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이 맞나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다. 정석적인 루트라면, 고등학생 때 꿈을 찾고 20살 때 첫 발걸음을 딛고 나가야 했을 텐데 말이다. 지금은 그때당시 꿈에서 너무 멀어져 있고, 의사가 되겠다며 말하고 집에서 지원받고 친척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이는 아직도 마음 한편에 의사의 꿈을 미련으로 갖고 있다. 

 

내가 살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의사가 될꺼다, 중학교 선생님에게는 "저는요 의사가 돼서 선생님 주치의도 해드릴 거예요"라고 말하던 그 사람은, 이제 결국 내 마음속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지. 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저 그 주어진 한 번의 기회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내 노력도 노력이지만 운이 나빴다면 운이 나쁜 거겠지. 

 

물론 지금의 꿈과 목표가 싫은 것만은 아니다. 다만, "만약" 이라고 했던 그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 지나가면서, 오랜 사람들이 그리운 것일 뿐. 평생을 함께하자고 했던 친구도, 어머니께서 나에게 이사를 갔으니 잊으면서 살렴 하고 했던 그 기억 속의 그의 이름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분명 그런 잃음이라는 상처가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나에게 안겨주었을 텐데 말이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TV에서 나오는 의사나 의대에 대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지나간 내 삶이 보여 눈물이 고이곤 한다. 꿈이었으니까. 사람을 살리려면 자기 자신 부터 구해야 한다는 신념하에 하루 종일 공부만 한 적도 있다. 수능 21번 29번 30번 문제를 풀기 위해 하루 아니 사흘을 혼자서 머리 싸매고 풀려고 했던 기억도 있다. 

 

결국 문제를 풀었을때 쾌감은 있었지만, 이 발상을 시험장에서 하지 못한다는 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의 얼굴과 점점 시니컬해지고, 사람을 싫어하는 성격이 되어가는 모순,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빠질 때마다 새벽에 운영하는 병원 응급실까지 걸어가 바삐 돌아가는 병동을 보면서 다시 내 꿈을 굳히고는 그렀었는데 말이다.

 

겨울이 되면, 공기가 차가워지면, 첫 수능의 기억이 나기도 하며.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것은 공부를 하겠다며 초중고 연락처를 모두 지워버렸던 것이지. 그때는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지웠지만 말이다. 

 

어차피, 사람에 인연에 연연하지 말아야한다고 매번 스스로에게 말해오기도 했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바. 아직 난 젊고, 그리고 인생의 다음페이지는 펼치지도 않았다. 

 

아직도, 의사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사람을 살리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냥 그런 바람이다. 난 내가 죽어도 상관없으니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그리고 굳이 감사함을 받고 싶지도 않은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 그것이 어떤 모양새던지 간에, 사람의 선한 영향력의 힘을 깨닫게 해준 친구도 많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인연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난 아직도 군에 있을 때, 본인은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걸 수 도있겠지만,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는 위로의 말을 해준 그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한없이 불안하고 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실무자나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보다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그리고 내 가치가 의심스러워 또다시 방문을 닫고 울면서 혹은 이 감정기복이 격해져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잠에 들 때도 있다. 

 

종교인이 성경을 읽듯이, 불경을 외듯이, 나만의 방법으로 불안한 마음을 벗어던지는 방법이니까.

 

사람은 또 다시, 자기만의 요람으로 회귀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고 힘들었지만 좋았던 기억을, 생각하면서 다음페이지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감정의 흔적을 따라, 지금은 닿지 않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먼저 겪었을 거라 믿는 친구들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물론,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볼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를 찾아가기에 아직 내 이야기 보따리는 27년 정도밖에 모으지 못했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그는 평생 우리가 헤어진 나이에 머물러 있을 테니, 내 의무는 최대한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해두는 것 아니겠는가.

 

자 다시 후회 없이

내일을 살아가자.

나는 수많은 누군가의 다행이라는 말로

그리고 사랑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니

나도 다른 사람의 다행히 되고 사랑이 되어 

그들을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난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니고 단순한 학생이지만, 그렇기에, 학생이기에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해준 교수님과 나에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생각을 심어준 내 군 선임에게 감사함의 마음을 남긴다. 또한 게임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늘 나의 가능성을 봐주고있는 친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 제일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 이것 밖에 없기는 한데,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거 같다. 

 

책 정리하다가, 2013년의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감상에 빠져서, 아무래도 이게 답장인것 같다. 

 

미안해, 의사는 되기가 너무 힘들더라. 그래도 너의 마음은 아직 내 한켠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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