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은 중구 난방으로 편성되어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편은 소재가 진중한 만큼, 진중하게 작성되어있습니다

 

 

전역하고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이야기 3편

이전편의 참고를 할려면 이쪽 링크들을 참고해주세요. 군대 전역후 배타고 후쿠오카 갔던 이야기 1편 (tistory.com) 군대 전역후 배타고 후쿠오카 갔던 이야기 1편 주의: 이 글은 시간순으로 나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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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전역후 배타고 후쿠오카 갔던 이야기 2편

저번 편에 이어서 이번 글은 시간순에 맞추어서 적어달라는 내 친구의 소중한 의견에 따라 소중하게 적도록 하겠다. 소중한 감정을 담아 적었으니, 소중하게 읽어달라 또한 이 글은 여행의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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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전역후 배타고 후쿠오카 갔던 이야기 1편

주의: 이 글은 시간순으로 나열되어있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을 잡다하게 적어둔 것입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드립니다 2023년의 3월 말의 어느 날 이 글은 내가 전역을 한, 2023년 1월 27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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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여행은 매일 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매번 강조하고 싶다, 이게 이전의 삶의 경험이 억압되고 같혀있는 삶을 살았다가 만끽하는 타지에서의 자유는 정신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으니까.

(일단 기상나팔이 없다는 점에서)

 

2023년 3월 29일 아침 

 

이전편에서 언급햇듯이, 아침부터 우리는 타치아라이로 향했다. 한국이었다면, 정류소에가서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기다리고 버스를 타고 기다리고 그 기다림의 연속이었겠지만, 일본은 또 다른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은 열차. 열차 아니겠는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마음이나, 일본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나 분명 기다림에는 지루함과 오는 여행을 향한 설렘이 넘치겠지만, 타국에서 겪는 기다림이란 감정은 그 겪어보지 않은, 다음의 설렘이 배가 되기에 열차 여행 또한 나쁘지는 않다.

 

웃긴 이야기다.

여러 매체에서 외국인이 한국지하철을 타고 놀라워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한국인이었던 내가

이제는 같은 처지의 외국인으로써

일본의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였으니 외국인의 입장으로써 보이는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

잡다한 생각의 흐름들을 느끼면서

오하시역

 

시작지는 오하시역, 오하시역은 후쿠오카 텐진에서 조금만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역, 후쿠오카 중심지를 가르고 있는 (물리적) 중심지였다. 오하시역에서 출발한 우리의 여정, 갈길이 멀었다.

 

 

 


 

 

기린맥주 후쿠오카 공장

기린맥주 후쿠오카 공장에서는 맥주의 제조공정을 견학하는 블루워리 투어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견학 마지막에는 맥주 및 음료수를 드실 수 있습니다. 또한, 21세기형 그린 팩토리를 슬로건으

www.crossroadfukuoka.jp

관련 포스팅은 다음편에 작성하도록 하겠다


 

목적지는 기린 맥주공장.

예약해둔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내 자신을 재촉해보자

 

내 시간을 재촉하는 방법은, 시간을 빨리가게 하는 방법이인데, 여러분들은 감히 생각하건데 시간을 빨리가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과학적인 질문도, 철학적인 질문도 아니고,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개념은 다 똑같은 길이의 시간이 주어지고 단순히 그 시작점이라는게 다르다는 건데, 무슨소리지? 이런 생각을 하신다면, 그 발상은 틀리지 않았다. 발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소리를 조금만 깊히 이해를 하신다면, 이 이야기는 즉슨. 

 

내가 받아들이는 시간의 속도를 빨리하는 것

다르게 말하면, 다른 일에 집중하거나 혹은 잠을자는것

정신을 무장하고, 눈을 감고, 잔다

 

나는 서서가기 싫었으니까. 


도착지는 오고리역, 후쿠오카 시를 떠나 밑으로 조금만 내려온다면 보이는 오고리시.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하남시정도의 거리라고 해야하나? 그보다도 창밖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일본의 모습이, 나로 하여금 다른 공간으로 끌고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체감으로는 더 가깝게 느껴젔던 것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잡혀있었기 때문이라. 

