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 그러니까, 나의 감정 속 괴물을 나는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것은 내가 원해서 키운 것이 아니라, 나의 선함과 그 순수한 의도를 끝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겹겹이 쌓아 올린 오해의 벽 안에서 태어난 존재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편견으로 창살을 세우고, 그들이 만든 감옥 안에 나를 가두어 둔 채 자신들만의 정의를 논한다. 그곳에서 나는 숨을 죽이고 마주한다. 세상이 다각적으로 나를 해석하기를 포기하고, 오직 단편적인 모습만을 발췌하여 나라는 존재 전체를 규정해 버리는 그 무참한 시선들을 말이다. 타인의 악함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혹은 무지하면서도, 정작 눈앞의 누군가가 내민 선의의 손길에 대해서는 현미경을 들이대며 그 이면의 추악함을 찾아내려 혈안이 된 그들의 일그러진 정의감을 나는 마주한다.
그 좁은 시야가 만들어낸 단단한 벽 안에서, 나는 내가 가졌던 본래의 의도가 변색되고 짓밟히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내가 진심을 다해 내민 손이 누군가에게는 가시 돋친 위협으로 읽히고, 내가 타인을 배려하여 어렵게 삼킨 침묵이 누군가에게는 비겁한 회피로 치부될 때, 내 안에서는 억울함과 냉소가 뒤섞인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몸집을 불린다. 이 괴물은 상처받은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두른 가시이자, 이해받지 못한 영혼이 내뱉는 고독한 울음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휘두르는 잣대가 타인의 영혼을 얼마나 난도질하는지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정의라는 자를 들고 오만하게 세상을 재단한다. 그 자에 맞지 않는 모든 선의는 불순한 의도로 의심받고,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배려는 그저 값싼 위선이라는 딱지가 붙어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진정한 선의란 본래 행위자의 내면 깊은 곳에서 피어난 가장 연약하고도 순수한 불꽃이다. 그것은 계산되지 않은 충동이며, 누군가의 고통에 공명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울림이다. 그러나 차가운 세상은 그 불꽃의 온기를 느끼려 하기보다, 오직 그 불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혹은 자신들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지라는 결과값으로만 가치를 매긴다. 이 비정한 평가의 과정에서 행위자의 진심은 무참히 거세당하고, 오직 타인의 편의에 따라 재구성된 껍데기만이 남겨진다. 이것은 명백한 정서적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서서히 말라간다.
더욱 서글프고도 잔혹한 사실은, 타인의 사소한 선함을 의심하고 파헤치는 데 기력을 소진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눈앞에 실재하는 거대한 구조적 악함이나, 정교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타인의 진짜 악의는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해둔 협소한 '선함의 규격'에만 집착하느라, 그 규격을 교묘히 연기하며 자신들을 기만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박수를 보낸다. 다각적인 해석과 깊이 있는 통찰이 결여된 그들의 정의감은 결국 무고한 누군가를 마녀로 몰아세워 제물로 삼고, 정작 사회의 근간을 해치는 진정한 어둠은 방치하거나 옹호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가운 바닥에 앉아 내 안의 괴물을 달래며 다시금 생각의 실타래를 푼다. 비록 세상이 나의 의도를 끊임없이 오독하고 나를 그들이 설계한 차가운 감옥에 가둘지라도, 내가 가졌던 선함의 시작점만큼은 온전히 나의 영토에 속해 있다. 타인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내가 수행했던 100시간의 위선이, 설령 그것이 이기심에서 출발했을지언정 누군가에게는 실질적인 100시간의 구원이자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되었다면, 그 가치는 그 누구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엄연한 실체다. 결과론적인 세상은 과정의 고통과 갈등을 쉽게 외면하고 지워버리지만, 나는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지키려 했던 가치들, 그 서툴고도 간절했던 마음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인 악도, 절대적인 선도 존재하지 않는 이 안개 자욱한 불투명한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의 진심 어린 선의가 타인의 일그러진 창을 통과하며 악의로 통역되는 그 지독한 괴리감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그것이 첫 번째다. 그리고 나조차도 혹시 타인이 내민 서툰 호의를 나의 좁은 잣대로 재단하고 '위선'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지는 않은지, 내 안의 정의감이 누군가를 가두는 창살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이 두 번째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이 괴물은 아마도 타인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길 바라는, 혹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간절하고도 처절한 갈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이 괴물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다. 나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이 존재가 언제든 나를 집어삼켜 타인이 규정한 진짜 악마로 만들어버릴까 봐 무서운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괴물을 억지로 거세하거나 몰아내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괴물과 함께 이 감옥의 벽을 하나씩 허물어뜨리며 밖으로 나갈 방법을 고민하려 하고 있다.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한다면, 내가 세상을 더 깊고 넓게 보는 수밖에 없다. 오해받는 고통을 기꺼이 짊어진 채 다시 한번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를 보지 못하는 무지한 세상을 향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결하고도 마지막인 선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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