은 보았고,

난 이 아이들의 반응을 보는 게 난 너무 행복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도, 바보 같은 형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도 않은 동기들이었고, 짜증을 내더라도 다시 한번 그 말의 의중을 살피는 사람들이었다. 생각이 얕은 것 같지만, 실은 깊고 굉장히 섬세하며 스스로의 임무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책임감도 있던 아이들이었다. 

 

물론 실수도 없지는 않았다, 말실수도 몇 번 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래도 화는 내지 않았다. 화를 내면, 이 아이들은 영원히 배우지 못할 것이니까. 스스로가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모른 채,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더 나은 길을 가지 못할 테니까.

 

물론, 군이라는 곳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적도 있던 것은 사실이다.

 

군에 같혀 있을때 사랑하는 이들을 군에 있을 때 너무 많이 잃었던 것도 있다. 몇 남아있던 친구도 운명을 달리 했었고, 17년동안 키우던 강아지도 세상을 떠났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고마운 아이들을 알게 되었으니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이미 지나간 일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니

 

이게 너무나 힘들어서 이 이야기를 상병 때 누군가에게 하려고 했었는데,

이 무거운 주제를 말하지 못했다. 이제 나에게 가벼워진 무게니 시작하는 나의 이야기자 시작의 에필로그. 

 

개인적인 감상은 그만하시고요,
군대 이야기나 하라니까요 

 

아니, ㅅㅂ  알겠습니다. 


 

입대하는게 즐거웠던 그 당시
너무나 행복했다
첫 배치가 연합사가 나오다
첫 휴가
고마운 친구
첫휴가

 

 

마지막 까지 좋은 말 해준 친구

 

이 친구는 이후에 나와 후쿠오카를 가게된다
첫 표창장

군대에서 발생한 일련의 이야기는, 내 감상을 묘사하는 적절한 짤방이나 만화를 포함한 포스팅으로 업로드를 하겠다.

 

왜냐하면

제9조(보호구역에서의 금지 또는 제한) ① 누구든지 보호구역 안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제1호, 제3호, 제7호, 제8호, 제11호 또는 제12호의 경우 미리 관할부대장등(제1호의 경우에는 주둔지부대장을 포함한다)의 허가를 받은 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4. 12. 30.>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구역 또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에의 출입. 다만, 군사작전상 장애가 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의 경우에는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
가. 통제보호구역
나. 울타리 또는 출입통제표찰이 설치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2. 통제보호구역 안에서의 건축물의 신축. 다만, 군사작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3. 통제보호구역 안에서의 수산동식물의 포획 또는 채취
4. 군사기지 또는 군사시설의 촬영ㆍ묘사ㆍ녹취ㆍ측량 또는 이에 관한 문서나 도서 등의 발간ㆍ복제. 다만,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가 공공사업을 위하여 미리 관할부대장등의 승인을 받은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오늘 포스팅 요약

 

죽을뻔 한 경험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죽음이 모든걸 변화시킨다.

 


조언을 아껴주지 않은 군에서 만난 모든 인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제 듣는 당신에게 너무 미안하다. 

저번 편에 이어서 이번 글은 시간순에 맞추어서 적어달라는 내 친구의 소중한 의견에 따라 소중하게 적도록 하겠다. 

소중한 감정을 담아 적었으니, 소중하게 읽어달라

또한 이 글은 여행의 꿀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전달하는 글이다

여행 꿀팁은 나도 모른다

 

시작하기 전에 읽으면 좋은 1 편의 글

군대 전역후 배타고 후쿠오카 갔던 이야기 1편 (tistory.com)

 

 

군대 전역후 배타고 후쿠오카 갔던 이야기 1편

주의: 이 글은 시간순으로 나열되어있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을 잡다하게 적어둔 것입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드립니다 2023년의 3월 말의 어느 날 이 글은 내가 전역을 한, 2023년 1월 27일 이

igewaedam630.tistory.com

 

 

후쿠오카 여행은 캡슐 호텔에서 지냈다


 이 여정의 시작에 앞서서 머릿속에 넣어둔 계산은 군대를 전역하고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단체 생활에는 익숙해져 있을터이니, 어떠한 사람들을 만나도 재밌게 지낼 수 있을꺼라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잠만 잘 수 있는 캡슐 호텔을 숙박지로 정했다. 잠을 자고, 샤워를 하고, 와이파이만 되는 곳이면 여정의 어떠한 피로도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럭셔리한 여행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적은 가격으로 경험을 쌓고 깨달음이 있는 여정이길 기도했으니까. 

