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기장을 지속적으로 들춰보시는 자들에게 감사함의 마음을 담고, 다양한 생각으로 글을 쓸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전공이 나의 세계관이 되어 멈추어서는 안 되고 반대되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해서는 아니 되듯이. 생각을 보다 입체적으로 설계하고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갈려고 하고 있다. 지금 당장,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 또한 "이 사람의 생각은 크게 왜곡되어 있다"라고 말을 한다면, 나는 동시에 내 생각이 나에게는 보편적 진리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의 생각 또한 나의 입장에서는 크게 왜곡되고 보편적 시야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을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그것이 "다름"의 척도이지 "옳고 그름"의 척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공간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지, 너의 생각과 나의 생각 그리고 방향성을 고려하고 인생의 전략과 운영의 전략을 보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안타까운 "학생"의 마음으로 어느정도 자율도를 갖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은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다.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유연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생각해야한다
다시 한번 내 블로그에 방문해 주는 모든 이에게 감사함의 마음을 올리면서, 글을 시작해 보자
최대한 나의 글을 가볍고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나의 주제가 어렵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이것은 당장의 시야를 보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당장의 시야 또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거시적인 시야를 갖고 보는 관계 속에서 또 다른 관계망 적인 시야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입장과 위에서 전체를 보며 지시하는 지휘관의 생각 차이는 엄청나다. 이처럼 시야의 차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을 나만의 좁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사람과 조직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행동과 가치관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지어 더 위로 올라가, 구성군사령부 레벨에서 연합사령부, 합참, 더 나아가 국가 레벨로 시야를 넓혀보면 개인 단위의 사고가 얼마나 작게 보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시야의 차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을 나만의 좁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사람과 조직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행동과 가치관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각자의 위치에서 보이는 세상이 이토록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타인의 선택이나 조직의 방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이처럼 입체적인 시야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을 나만의 좁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사람과 조직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행동과 가치관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평소에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상대방의 진짜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시야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직접 서보고 겪어본 사람만이 비로소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를 보는 시야를 키우는 것은 좋았다. 전체적인 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바라보고 시스템을 설계해 보며, 동시에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상황이 벌어지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 난 뒤에 본 세상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거대한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동시에,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운이 따라야 하는 일인지도 깨달아야 한다. 이 설계된 시스템 속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수억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이루어진 기적이니까.
그러나 이 수억 분의 1의 기적 속에서도 종종 관계의 비극을 마주하게 될 때면 마음이 아프다.
그 비극은 서로 마음이 달라서가 아니라, 같은 것을 보면서도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데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하고, 실망하며,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먼저 보게 된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성 역시 서로 다른 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마음의 색은 어둡다. 그 어둠 속에서 다른 이의 밝은 마음을 보고 다가왔으나, 사실 그 밝음이 그 사람 입장에서는 가장 어두운 부분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달빛이 비치는 세상에 새로 태어난 별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게 되었으나, 누군가 그 빛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별빛의 에너지마저 소진되어 버렸을 때, 관계의 비극은 시작된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이제는 각기 다른 길을 가면서, 내가 관여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서로의 마음은 있지만, 동시의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행태와, 이해받길 원하고 같이 견뎌내 줄 사람을 찾는 사람의 마음과, 동시에 위로만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공존할 수 없었다. 이들은 열렬히 사랑했지만, 그 끝의 공허함을 나는 보았다.
둘을 동시에 친구로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있어 축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극이었다. 축복이었던 점은 서로의 마음의 방향성의 차이를 보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요. 비극이었던 점은 내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서로의 방향이 어떻게 틀어지고 이어지고 망가지고 또 다른 형태로 관측할 수 있었던 점은 높게 산다.
무엇보다 내가 관여해서는 안된다.
라는 마음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의 인생 방향성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서로의 길이 어떻게 여전히 서로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는지. 그것을 정작 당사자들은 보지 못하고, 관계에서 한 발짝 벗어난 관찰자만이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관계가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하지만 이 안타까운 관찰자로서의 경험은 나에게 뜻밖의 위안과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나 역시 이 거대한 관계망을 완전히 벗어난 관찰자가 아니라, 결국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마음 안에도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타인들이 남긴 무수한 영향과 흔적들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두 친구의 엇갈린 궤도를 지켜보며 속으로 조용히 그들의 앞날을 응원하고 있듯이, 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는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나를 지켜봐 주고 묵묵히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은 묘한 안도감과 따뜻함을 안겨주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거대한 시스템 속 수억 분의 1의 확률로 얽힌 존재들이다. 때로는 시야의 차이로 인해 엇갈리고 비극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끈끈한 연결망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누군가의 조용한 응원 속에서 각자의 궤도를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바라보며 얻은 또 하나의 입체적인 시야다.
결어
구원자 콤플렉스를 가지는 놈들이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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