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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波濤

@Salieri2026. 4. 7. 19:57

본인이 걸어온 길이 부디 당신에게 작은 이정표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오늘은 평소 내가 좋아하고 또 혐오해 마지않는 것들,

바로 '인간관계의 거리'에 대하여 몇 자 적어볼까 한다.

 

좋은 이야기 주제가 되기도 했고, 생각도 많이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회고하면서 글을 적어보자 한다


 

 

 이제 어느새인가, 세상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지 제법 되었으나, 본인이 타인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 가장 편안하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통제 없는 거리’인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세상에는 제 삶의 방식만이 유일무이한 정답인 양 착각하며 타인을 제 입맛대로 주무르려는 오만한 자들이 아직도 널려 있다. 나는 그러한 자들을 심히 혐오하는 바이나, 굳이 나서서 그들을 가르치거나 고쳐 쓰려 들지는 않는다.

 

그 알량한 오만함에 갇힌 자들은 내버려 두면 어차피 제풀에 꺾여 자멸할 것이 뻔하기 때문

 

 본인이 생각하는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란, 그저 함께 있을 때 서로에게 실없는 웃음이나마 선물할 줄 아는 것이다. 반대로 겉으로는 아무 말 않으면서 잔잔한 수면 아래 날카로운 암초를 숨겨둔 채 기어이 남의 속에 흠집을 내고야 마는 음습한 태도는 본인의 기력을 가장 심하게 빼앗아 갈 따름이다. 오해라는 것도 매한가지다. 오해란 필시 ‘자신이 만든 연옥에 빠진 자’의 몫에 지나지 않으니, 굳이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자가 아니라면 그저 저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

 

 이토록 굳건히 선을 그어둔 채로, 본인은 이 세상에서 한 자루 '등대'와 같이 존재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이전에도 말했듯, 제아무리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다 한들 무너진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 타인의 앞길을 비추어 주되 결코 강요하지 않으며, 그들이 불빛을 따라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본인은 적잖은 위로를 받는다. 여기에 타인의 인정 따위는 필요치 않은 것이다. 물론 본인의 내면 깊은 곳에도 내 방식이 옳음을 뻐기고 싶은 얄팍한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억지로 들이미는 대신 묵묵히 대화하고 귀를 여는 방식을 택할 작정이다. 남에게 관대해지려면 필시 자신에게 먼저 관대해야 하는 법이거늘, 스스로 정한 원칙에 진이 빠질 때면 그저 말없이 몸을 굴려 땀을 낼 뿐이다. 지난날, 사랑하는 이의 쏟아지는 말과 마음을 묵묵히 감내하며 얻은 상처가 있다. 하나 그것은 흉할지언정 나를 한층 속 깊은 인간으로 다듬어준 '영광스러운 흉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본인은 어떤 자를 온전히 내 사람으로 들이는가. 그것은 거창한 맹세가 오갈 때가 아니라,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그 뜻이 통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법이다. 반대로 제 희생은 몹시도 고귀하게 포장하면서 남의 희생은 헌신짝처럼 여기는 자를 마주할 때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일말의 미련도 없이 관계의 문턱을 닫아버리고 만다.

 

본인은 등대처럼 굳건히 버티고 서면서도, 타인의 삶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짓은 몹시도 경계한다. “어째서 남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만 한단 말인가?” 참으로 딱딱한 노릇인데 건강한 관계란 서로를 좀먹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궤도를 지키며 나란히 흐르는 파도와 같은 것이다. 망망대해를 떠돌다 우연히 결이 맞는 파도를 만난다 한들, 섣불리 엉켜들지 않고 그저 그 리듬을 타며 잠시의 연대감을 음미할 따름이다. 상대가 먼저 손을 뻗기 전에는 결코 움직이지 않으며, 물거품이 스러지듯 찾아오는 이별 또한 그저 대자연의 섭리라 여길 뿐이다.

 

이제 현실의 바다를 지나, 작금의 현대 사회가 빚어낸 '디지털 바다'에 이르러서는 본인의 이런 철학이 한층 더 맹렬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상공간의 관계는 철저히 '나'라는 현생의 자아와 동떨어져 있어야 마땅하다. 인터넷이란 본인이 겪어본 적도 없는 기이한 세계관들이 난립하는 심히 위험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난장판인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허상의 바다에서 사람들은 제 약점은 꽁꽁 숨긴 채 알량한 장점만을 치장하여 추종자를 긁어모으려 든다는 점이다.  제 자신도 한참 모자란 주제에 남의 허점이나 흠결은 눈곱만큼도 용납하지 않고 차단해 버리는 작태라니, 참으로 위선적이고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 공간에서 맹목적인 분노를 배설하며 남을 쥐고 흔들려는 자들을 마주할 때, 본인의 처세는 현실과 다를 바 없이 철저한 '방관'인 것이다.

 

그들은 그저 억눌린 울분을 토해낼 구석이 필요했을 뿐이니, 내가 나서서 그들을 개도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은 품지 않는다.

 

하나 만약 그 허상의 바다에서 부글거리는 맹독성 거품들이 선을 넘어 나의 고요한 현실 해변까지 밀려들려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나는 일고의 망설임 없이 접속을 끊고 그들을 완벽한 적막 속으로 내던져버릴 작정인데. 굳게 닫힌 등대의 철문처럼, 내게는 언제든 스위치를 내려 타인의 악의를 내 세상에서 지워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여러 번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탁하지도 않은 일에 자기 줏대를 드미는 사람은 피곤하다. 정말로 피곤하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 익명의 난장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내가 살아가는

'현생'에 털끝만 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철벽을 치는 일이다.

 

 

때로는 이 거대한 파도의 휩쓸림이 본인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캄캄한 심연으로 끌어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삶의 끝자락이 늘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는 잔혹한 진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본인은 그 무자비한 운명의 농간 앞에서도 그저 담담할 따름이다. 매일같이 땀을 흘리며 몸을 혹사하는 이유 또한, 그 거대한 혼돈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의 뼈대를 잃지 않고 버텨내기 위함인 것이다.

 

먼 훗날 본인이 이 모든 인연과 굴레를 훌훌 벗어던지고 먼바다로 흘러가 버렸을 때, 남은 자들이 나를 어찌 기억할지는 본인이 내가 생각할 필요는 없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을 탈옥하여,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그저 적막한 바다를 내려다보며 차나 한 잔 축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궁극의 자유를 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통제 없는 등대이자 얽매이지 않는 파도로써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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