 

군대를 전역해두고, 다시 선택한 것이 단체생활이고, 떠나는 여정. 

 

 

 

Wellcabin Tenjin - Male Only, 후쿠오카 – 2024 신규 특가 (booking.com)

 

Wellcabin Tenjin - Male Only, 후쿠오카, 일본

후쿠오카에 자리한 Wellcabin Tenjin - Male Only에서는 에어컨이 완비된 숙소, 공용 라운지 등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숙소는 Tenjin Central Park에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www.booking.com

(지금은 2024년의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시설] 와이파이, 라운지, 자판기, 셀프 세탁기, 락커, 샤워기, 헤어드라이어, 전기주전자, 냉장고 * 사물함 크기는 스탠다드 객실의 경우 25cm(W) x 48cm(D) x 62cm(H), 준개인 객실의 경우 25cm(W) x 48cm(D) x 170cm(H)입니다. 사물함에 들어가지 않는 짐은 프런트에 보관할 수 있다.

 

 

일본 여행의 장점은 여행지가 가까우면서도 색다른 경험이라는 것 

 

 한국에서도 요즘들어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으니까, 지금 들어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지지만, 26살 (아직 젊은) 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도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기도 한다. 이 여정은 그러한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2023년 3월 27일, 후쿠오카 도착 

 

나와 내 친구의 일정은 디스코드로 원만한 합의 끝에, 원만한 7일간의 지속되는 합의와 갈등의 이야기 끝에 후쿠오카 - 구마모토 여정이 었다. 본래 내가 제안한 곳은 후쿠오카 - 구마모토 - 가고시마 -  타네가시마의 여정을 제안 했었다. 당연히, 물론 당연히가 아니라 일단 가고싶은 곳을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반려되어, 조금 섭섭했던 나는 후쿠오카 - 구마모토 - 후쿠오카 - 기타큐슈 - 에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가자고 하는 여행을 주장했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의 배경은 이러했다. 

 

타네가시마를 여행의 선택지에 넣은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나오기 때문, 그러지 않고서야 그 곳에 가지는 않을테니까. 

 

 

어차피 남는건 사진이다, 나는 여행의 여유와 정서적 힐링 보다 전략적으로 사진만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추억하는 것에 중점을 두겠다


 

왜냐하면, 남자들끼리, 남자들

남자, 남
자들 끼리, 

굳이 구태여, 
  따스한 햇빛과 더불어 밖에 보이지 않는 내가 평소에 보던 것과 다른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보면서, 침대에서 스르륵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드라마 적인 모습과 감성은,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남자끼리 겪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다수의 인원으로 여행을 간다면 그것은 그거대로 의미가 있긴 하다. 친구들 5명이 모이면, J가 2명이라도 있어도 그 여행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테니까. 게다가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떠나는 여행에는 다 각자만의 특수한 기술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5명중 1명은 회계 담당을, 다른 1명은 식당을 찾고, 다른 한명은 언어가 된다면, 그거면 그거대로 성공한 여행의 가능성이 크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할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생각속에는 그러하였다. 남자들끼리 우정 여행을 갈꺼면 최소 4명의 인원으로 가거나 아니면 홀수인원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는 갈등이 발생했을때 민주적 절차를 도입할 수 있음이요. 운전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음이요, 더 나아가, 사진찍을때 다양한 자세를 할 수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이번 여행은 철저히 사전에 계획되어 목표달성을 하는데에 있었다. 