 

그리고 이 오고리역에서 다시 다른 열차로 갈아탔어야 하였는데, 이 느낌은 한국에서 느끼지 못하는 열차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한칸짜리 열차, 열차라고 하기도 애매한, 트램

한국에서의 지하철에서 트램으로 갈아타는 느낌, 매우 새로운 경험. 그렇게 빠르지도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기능을 수행하고있는 오래된 열차의 길

 

오고리 시에서  위로 다시 빠져,

다치아라이로 가는 길

여기서 사건은 또 발생한다

 

 

야 여기 맞냐? 왜케 암것도 없어

일단은 맞는거 같은데, 라는 생각과 발걸음을 재촉해 나와보니 보이는 전투기가 올라가 있는 정류장. 

 

출처:위키백과

근처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니,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본래 계획에는 없는 곳이지만, 본래 밀리터리를 좋아하기도 했었고 전쟁의 역사를 좋아하니까

온김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거 같다. 하는 생각. 

 

평소에도 밀리터리 관련 역사를 좋아하고, 그 역사의 소용돌이의 중심지에 있던 2차대전의 참전 국가중 하나인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그들만이 기록하는 생각과, 그때당시 그들의 단어들을 난 알고싶었으니까.

 

역사는 절대 객관적으로 기록을 해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들이 어떤 말로 그 마음을 남겨도, 나는 피해자 국가의 시야로 이들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겠지만은 그래도 들어는 보자. 이 박물관에 어떤 의도가 남아 있고,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를 하는 마음을 갖고


 

 

치쿠젠동립 타치아라이 평화 기념관 | 관광지 | VISIT FUKUOKA - 후쿠오카현 공식 관광 홈페이지 (crossroadfukuoka.jp)

 

 

大刀洗平和記念館 - 平和の大切さを語り継ぐ情報発信基地

平和の大切さを語り継ぐ情報発信基地

tachiarai-heiwa.jp

홈페이지는 매우 잘 해두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곳은 격납고를 개수해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장소, 듣자하니, 이곳은 과거 2차대전 당시에 미군의 폭격이 집중되었다고 한다. 우리야 식민지 시절이었고, 일본이 이야기하는  전쟁의 상처가 많다라는 것을 공감하는 것도 힘든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관광객으로 왔으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려고 열심히 노력을 해보자. 식민지 피해의 국가의 출신이 공감하는 전쟁 가해자의 전후 패배의삶은 어떤 모습인가?

 

이 상황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할지 나 또한 잘 모르겟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지금의 이야기를 해야지. 그들이 좋던 싫던, 그들은 우리의 이웃국가니까. 국가적 감정을 뒤로 하고 이해해보려고 하는 여정이니까,


그들의 이야기

이 타치아라이라 지역에 사는 일본 국민들이 전쟁에 피로감에 절어 있었다고 한다. 

한없이 떨어지는 폭격, 매번 방공호에 숨어야하는 삶. 학교에 가도,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방공호로 가야하고, 그리고 그 방공호에서 폭격의 공포가 끝났을 무렵에 다시 고개를 내밀면 삶의 터전이 없어졌었던 이야기.

오늘보는 친구가 내일 또 다시 볼 수 있을거라는 보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전쟁의 슬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 우리는 이 전쟁의 아픈역사를 전시함으로써 후대에 고통을 알리고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전쟁과 행복한 평화를 추구한다 

 


라는게 이 박물관이 전달할려고 하는 이야기. 

