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 Engineering을 공부하고, Data Pipeline의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학부생 레벨의 공부는 도구를 얼마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의 레벨이지. 이 도구를 응용하여 새로운 방식의 도구를 짜내는 것은 석사의 일이요 새로운 정리를 찾아내는 것은 박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대학이 사회와 달리 관용의 정책을 하고 있는 것은, 도구의 사용에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내 포항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 시작에 앞서, 내가 말하는 "순수함" 이 무엇을 말하는지 글 앞에 잠시 붙여두도록 하겠다.
- 무지(無知)에서 오는 순수함: 세상을 잘 모르기에 가질 수 있는 아이 같은 호기심과 감정적인 순수성
- 지혜(知慧)를 거친 순수함: 세상의 복잡성과 차가운 논리를 모두 이해하고도, 기꺼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선한 의지를 선택하는 단단한 마음
그리고 내가 잃어 가는 순수함의 두려움은, 무지의 순수성 속에 있는, "질문"하는 능력이다. 때론 보편적 진리는 바보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나의
구태여 이런 이야기로 서문을 여는 것은, 질문을 하는 것의 "순수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깨닫고 있기 때문이랬다. 아니, 질문의 방향성이 "본질" 적인 질문으로 다가가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어떠한 질문을 잘할 줄 아는 것이 문에 해결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니까. 그것이 엔지니어의 자세요, 연구자의 자세이다. 하나, 이 배움의 과정 속에서 나의 인간적인 면모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문제가 주어지고, AI를 활용하고,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새로운 의견을 덧 붙여 설계를 바꿔 나간다.
그 설계의 변경으로 우리는 보다 "효율적인" 것을 제시하였지만, "효율"이 모든 것을 대변해서는 아니된다 어디까지나 공학, 그러니까 Engineering 은 인간의 편의성의 증대에 본질을 두어야 하는 것이지, 인간적인 면모를 제외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Engineering 이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다루고자 하는 이 차가운 'Data Pipeline' 안에도 결국 사람의 흔적이 흐르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정제하고 이동시키는 데이터는 단순한 0과 1의 나열이 아니라, 누군가의 행동과 삶, 그리고 사회의 단면을 투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밀리초 단위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이뤄낸다 한들, 그 끝에 닿아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을 보듬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파이프라인은 길 잃은 기술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나의 이 두려움이 순간의 감정이지, 영원의 감정이 아니길 기원한다. 두려움이 나를 발전시키고 걱정이 다음페이지를 여는데 큰 토대를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들춰본다면, 순수성을 잃고 싶지 않아 발버둥 쳤던 지금의 갈망이 어쩌면 치기 어린 부끄러운 치부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던, 그저 순수함 그 자체를 사랑했던 내 모습이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기록을 남긴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차가운 금속성의 존재로 승화되어 버린다면,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내 목소리를 활자로라도 붙잡아두고 싶었다.
결국, 아무리 세상에 대고 이 이야기를 외친다 한들, 이 감정에 온전히 공감하고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조금 더 섬세하게 내 안의 요동치는 감정을 기록한다. 지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차가운 이성 이면에 숨 쉬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리면서 말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10대의 두려움이 20대를 대변하지 않으며, 20대의 두려움이 30대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의 두려움 또한 미래의 나를 대변하지 않을 것임을 , 그리고 그것이 불변의 진리임을 나는 나의 경험이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잡아두고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지 않으며 내 스스로 하나하나 흝어보며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느 정도 성숙함을 나타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나의 항해가 과연 준비된 것으로 올바른 항로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나를 여러개로 분리하여 나 자신과 대화를 여럿 해보았지만, 그 본질은 결국 "나"라는 같은 데이터 속에서 나오는 길이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보다, 나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방향을 지휘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해답의 실마리라도 찾을까 싶어 TV를 켜고, 뉴스를 보고, 인터넷의 피드를 하염없이 넘겨본다. 하지만 세상이 쏟아내는 그 가벼운 정답들을 보고 있노라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우리 시대의 평화"를 약속하며 종이를 흔들어 보이던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당장의 불안을 달래주는 듯한 세상의 수많은 조언들은, 어쩌면 다가올 근본적인 폭풍을 외면하게 만드는 거짓된 위안일지도 모른다. 결국 거짓된 평화에 기대지 않고, 차가운 지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며, 이성 이면에 숨 쉬고 있는 나의 따뜻한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며 나아가는 것 일 테니.
작금의 슬픈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다. 정말로, 안타깝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나는 내 순수함을 잃기 싫었다. 그 순수함 마저도 잃어버린 다면 떠나간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오, 넘겨진 순간에 대한 기억의 모독일 테니. 그렇기에 본능적 재미를 추구했지만, 이 마저도 시계는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 그 기록을 남겨 다시 이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얼마나 심사숙고했는지를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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