 

 

라고 생각하면서 같이 가는 친구생각 안하는 놈

 

를 옆에서 바라보는 친구

 

(이후 친구와 원만히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안되는 법

 

이라는 것도 계획안에 넣어놨다, 즉 계획대로 안되는 계획을 계획에 넣어 놨기 때문에 이것은 계획대로 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계획을 벗어난적이 없다

 

후쿠오카, 3월 28일 아침 

 

 식사는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맥모닝을 먹었다. 일본까지 가서 맥모닝이라니, 그거야, 아침부터 일식당에 가서 주문을 해야하는데 주문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상태였기도 했고, 그렇다면 바디 랭귀지로 소통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아침에 회사원분들이 이미 일본의 요시노야를 대다수 이용중이 었기 때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투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우리에게 있어서 여행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같은 날의 연속중 하나였으니까, 굳이 우리들의 경험을 위해 그들의 식사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시노야 - 나무위키 (namu.wiki)

 

요시노야 - 나무위키

중국과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도 유행 중이다. 일본과 메뉴는 거의 같고, 1인용 샤브샤브도 판매하고 있다. 가격도 현지와 마찬가지로 매우 저렴한 편이라, 여행객 뿐만 아니라 현지인도 많이 찾

namu.wiki

 

기억에 남는것은 맥도날드에 보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손님을 보시면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면서, 메뉴가 나오면 손님에게 갖다드리고, 가끔 더러워진 바닥을 걸레를 일을 닦으셧다. 물론 가끔, 사람 아닌 사람 같으신 분들이 와서 장소를 더럽히지만, 그래도 그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30분도 안되는 기간동안 맥도날드에 있었지만은, 일본이 어떤 곳인지 깨닫게 하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나는 모른다

 

여러 생각과 아침 식사를 뒤로하고, 버스를 타자.
후쿠오카 타워, 후쿠오카 박물관, 캐널시티 하카타, 후쿠오카 공원에 가다

 

첫날에 너무 많은거 아니에요?

 

사실, 후쿠오카 여행은 길어야 3~4일이면 다 볼 것이라는 조언을 들은적은 이미 있었다. 후쿠오카에 가서 취업을 하고 일을 하고 있는 형이 있었으니까. 

 

일본 거주 3년차 베테랑

(후쿠오카에서 외노자 생활을 하는 형, 지금 부터 그를 골드쉽 짤방으로 설명하겠음

군 생활을 무려 6년이나 한 사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내가 군대에서 일병일때 동생을 보겠다고 굳이 구태여 시간나서 면회와주고 햄버거 까지 사주었으니, 받은게 있어 돌려주러 후쿠오카간 김에 만나는 것이기도 하고, 지금이야 생각해보면 좀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후쿠오카 타워, 그리고 모모치 해변

 

별로 높지도 않은데 볼게 있겠어? 


 

후쿠오카 타워를 처음 보았을때 생각난 인상이었다. 높이 234미터, 낮은 타워는 아니지만, 서울 사람인 나의 입장에서는, 우리에게는 잠실 롯데타워가 존재했으니까. 상대적으로 높지도 않은, 그저 그런 전망대라는 인상이 가득했었다.

고작 전파탑이 그리 대단한게 어디있겠다고, 

 

본래의 성격이라면 이런 마음을 갖고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번 여정의 중점은 내가 갖고있는 생각을 확장하고 다른 경험을 통해 내 시야와 이해도를 넓히는데 중점이 있었으니, 첫 인상으로 모든걸 결정하지 말고 올라가 보도록 했다. 친구도 곁에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일반 요금

 

성인소 ・ 중학생유아 (4세 이상)

 

800 엔 500 엔 200 엔

요금・영업시간 | 후쿠오카타워 FUKUOKA TOWER (site-translation.com)

후쿠오카 타워의 영업시간은 이쪽을 참고하길 바란다. 

 

 

 

"따듯하다"

 

 

그것이 후쿠오카 타워의 첫 인상이었다. 본디 전망대는 높이, 위에서 아래를 보는 드 넓은 시야를 통해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 저 멀리 수평선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후쿠오카 타워는 나에게 다른 인상을 주었다. 넓게 보이는 후쿠오카의 모습. 그렇게까지 엄청 높지가 않아 가까이서 보이는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 평화로운 모습이 어렸을적 기억을 환기시켜 주었다. 물론, 지금 당장 내가 보고 있는 곳은 내가 살았던 곳도 아니고, 나와 연관이 전혀 없는 곳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바쁘게 살아간 지난 서울의 삶, 내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다른 사람 보다 더 잘나야했으며 집에서도 인정받기 위해 하기싫은 것도 울면서 했던 그런 시절, 그런 삶을 살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혹은 누군가 시키지도 않은 일로, 내 잘못이 아닌걸로 아니 내가 통제하지 못했던 걸로, 다른 사람의 책임때문에 내가 책임을 져야했던, 혹은 단순히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살아가야했던 그러한 삶속에서, 보게 된 다른 사람들의 일상. 