 

왜 이 타치아라이라는 지역이 미국의 폭격 대상이 되었는지는, 내가 추론컨테 아무래도 군수물자/공군기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 평화를 향한 호소의 방향성이 피해 국가의 출신으로써는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아니 지들이 전쟁일으켜두고 개 쳐발리니까 억울하다고 하네
진심 양아치들이네 이거 

 

 

그래도,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야기 들어봐서 나쁠것들은 없으니, 어디까지나 내가 한국인임을 내려두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로간의 이해가 늘어나지 않을까. 긍정적인 곳으로 우리의 관계가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그리고 육안으로 확인한 신덴과 제로센

 

머릿속에서 스쳐가는 제로센 영화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바람이 분다

 

 

 

영원의 제로
진주만

 

미드웨이

 

- 진주만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
- 불이 잘 붙는 비행기
- 함상충돌자살공격
- 당시 일본기술력의 상징

 

 

이런 마음으로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아무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혹은 책에서나 많이 보던 비행기였으니까. 

또한 이 전투기가 이 박물관에 전시가 된 스토리도, 바닷속 깊히 추락해 잊혀진채 녹슬어가던 친구를 운좋게 찾아내 복구해낸 것, 일본에는 이렇게 본래의 형태가 곧 잘 남아 있는 전투기들은 많이 없다고 한다. 이 전투기를 보기 위해서 다른 지역에서 여기까지 오는 분들도 많다고 하고 심지어 이 전투기를 보기 위해외국인 관광객들도 이 제로센을 보기위해 온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우리는 더 많은 억압을 받았거늘, 우리가 우리의 뜻을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어느정도 울분이 남긴 이 마음을, 다시 한번 꾹 참고 관광했다. 그리고 전쟁의 막바지로 치닫는 순간 순간에 군부가 머릿속에 두었던 "본토 결전"의 마음으로 어린 조종사들 양성하고, 숙련되지도 않은 그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고서는 시간이지나 그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는 하는 말이 이것은 "전쟁의 상처야" 라고 말한다. 이 무슨 경우가 있나,  만약 그들이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정말로 그들의 입지로 구분하고 싶다면 그 가해자는 미군이 아닌,  강제 동원한 군부여야 할텐데,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동원이 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남편, 아들을 전쟁통으로 보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쟁속으로 빨려들어 간 것은 미국의 잘못이 아닌, 1941년에 진주만을 공습하고 필리핀 제도를 급습한 일본의 잘 못 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호소와 울분이 아닌, "그땐 그랬지" 하는 마음

 

나는 이들을 어찌 받아들여아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안에 보이는 조종사들의 사진들, 이 조종사들은, 전쟁속에서 "희생"되었던 아니, "특공"되어 버린 이 지역출신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단어의 조합으로 인해 머릿속이 지끈해지는 순간들에 출신 미상의 조종사들.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이 보는 시야가 아닌 "군대를 다녀온 사람" 의 시야로 볼려고 매우 노력을 했다. 그리고 보이는 20대, 아니 20대라고 하기도 애매모호한 20살 21살의 어린 나이의 조종사들, 분명, 1945년이면, 이미 너희들은 패배했었는데 그 패배의 끝을 향하면서도 어린 조종사를 하늘로 띄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의 삶은 20살에 멈춰버렸다. 아무런 성과도 없는 상태로, 인생의 업적이라는 것이 평화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사진의 형태로 남아버린 그 꽃다운 20살이라니, 내가 군에 있을때도 20살 어린 아이들 만큼은 크게 뭐라고 하지도 않았었는데, 아직 너무나도 어리고 세상을 밝게 살아가야 했을 그가, 그의 소속을 불문하고 그렇게까지 삶을 마무리 시켰어야 했었나. 

 

한없이 유감이다.

 

또한 그 길을 따라 또 옆에 보이는 것은 신덴, 우리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밀덕 친구들이나 아니면 밀리터리 게임을 좋아하는 겜돌이 친구들에게는 익히 들어봐서 굳이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겠지만은, 일본의 전쟁 막바지속에서 개발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던 전투기, 이 전투기가 실제로 미군의 비행기와 맞닥뜨린것은 없었겟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으로써의 기분은 어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2층 특별관에도 들어갈수가 있었는데, 2층 특별관에서는 당시 소련이 전쟁포로들을 어떻게 취급하였는지, 그들의 포로 수용소의 일상과 군대의 억압된 문화 그리고 그 폭력성을 고스란히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야 근데, 읽다보니까 왜이리 익숙하지

그러니까 아침에 5시나 혹은 6시에 기상을해서, 점호를 하고 제설작업을 가거나 물자관리 혹은 수용소내 유지보수를 수행하고 음식맛이 없다는 것에 불평 불만을 하지 못하고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억울해도 그 호소를 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

 

어? 왜이리 익숙하냐?

