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십 대는 조절할 수 없이 일렁이는 우울의 수위(水位) 속에서, 사소한 빛조차 눈을 찔러오고 타인의 평범한 말 한마디가 유독 시리고 아프게 박히던 과민한 계절이었다. 망막을 태울 듯한 원색의 잔상들과 갈 곳 잃은 감정들이 사방에서 할퀴어대던 그 소란스러운 과부하. 문득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어 '인간의 죽음'이라는 주제가 그토록 매혹적이었던 까닭은 그것이 세상의 모든 소요를 단번에 잠재우는 가장 완벽하고도 정갈한 침묵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생(生)이란 본질적으로 분열된 파편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단 한 순간도 온전한 전체로 존재하지 못한다. 그저 미완의 조각들을 누더기처럼 기워 붙이고는, 그것을 '나'라고 부르며 객관이라는 오만한 환상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킬 뿐이다. 지식의 저주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나에게 당연한 이치가 타인에게 닿기까지는 그 무거운 배경지식을 일일이 설득해야 하는 노역이 따르는데, 그 배경을 공유하지 못한 대화란 결국 같은 달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그림자를 쫓는 이들의 공허한 신음일 뿐이다.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비릿한 가르침이 되어버리고, 그 지점에서 인간의 대화는 품격을 잃고 추락한다.
인간은 저마다 고립된 섬에서 서로 다른 노을을 바라보면서도, 그 지평선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좀체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령, 어느 마라탕 집의 육수가 탁했던 단 하루의 기억은 내 세계라는 하얀 도화지 위에 떨어진 지우지 못할 먹물 한 방울과 같다. 타인에게는 그저 찰나에 스쳐 지나간 사소한 흠결일지 모르나, 나에게 그것은 그 집의 모든 풍경을 잿빛으로 물들여버리는 100%의 진실이 된다. 이 지독하리만치 선명한 주관의 무게 앞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저울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된 대화란 그 얼룩의 형태를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바람이 불어 그 잉크 방울을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그 마음의 시원(始原)을 향해 굽이진 발자취(Trace back)를 묵묵히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치명적인 무지를 드러낸다. 인간의 감정 또한 크기만을 가진 스칼라가 아니라, 엄연한 '방향'을 가진 벡터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감정을 단순히 '얼마나 깊은가'라는 양적인 부피로만 가늠하려 든다. 그러나 감정은 그 크기만큼이나 서슬 퍼런 방향성을 지닌 법이다. 내가 내뿜는 온기가 아무리 거대할지라도, 상대의 좌표를 비껴가거나 엉뚱한 허공을 가로지른다면 그것은 다정함이 아니라 불쾌한 열기에 불과하다. 방향이 어긋난 두 마음이 합쳐질 때 일어나는 기괴한 비틀림을 보라. 사람들은 제 감정의 질량이 무겁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기어이 타인에게 닿아야 한다고 오만하게 믿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비겁하고 유약하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비바람과 벼락을 이겨낸 거대한 나무가 고작 딱정벌레 한 마리의 좀질에 무너져 내리듯, 인간의 인내 또한 사소한 악의와 치졸한 화에 허무하게 고꾸라진다. 특히 가해자가 스스로를 피해자라 믿으며 연민의 가면을 쓰는 그 악독함 앞에서, 섬세한 영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침묵이라는 외투를 껴입는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다 필연적인 생존의 태도이며, 대화를 거부하는 상대에게 남겨두는 마지막 예우의 공간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 고요한 침묵을 가만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따뜻함'을 내뱉으며 상대의 감정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허기를 드러낸다. 그 인위적인 온기의 이면에는 위선이라는 얇은 막으로 감싼 보상심리가 숨어 있다. 사랑한다는 고백조차 실은 홀로 서지 못하는 자아가 타인의 눈동자라는 거울 속에서 간신히 자신의 존재를 승인받으려는 비루한 구걸에 가깝다. 그들은 자신이 듣지 않음을 탓하기보다 타인이 듣지 않음을 원망하며, 에코체임버 안에서 일그러진 확신만을 메아리친다.
나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비산(飛散)하던 자아가 비로소 하나의 중력으로 모여 완성되는, 생애 단 한 번뿐인 '완결의 문'이다. 부서져 버린 가치들 사이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백의 패턴들,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명징한 목소리처럼 죽음은 모든 군더더기를 박락(剝落)시키고 인간을 비로소 온전하게 만든다. 그 절대적인 영점(Zero point) 앞에서 감정의 방향도, 크기도, 그 기만적인 벡터의 소음도 비로소 고요히 가라앉는다.'
늘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그것은 취사선택이 아닌 신념 하에 행동하는 지독한 고통이지만, 나는 이 고독마저 아끼기로 한다. 소음으로 점철된 생의 끝에서 마주할 유일한 순결함을 위해, 나는 누구보다 진실된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이 서늘한 감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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