 

꼭대기에는 각자의 사람들의 소망을 담는 곳도 있었다. 일본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자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에 

사랑이야기, 대학합격의 이야기, 누군가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는 이야기,  돈 이야기, 취업의 이야기. 

 

높지 않은 탑도 나쁘지는 않네

 

 

높지 않은 탑이기에, 가까이서 보이는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 그리고 뒤에 보이는 후쿠오카 박물관 .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들이, 그러니까, 나의 삶속에서 살아가면서 앞으로 관계도 없을 것들이지만, 그때 지나가는 그곳의 감상은 위로를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나에게 상관없어도, 누군가에게 상관 있을수도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과 함께 후쿠오카 타워에서 내려왔다. 

기념 사진찍지 않으시겠습니까? 아 비용은 발생하니까,

 

말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비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갈려고 했다. 하지만 그 단호한 모습에 그는 웃음이 터져버렷지만 진정하고 나갈려는 나를 만류하며

아니아니, 저 말 아직 안 끝났어요, 온 김에 찍고 가요. 

 

직원이? 손님을?&nbsp; 여기서?

 

이라는 생각이 잠시,

 

 그래도 이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면 이 사람의 체면이 아니겠지. 보아하니 고등학생 정도의 모습, 이미 발길을 돌리는 손님을 막는것은 예의가 아니거늘, 잠깐 아니 그런게 중요한가?
내가 안한다 하였는데 굳이 본인에게 맞추라는 이야기인가? 아닌가? 뭔가? 내가 뭘 해야하지? 여기 문화인가? 아니면 내 사진을 정말 찍어주고 싶어하는건가? 아니면 윗 사람이 뭐라고 했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주어진 일은 손님의 사진을 찍는 것이겠지 구매를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는

내가 나중에 결정하면 되니까.  

 

빠르게 지나가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포즈를 잡고 있는 친구.

준.비.완.료

 

 

여기서 내가 굳이 구태여 안찍는다고 한다면, 이 새끼(사랑스러운) 의 추억도 망가트리는 거겠지. 바쁜시간을 내서 굳이 구태여 일본에 같이 와준 친구다. 

후쿠오카 타워 만들어 보세요, 이렇게 

 

누가봐도 기공포인 포즈를 보여주시면서 후쿠오카 타워 포즈라고 하시는데, 그 생각이 나서 웃어버렸다.

짜증이 났는데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그렇게 해서 얻은 자연스러운 모습

직원은 알까, 그의 포즈가 천진반의 기공포와 너무 닮아있다는 것을 

 

분명 윗사람은 모른것일까 아니면 아랫사람의 장난일까 뭔지는 모르지만

그 기공포, 카메라를 향해 쏴주자

"후쿠오카 타워 포즈"를 하는 천진반

 

그리고 나오는 기념품가게, 후쿠오카 타워를 방문했다는 증거나 추억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후쿠오카 인형이나 아니면 엽서 혹은 우표 비스무리한 것을 구매하는 거겠지. 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는 20대 관광객, 적당히 구경해주고 떠나자. 

 

 

오후 3 시 후쿠오카 타워를 뒤로 하고 향하는 박물관의 길

 

평일 오후 3시,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더불어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고 하기 싫은 일을 시작해 어느정도 집중하고 있을 시간, 밖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따스한 햇빛, 일본인들의 일상.

 

그 감상은 마치 어렸을적 단축수업을 하는 학교 같았다. 그들은 알까, 옆나라 사람이, 그저 단순한 그들의 일상 속에서 힐링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이래서 해외 여행을 가는구나, 내가 너무 꽉막히게 살았구나


나머지 포스팅은, 3편에서 계속하겠다

 

 


후쿠오카 타워에서 본것

 

아기자기 하다
맥도날드 좋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