아무튼, 상대국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의 시야로 보는 일본의 평화를 향한 노력은 불유쾌한 감정만 남겼다. 마음 한켠을 정리하고, 그래도 이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상대방을 이해할려는 시도 자체가, 앞서 더 조화를 이루며 나아갈려는 자세니까. 

 

배가 고파졌다. 밥이나 먹으러가자 

 

근처에 교통수단도 없고, 그냥 뚜벅이로 식당까지 걸어가야지.


 

일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찍은 사진들

하루만에 이 정도 싸돌아 다니다니


타치아라이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관광지 포인트

 

2023년 1월 27일

나는 한미연합사에서 어학병으로 전역을 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내가 말을  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를 내가 말할 수 없는지 매번 의문이 드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공유해도 될 것 같은 정보를 내 블로그에 공유하려고 한다. 

오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하는 마인드와 남들이 겪은 경험을 나도 하고 싶다는 의도로 군대에 간 것이었고,
지난 10년동안 날 괴롭혔던 우울증을 떨쳐내려고 군에 자원한 거였으니까.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하시는 게, 우울증이 심해서 군에 입대하셨다고요?

 

믿기 어려운것이지만,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시야로써는 끌려가는 공간이고,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어차피 국가가 보상하지 않는 공간인데 뭐 하러 가요? 아니 X발 지금 우울증 치료가 아니라 군대 때문에 우울해질 거 같다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이레귤러가 맞다. 

 

나는 수능을 5번 봤다, 2012년 보 X고에 입학하고, 변변치 않은 성적으로 1학년 수시를 날려버리고, 2학년때부터 시작된 그 우울증이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기보다는 집에서 도망가 학교를 가는 것을 선택했으니까. 그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더 다른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고 지금은 그리 생각한다. 

 

근데, 뭐 인생에 만약이 어딨어

 

 

5년, 자그마치 5년이라는 기간은 누군가가 보기에 짧은 시기라고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25% 를 차지하는 기간, 의사가 되는게 내 평생의 꿈이었고, 그리고 주변인들의 기대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난 내가 특별한 줄 아는 병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래요 뭐 5년동안의 수험기간. 이해합니다, 그러면 19살에 첫 수능을 치르셨을 테고, 20살 21살 22살 23살 , 어라 계산이 안 맞네요? 군대를 23살에 가신 게 아니잖아요? 

 

나 목표로 하는 곳은 오로지 한 곳이었는데, 그 시작부터 부정당해버렸으니, 인생이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1년, 그리고 정신 차리고 대학교 복학을 해 3학년까지 다녔으니, 이를 따지면 2년이라, 이렇게 하면 계산이 딱 들어맞는다. 수 없이 죽음을 생각했고, 약도 처방을 받았지만, 내 스스로를 절제해라 라는 조언을 내 멋대로 해석해 처방받은 약을 한꺼번에 먹어 3일 내지 4일 동안 사경을 헤맨 적도 있다. 살아있음에 안도하기보다는, 살아있음에 절망감에 한 없이 울었다. 이런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이기도 싫어했었으니까. 

 

예... 뭐.. 고생하셨고요.. 뭐.. 근데 뭐 인생살이는 잘 알겠어요. 분명 중간에 여러 가지 일이 더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당장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물어보지 않아도 될 거 같고. 어? 여기 보니까 대학교 학과가 어학병과 전혀 상관없는 학과네요? 이걸로 어떻게 통번역을 하셨어요? 

