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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동안 멈춘 시계는 고장 난 것인가?

@Salieri2026. 3. 18. 07:12
여기 고장난 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100년 동안 고장난 시계다

 

 

어느 외딴 마을의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이 거대한 시계탑의 바늘은 정확히 100년 전 어느 날, 오후 3시 15분에 멈춰 섰다. 그 이후로 톱니바퀴는 단 한 번도 맞물려 돌아간 적이 없다. 우연히 이 마을을 방문한 이방인은 시계탑을 올려다보며 혀를 찬다. "저렇게 훌륭한 시계가 100년이나 고장 난 채로 방치되어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군." 이 이방인의 손목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자시계와 동기화된 최신형 스마트워치가 째깍거리고 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삶은 이방인의 얄팍한 동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평온하게 흘러간다. 아침에 눈을 뜬 사람들은 여전히 3시 15분을 가리키는 시계탑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태양이 중천에 떴을 때도, 저녁놀이 광장을 붉게 물들일 때도 바늘은 3시 15분에 머물러 있지만, 사람들은 그 멈춰 있는 바늘 아래서 모이고 흩어지며 자신들만의 리듬을 이어간다 이어간다.

 

지난 100년 동안 이 마을 사람들은 오직 그 '멈춰 있는 바늘'에 삶의 리듬을 맞추며 살아왔다.

 

이 기묘한 풍경은 나의 마음에 다가와, 나에게 질문한다. 과연 이 시계는 고장 난 것인가? 우리가 그토록 맹신하는 절대적 '시간'의 실체는 무엇인가? 1000년동안 고장난 것을, 우리는 과연 "고장났다" 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방인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시간이 우주 어디에서나 똑같은 속도로 흐른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이라는 믿음은 물리학의 렌즈로만 보아도 이미 낡은 환상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증명하듯, 시간은 관찰자의 위치와 중력에 따라 각기 다른 기하학적 궤적을 그리며 휘어 나간다. 

 

 

빛의 속도로 우주를 유영하는 이와 지구에 남은 이의 시간이 결코 같을 수 없듯이, 100년 동안 3시 15분에 머물러 있는 이 마을의 시공간 역시 외부의 오만한 잣대로 '틀렸다'고 재단할 수 없는 그들만의 상대적이고 고유한 존재들이 아닌가? 

 

나는 반대로, 시계탑의 바늘이 멈춘 100년 전의 그날, 이 거대한 쇳덩어리는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통찰했듯이, 도구는 일상적으로 작동할 때 그 존재를 숨기지만 '고장 났을 때' 비로소 그 낯선 민낯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기계적인 째깍거림을 멈춘 순간, 시계는 무심히 시간을 통보하는 맹목적인 기계의 가치를 벗어던졌다. 대신 "인간은 본디 시간적 존재"라는 하이데거의 선언의 말을 증명하듯이,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수동적인 시간의 관찰자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엮어 현재의 의미를 창조하는 주체로 거듭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당연한 가치의 재생성을 당면했다

 

정지된 바늘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물리적인 톱니바퀴의 회전(기계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생생한 '체험된 시간(앙리 베르그송의 지속)'을 만들어내기 시작해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멈춰버린 시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시계의 본질적인 목적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시계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우주의 진리를 계측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공통의 기준점을 제공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바늘은 3시 15분에 멈춰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노동과 휴식의 경계를 지어주고 있다면,

 

이 시계는 기계적으로는 정지했을지언정 사회학적으로는 그 어떤 시계보다도 튼튼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공유하는 3시 15분은 오류가 아니라, 100년의 세월이 단단하게 빚어낸 가장 완벽한 '사회적 구조'일 것이다

 

사물은 부서지거나 멈출 때 고장 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맺고 있던 관계가 끊어지고, 그 안에 담긴 실존적 의미가 텅 비어버릴 때 비로소 고장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고장 난 시계는 무엇인가? 100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세계를 지탱해 온 멈춘 시계탑인가, 아니면 이 마을의 질서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한 채 이방인의 손목에서 홀로 무의미한 숫자를 바꾸고 있는 스마트워치인가. 흐르는 물리적 시간을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고유한 세계를 창조해 낸 저 시계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게 박동하는 심장일수 있지 않나? 

 


결어

최근들어, 물질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의 "당연함" 에 의문을 같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나의 존재 또한 당연함을 넘어, 의문을 가져야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오히려 나는 그 "나"를 갈구하기 위해 , 아니 "나"라는 존재를 알아내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나' 라는 존재를 "부정"하게되는 순간, "나" 는 더욱 더 "존재"하게 되는 상황을 당면하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의 유명한 말은, 이런 것인가? 하고 나는 또 다시 나에게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이 시계탑의 이야기는 비단 광장에 서 있는 차가운 쇳덩어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때로는 우리 삶 자체가 이 100년 멈춘 시계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완전한 한 부분이 되어 살아왔으나, 이제 그 사람은 곁에 없는 상실의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을 떠난 그 사람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내야만 한다는 먹먹한 다짐. 

 

그것은 한 개인의 얄팍한 자유의지를 뛰어넘어, 남은 자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는 거역할 수 없는 '원칙'이 되고, 하나의 부분이 된다. 누군가를 잃은 순간 나를 움직이던 개인적인 톱니바퀴는 영원히 멈췄을지 모르지만, 떠난 이와의 끊어지지 않은 굳건한 '관계'가 나를 계속해서 숨 쉬고 박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멈춰버린 고장 난 삶 같을지라도, 그것은 결코 고장 난 것이 아니다. 떠난 이의 몫까지 짊어지고 그의 영원한 증언자로서 살아가는, 눈물겹도록 숭고한 존재의 증명이지 않나? 

 

 

시계는 이미 시계의 기능을 이미 상실했다. 더 이상 시간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 시계는 기능을 상실 한 것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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