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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ieri2026. 4. 3. 17:16

나는 흔히 사랑의 끝에서 마주하는 상실을 '아픔'이나 '실패'라는 단어로 정의하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가치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비로소 증명된다고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폐허는 단순히 버려진 잔해가 아니라, 내가 통과해온 치열한 사랑의 흔적이자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가장 깊은 기둥이다. 나에게는 누구나 열기 두려워하는 붕괴의 문이 있고, 그 문 너머에서 세계가 소멸하려 할 때 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내가 무너지는 파편에 사랑하는 사람이 다칠까 봐 그를 문밖으로 밀어내는 행위는 매정한 거절이 아니라, 내가 썩어 문드러지는 토양이 되어서라도 상대의 생을 보전하려는 가장 처절하고도 숭고한 사랑의 형태다. 이때 홀로 남겨진 내가 느끼는 지독한 안도감은, 적어도 소중한 이를 이 붕괴로부터 지켜냈다는 안심에서 오는 슬픈 평온이라 할 수 있다.

 

이별 후 나는 그간의 시간이 헛수고였다고 자책할지 모르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내가 베푼 사랑보다 누군가로부터 얻은 ‘사랑받은 가치’를 끝까지 지키려 하는 존재다. 관계가 끝나 물리적 결합은 사라질지라도 상대가 나를 가장 빛나는 눈으로 봐주었던 기억과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던 마음은 나의 영혼에 문신처럼 새겨져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그 폐허 속에 상대가 남기고 간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보물 같은 확신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에게 상처는 도려내야 할 종양이 아니라 나라는 집을 짓는 설계도 그 자체가 된다. 진정한 나만의 서사는 아무런 상처 없는 백지 위가 아니라, 나를 무너뜨렸던 관계의 파편들을 수거하여 나의 삶의 무늬로 받아들일 때 완성된다. 상처가 남긴 빈자리를 지반으로 삼는 나의 집은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갖게 되며, 이 아픈 과거를 긍정하는 것이 곧 지금의 나를 긍정하는 기초가 된다.

 

이러한 건축의 과정 끝에 세워진 나의 집의 일차적인 독자는 나 자신이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언젠가 나를 깊이 들여다볼 ‘다음 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 폐허로 지어진 나의 집 한편에 작은 방을 내어주되, 그 공간에 들어올 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나의 환대 방식이다. 상대에게 특정한 감정이나 반응을 기대하는 것조차 그를 나의 틀 안에 가두는 구속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기대를 내려놓음으로써 타인이 아무런 부담 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의 폐허를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결한 형태의 열쇠이자 존중이다. 결국 사랑은 상대를 내 곁에 묶어두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가 남긴 가치를 동력 삼아 스스로의 삶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여정이다. 비록 관계가 무너져 폐허가 될지라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이야기는 이전보다 훨씬 투명하고 단단한 나를 비추며, 나를 모두 소진하더라도 그 모든 흔적은 또 나의 한 부분이 되어 영원히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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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i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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