 

 

일단 지방거점대학을 일단 들어갔는데, 의대는 가지 못했고 뭐 약사도 아니고 한의대도 아니고, 한약을 공부했다. 한약을 공부하려면 한자를 많이 알아야 하는데, 1학년, 2학년에 한자가 너무나도 싫으니까 한자보다 영어를 더 공부했었다. 얼마나 공부를 했냐면 때론 하루종일 영어 뉴스를 틀어두고 하루종일 따라 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걸 메모하고 외웠다.

 

 사람을 보는 게 너무 무서웠고, 사람을 보는게 무섭다는 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할까 봐"  무서웠었던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었는데 수험생활을 길게 하다 보니까 머릿속은 아직 어린 고등학생에 멈춰있었다. 모순적인 상황은, 그렇게 세상과 단절되길 원했으면서 동시에 세상을 보는 창을 필요로 하는 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나 이미 성격은 신경질적으로 변했었고, 나를 향한 모든 말들을 모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차피 망한 인생, 삶을 정리하기 위해 일부러 날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래야만, 그도 내가 세상에 없어졌을때 그는 행복감을 느낄 테니까.

내 딴에서는 나를 신경쓰지 말아 달라는 아우성이었지만 말이다. 

 

2023년 7월 28일 

하지만 군대는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어학병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4살의 무렵이었다. 하루종일 게임을 하면서 대다수 친구들을 게임 속에서 만들었었는데, 하루종일 게임을 한다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도 함께 게임을 한 다는 것이고, 그들의 문화와 영어에 동화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예? 게임이요? 그러니까, 영어를 게임으로 배웠어요? 근데 그게 통역이된거고?

 

그렇다, 게임에서 배웠다. 그래서 전문 영어는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부딪혀가면서 배웠다. 의대를 준비했던 머리는 겉치레가 아닌 법,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꿈꿨던 사람이니까. 물론 주변 친구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나를 응원해 주고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영어를 해봤자 어느정도 한다고" 라는 말이나, "너가 당장해도 유학다녀온 애들이 하는 병과를 너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라는 말이나, 그런 회의적인 시야를 나에게 남겼었다. 그들은 위로의 말을 한 거였을지 아니면 나의 현실을 자각하라는 말을 하는 거였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도전했고, 통과했고, 이겨냈고, 그리고 전역했다. 어떤 게임을 하셨나요?라는 말을 한다면, 나중에 포스팅으로 전달해 주겠다.

 

.......
할 말이 없네요. 아무튼, 군대이야기 계속해보세요

 

 

 

나의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들이 군이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믿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난 정말 그곳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났다

무너져도, 부서져도, 다시 한번 일어나 그 하루를 시작한다. 불만이 있어도, 해야 하는 것이기에 입대한 아이들이라 그리고 한국에서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 그런 것이겠지 

상처받고, 무너져도, 또다시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다음날을 살아간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그들은 보았고,

난 이 아이들의 반응을 보는 게 난 너무 행복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도, 바보 같은 형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도 않은 동기들이었고, 짜증을 내더라도 다시 한번 그 말의 의중을 살피는 사람들이었다. 생각이 얕은 것 같지만, 실은 깊고 굉장히 섬세하며 스스로의 임무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책임감도 있던 아이들이었다. 

 

물론 실수도 없지는 않았다, 말실수도 몇 번 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래도 화는 내지 않았다. 화를 내면, 이 아이들은 영원히 배우지 못할 것이니까. 스스로가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모른 채,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더 나은 길을 가지 못할 테니까.

 

물론, 군이라는 곳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적도 있던 것은 사실이다.

 

군에 같혀 있을때 사랑하는 이들을 군에 있을 때 너무 많이 잃었던 것도 있다. 몇 남아있던 친구도 운명을 달리 했었고, 17년동안 키우던 강아지도 세상을 떠났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고마운 아이들을 알게 되었으니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이미 지나간 일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니

 

이게 너무나 힘들어서 이 이야기를 상병 때 누군가에게 하려고 했었는데,

이 무거운 주제를 말하지 못했다. 이제 나에게 가벼워진 무게니 시작하는 나의 이야기자 시작의 에필로그. 

