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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감 :: 負債感

@Salieri2026. 3. 6. 09:23

타인이 필요하지 않은 내가 되었지만, 동시에 타인을 버텨주게 하지 못한 내가 되었다

 

어느새부터인가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내 일기장이 세상에 공개되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의 일기장을 읽어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한번쯤 나의 시야에서 생각해 보는 그 잠깐의 시간이, "나의 부분"을 다수에게 심어 보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전에도 말했듯, 이것이 선한 영향력의 순환으로 이어진다면 나는 두 팔 벌려 환영하리라

 


 

이야기 시작에 앞서, 내가 생각하는 사람간의 정서적 교류가 무엇인가 하는 단어의 정의를 내리고 시작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잠깐의 대화로 사랑을 시작할 만큼의 교류를 하고, 어떤 이들은 잘은 모르겠지만 만나가는 교류를 정의한다. 여기서 내가 정의 내린 교류의 길이는 최소 6개월 에서 1년의 교류를 의미하고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교류를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동시에, 그 과정에는 상호 간의 이해와 존중이 토대가 되어 깔려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존중이란, "타인이 무엇을 하던, 어떤 의도로 어떤 생각을 하던, 나와 상관이 없다"라는 것을 나는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세계관이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있는지는 몰라도 "믿는 사람" 앞에서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마저도 보여주니까 말이다.

 

그 정도의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쉽지만 "누군가를 만나서는 아니된다" 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전에도 말했듯, 사람은 각기 다른 세계관과 주변사람 그리고 환경에 따라 본인이 생각하는 보편적 사회 규범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정의로 타인을 바꾸어서는 아니 되고 동시에 타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본인의 규칙하에 규제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존중이요 교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본문

이제, 단어의 정의를 끝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정의" 다. 그들이 무슨 말을 주장하던, 나는 그것이 토론과 회의의 장소가 아닌 이상 설득의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과 인간과의 대화가 논박을 다루는 상황이 된다면 혹자들은 자신의 의견이 부정당했다고 생각해 열리지 않은 마음을 굳게 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한번 닫힌 마음이 열리기 까지는, 1년은 짧고 3년은 보통이며, 길게는 5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애초에 닫히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러한 사회적, 정치적 대화를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규범이요 규칙이지, 나의 규칙은 그런 이야기를 하여 다양한 시각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이 경우 어떻게 하나". 그렇기에 나는 또다시 말한다, "상대방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꺼내지 말라" 이런 이야기를 누누이 백번 수백 번 이야기해도 이야기는 닿지 않기 때문에 만일 어휘의 사용이나 시야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만.

 

어쩔 수 없다. 그 관계는 애초부터 맞는 관계가 아니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아니 섬세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작은 엇갈림이나 가벼운 논쟁에도 쉽게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내가 상처받기도 원치 않았던 나는 결국 타인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을 더욱 엄격하게 긋게 되었다. '존중'이라는 이름 아래 철저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스스로 체득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완벽해 보이던 나만의 방어기제와 인간관계의 규칙 끝에,

내게 남은 감정은 기묘하게도  부채감(負債感)이었다.

 

 

나는 타인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았고, 나의 가치관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 나는 스스로 서 있는 단단한 어른, 즉 '타인이 필요하지 않은 나'가 되는 데 성공했다.

 

나는 누군가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비틀거릴 때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진흙탕 속의 동반자가 되지는 못했다.

 

후회스러운 것은 부드러운 안식처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단단한 토대를 양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토대를 본 사람들이, 그곳이 나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임을 알려줘도 불만이 생기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사실 자체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정작 내 곁의 누군가가 논리와 이성을 넘어선 맹목적인 온기, 혹은 "내 일처럼 화를 내고 슬퍼해 줄" 누군가를 간절히 필요로 할 때, 나는 그 선을 넘어가지 않았다.

 

상처 주지 않으려는 나의 극도화된 조심성은,

결국 상처를 치유해 줄 기회마저 스스로 박탈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떠나간 자리에는 온기가 남아있긴 한데, 그래도 괜찮다.

어떤이들은 그곳에 기생하니까

 

 

나는 타인에게 아무런 짐도 지우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으나, 정작 누군가 나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할 만큼의 너른 품을 내어주지 못했다. 내가 외로움을 견뎌낸 방식이 타인에게는 무심함으로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누군가는 나의 그 철저한 '존중' 앞에서 오히려 깊은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자각. 이것이 지금 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는 부채감의 정체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빚을 지고 빚을 갚는 정서적 난장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히 독립된 섬으로 남는 것은 평화로울지언정, 서로를 버텨주지는 못하니까.

 

 

타인이 필요하지 않은 내가 된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을 힘을 얻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조금씩 넓혀가려 한다. '너의 일은 너의 것'이라며 돌아서는 대신, 때로는 투박하더라도 선을 넘어 손을 내미는 용기를 내어보고 싶다.

 

 

나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당신들에게, 나의 이 서툰 부채감에 대한 고백이 또 다른 형태의

'선한 영향력'으로 가닿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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