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를 꿈꾸며 도쿄의 삭막한 빌딩 숲 사이에서 일본인 친구와 나눈 대화는 결국 본질적인 의문으로 흘러갔다.
한국에서 자라다가 이제는 시드니에서 유학하며 조금은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는 나,
그리고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교육받고 이제는 도쿄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너.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달려온 우리의 시야는
도쿄라는 교차점에서 마주한 풍경은 기이하게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자란 친구들이 조금 거칠게 느껴졌던 건 단순히 그들의 '매너'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해진 시스템 밖에서,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투쟁해 온 삶의 흔적들이 그들의 몸짓과 언어에 녹아 있었기 때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진짜 나를 허무하게 만드는 건 그들의 거침이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이 숨 막히게 매끄럽고 비효율적인 '시스템' 그 자체다.
우리는 그들의 거침을 '교양 없음'으로 치부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온실 속에서 누려온 안락함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일본 회사에서 신입 사원들에게 비즈니스 매너부터 인사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치고 있는 선배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친다.
"그럼 지난 4년, 대학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했던 걸까? 그저 교수들의 안락한 삶을 교육이라는 탈을 쓴 복지 기구였나?"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 중 실무에서 '정말 필요하다'고 인정받는 건 거의 없다. 우리가 쌓아온 학문적 성취는 사회에 나오는 순간 "아, 좋은 대학 나오셨네요"라는 공허한 꼬리표로 전락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하지 않았던 시절, 그저 '의대'라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달렸다. 하지만 지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의대를 준비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나의 모습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그 화려한 목표라는 껍데기가 나를 정의해 줄 거라 믿으며, 나는 성실함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썼다.
하지만 사회가 내준 결과물은 '양복'이라는 제복이다.
사람을 하나의 복장으로 규정하고, 모두가 똑같은 '사회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
각자의 투쟁과 개성은 거세된 채,
시스템에 잘 길들여진 부품임을 증명하는 옷차림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진정한 교육이야 당연히, 나는 이제 교육이 다각적인 시야를 갖는 법을 넘어, 내가 당연하게 지니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투쟁의 대상인 '특권'이었음을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대에 가고 싶어 하며 고뇌할 수 있었던 그 시간조차, 누군가에게는 사치였을 생존의 결과물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대학은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큰 흐름 속에서 나의 위치를 파악하며,
내 의견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타인의 고통과 배경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만약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면, 3, 4학년 과정을 이원화하여 연구직과 현장 실무자를 구분하고,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의 중심에는 반드시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특권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렇게 성실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도, 앞을 보고 달려오는 내 삶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짜인 틀 안에서 너무나도 착실하게 속아 넘어온 것 같아 씁쓸해진다. 그가 말하는 바다가 없는 도쿄를 벗어나 시드니로 하루빨리 떠나고 싶어 하는 그의 갈망은, 어쩌면 이 '기만의 시스템'에서 가장 멀리 달아나고 싶다는 본능적인 저항일지도 모르겠다.
제복을 벗어 던지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진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 우리는 정말 무엇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걸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강렬한 위화감이야말로, 대학이 가르쳐주지 않은 가장 가치 있는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이렇게 사고하고 생각하고 배려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많이 한다.
글을 쓰지 않고, 그저 말로만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도 많이 보았으니까
당장은 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졸업이라는 단추도 매지 못했다. 지금이라는 단추를 매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다음 단추를 매려고 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내가 너무 깊게 파고들어 와, 피드백 루프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