 

개인적인 감상은 그만하시고요,
군대 이야기나 하라니까요 

 

아니, ㅅㅂ  알겠습니다. 


 

입대하는게 즐거웠던 그 당시
너무나 행복했다
첫 배치가 연합사가 나오다
첫 휴가
고마운 친구
첫휴가

 

 

마지막 까지 좋은 말 해준 친구

 

이 친구는 이후에 나와 후쿠오카를 가게된다
첫 표창장

군대에서 발생한 일련의 이야기는, 내 감상을 묘사하는 적절한 짤방이나 만화를 포함한 포스팅으로 업로드를 하겠다.

 

왜냐하면

제9조(보호구역에서의 금지 또는 제한) ① 누구든지 보호구역 안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제1호, 제3호, 제7호, 제8호, 제11호 또는 제12호의 경우 미리 관할부대장등(제1호의 경우에는 주둔지부대장을 포함한다)의 허가를 받은 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4. 12. 30.>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구역 또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에의 출입. 다만, 군사작전상 장애가 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의 경우에는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
가. 통제보호구역
나. 울타리 또는 출입통제표찰이 설치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2. 통제보호구역 안에서의 건축물의 신축. 다만, 군사작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3. 통제보호구역 안에서의 수산동식물의 포획 또는 채취
4. 군사기지 또는 군사시설의 촬영ㆍ묘사ㆍ녹취ㆍ측량 또는 이에 관한 문서나 도서 등의 발간ㆍ복제. 다만,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가 공공사업을 위하여 미리 관할부대장등의 승인을 받은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오늘 포스팅 요약

 

죽을뻔 한 경험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죽음이 모든걸 변화시킨다.

 


조언을 아껴주지 않은 군에서 만난 모든 인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제 듣는 당신에게 너무 미안하다. 

메모용 글입니다.

내 맘대로 적혀있습니다


 

나중에 글 써야징

워낙 처음 스톡 옵션에 너무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이전 포스팅은 여기를 참고해 주길 바랍니다

 

일본 6티어 중전차 Ju - Nu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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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글쓴이의 주관적 감상입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전차의 배경 Background 

 

1942년, 일본은 전차 제작 과정에서 독일과 더 긴밀히 협력하기 시작했다. 차체 용접 기술과 광학 장치 등 일본이 뒤처진 기술에 중점을 두었다. 같은 해, Type 3 돌파 중전차 기획이 등장했다. 해당 전차는 장갑과 무장이 강화되었으며 크기가 더 큰 중형전차라고 볼 수도 있었다. 보조 기관총 포탑은 제거되었다. 주조 방식의 포탑과 Hara형 현가장치를 탑재하고 엇갈리게 배열된 지지 롤러와 수랭식 항공 엔진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설계 단계에서 개발이 중단되었다.

 

 

독일의 기술을 전수 받은 전차라는 설정답게, 이 전차의 플레이 방식은 일본의 전차를 모는 것이 아닌, 독일의 전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이 말인 즉 ,  일본전차를 탄다고 생각하고 탄다면, 그 의외의 육중함에 기이함을 느껴 놀라 다시 한번 플레이 방식을 의외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방 장갑의 경사각과 독일 전차와 비슷한 애매한 부앙각, 이 전차 뭔가 일본스럽지 않다.

 

 

어딘가 독일전차와 닮아 있지 않은가?

 

물론, 완전한 독일의 전차를 닮았다기 보다는, 그 디자인의 콘셉트와 방향성이 독일 엔지니어들의 방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말하고 싶다.  

 

기동성 또한 업그레이드를 모두 완료했을때의 770 마력의 엔진은 전차를 최대속도 35km/h 까이 끌고 가주는데, 이는 중전차의 역할뿐만 아니라 중형전차들 사이에서도 힘 싸움의 보조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6 티어 전차는 앞으로의 71식 전차를 향한 여정의 플레이 방식을 가이드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주기도 하는데, 프랑스의 AMX m4 혹은 독일의 Vk 3601, 아니면 6 티어 Tiger 전차의 부류들을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워낙 전차 자체가 무겁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본래의 일본전차의 전술인 "치고 빠지기" 의 전술이 습관화되어있다면, 이 전차를 탔을 때 그 방향성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초중전차 테크트리는 육중한 무게감으로 대구경 포로 적을 압박하는 전략으로 헤비라인에서 힘싸움을 한다면, 이 전차의 역할은 굉장히 다재다능하다. 헤비라인에 지원을 향하거나, 아니면 중형라인에 지원을 가거나, 이 문장이 말해주듯이 이 전차는 지원의 역할을 잘 수행해 줄 것이다. 

 

포를 업그레이드 하기 전(75mm)까지 플레이 방식

 

초창기 75mm 구경으로는 데미지를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을 짜증 나게 만든다고 하는 개념으로 운용하면 된다
기억해라, 당신은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일단 앞에 있는 녀석의 마음을 쥐어 흔든다고 생각해라, 그게 일본전차를 운용하는 협성 플레이. 이기는 것은 어차피 팀에게 달렸다. 당신의 차체는 단단하다, 포는 '아직' 어쩔 줄은 모르겠지만, 당신의 역할은 이 전선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천천히 후퇴하며 적에게 정신적 상처를 주는 것. 나머지 라인이 밀기를 기대하면서 버텨라.

75mm 플레이

 

 

포를 업그레이드한 후 (88mm) 플레이 방식

 

당신은 오랫동안 이 전차를 몰면서 얼마나 서러웠나, 88mm의 전차포는 200의 대미지와 나쁘지 않은 관통력을 지니고 있다. 기동성과 장갑을 살려 동 티어 힘싸움에서 측면을 가린 채 경사각을 이용해 싸움을 해라. 중형전차를 지원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중전차 라인에서의 싸움 방식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당신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라인을 버티거나 우군 지원에 맞추는 것. 독일의 Tiger 131전차의 플레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면 될거 같다. 일본의 티거처럼 플레이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

 

88mm 업그레이드

 

장갑
 

World of Tanks - tanks.gg

 

tanks.gg

전방의 경사 130mm의 장갑은, 실제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150mm 왜 동등하게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앞에서 전방에서 포를 맞았을 때 어느 정도 의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게 만든다는 것, 6티어 전차치고 이 정도의 방호력이면 7탑방이나 8탑방에서 1선에서 싸우지는 못해도, 적어도 일인분의 값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전차를 갖고 그 이상의 활약을 기대한다면, 당신의 실력보다는 어느정도의 운이 받쳐줘야 하는 것은 어느정도 있겠지. 

큐폴라는 툭 튀어나와 있어, 우측을 가리고 좌측을 보여주며 싸우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모든 지형이 당신의 수지에 맞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지형을 이용해서 전차의 장점을 극으로 올리는 것이 이 월드 오브 탱크의 재미니까. 당신에게 알맞은 플레이를 하기를 기원한다.

당신은 좋은 전차니 그러니 돌격하지 맙시다

 

전방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주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 차체의 하단보다는 얼굴에 있는 일장기를 노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물론 각도에 따라 이 전차의 관통이 안될 수도 있지만은 (애초에 얼굴이 나오는 식으로 플레이하는 적이 있겠냐만은)  하단부를 때리지 말고, 얼굴에 일장기를 때려라. 당신의 생각과 달리 관통이 날 수도 있다. 

 

 

경사각도와 포의 배치, 일본군이 상상할만한 물건은 아닌거&nbsp; 맞는듯

 

어디까지나 각도를 잘 보고 때려라

 

 


 

한줄평가
넌 왜 어쩌다가 일본에서 전차가 되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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