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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이야기

@Salieri2026. 3. 2. 06:51

이번에는 선인이자 악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스스로를 선인이라 굳게 믿었으나, 그 맹신이 만들어낸 비좁은 세계관 속에 갇혀 타인의 숨을 막히게 했던, 결국 내게는 악인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이야기다.


 

시작에 앞서, 선언한다.

나는 그와 깊은 속내를 나누며 교감한 적은 단연코 없다.

 

'교감'이라는 단어가 상호 간의 방향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대화는 철저히 일방통행이었다. 단지 그가 지닌 어둡고 깊은 세계관의 파편들을 일방적으로 들어본 적이 있을 뿐인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애초에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사람을 향한 얕은 호감이 단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얼마나 빠르고 맹렬하게 비호감으로 곤두박질칠 수 있는지를, 그는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는 어쩌면 사회라는 거대한 망에서 조용히 밀려나고 버려진, 위태롭고 고립된 인물이었다.

 

내 기억 속 그는 몹시도 유약했다. 정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뼈대가 없는 사람 같았다. 그의 가장 큰 비극은 마음의 토대가 '내면'이 아닌 '외부'에 존재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스스로를 정의 내리지만, 그 안에서 두 발로 온전히 서는 법을 그는 알지 못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존재 의의와 관계의 주도권을 온전히 타인에게 위탁해버렸다. 자신이 지닌 마음이 타인의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고 튕겨 나올 때, 그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기에 그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숙주를 찾아 헤맸다. 자신을 받아줄 만한 호감 가는 사람을 빠르게 포착하고, 그 틈을 타 자신의 불안정한 마음과 서사를 맹렬히 주입해야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그것은 상호 간의 교류가 아니라 일방적인 침투였고, 나는 속으로 그를 '정서적 기생충'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를 향한 일말의 안타까움은 있었다.

 

누군가에게 끝없이 기대고 의존해야만 버틸 수 있는 그 너덜너덜한 영혼이 가엾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애초부터 그에게 분명히 말했었다. "자신의 구원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그의 세계관을 억지로 뜯어고치거나, 그의 삶의 방식이 틀렸다고 끝까지 교정해 줄 의무도, 권리도 없었다. 그럴 오지랖을 부리기엔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너무도 무거웠고, 애당초 타인이 대신 구원해 줄 수 있는 늪이 아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에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버리고 떠났는지에 대한 상처를 전시하듯 쏟아냈다. 대화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서사의 중심에는 오직 '자신'만이 존재했다. 그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뱉어내기 위한 감정의 배출구, 혹은 일방적인 청중이 필요했을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에게는 마약 문제마저 도사리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했을 때 내면 깊은 곳에서 일었던 본능적인 역겨움과 거부감을, 나는 어떻게든 티 내지 않고 무던하게 넘기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 위태로운 비밀을 모른 척 견뎌내는 일은 내 진을 차갑게 빼놓았다. 감정의 무단 투기와 불쾌한 현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당연한 선택은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거리를 두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서 완성되었다. 그는 내가 치려는 방어벽을,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그 정당한 '거리두기'를 결코 인정하지 못했다. 타인의 거절을 수용하고 자신의 선을 지킬 최소한의 내면적 힘조차 없었던 그는, 급기야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자신의 상처를 받아주지 않는다*며 나를 매도하고 다녔다.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자신의 폭력성은 조금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들어낸 '상처받은 선인'이자 '불쌍한 피해자'라는 비좁은 세계관 속에서 기어코 나를 찔러도 되는 '악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그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분노보다는 차라리 깊은 연민과 씁쓸함에 가까웠다. 그는 내게 한없이 불쌍한 인물이었다. 평생을 자신의 나약함 뒤에 숨어 변명을 늘어놓고, 이기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조종하며,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에 온전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부유하듯 살아갈 테니까.

 

돌이켜보면 내가 그에게 가장 큰 역겨움을 느꼈던 순간은, 그가 관계를 규정하는 '단어'에 집착할 때였다. 그는 어떻게든 우리의 관계를 '친구'라는 단어 속에 가두려 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그런 작위적인 선언이나 명명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진정한 교감은 거세된 채 텅 빈 관계를 '친구'라는 이름표로 포장해 자신의 의존성과 감정적 착취를 정당화하려 했던 그 얄팍한 기만술에 넘어갈 "나 자신" 도 아니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선인이자 피해자이며, 때로는 타인을 구원하는 자라는 지독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굳게 믿는 그 '옳음'의 잣대에 억지로 타인을 끼워 맞춰 고치려 들었고, 심지어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일을 마치 내가 원해서 한 것처럼 교묘하게 말을 지어내기까지 했다. 그 노골적인 기만과 통제욕을 마주했을 때,

나는 걷잡을 수 없는 깊은 혐오를 느꼈다.

 

지금 다시 그때를 반추해 보면, 이것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토대' 위에 자신을 세운 나와, 철저히 '관계적인 토대'에 기대어 생존하려는 그의 거대한 세계관적 충돌이었을지도 모른다. 각자가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다름'을 핑계 삼아 타인의 경계를 무단으로 허물고,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교묘한 통제와 기만을 일삼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명확해졌다. 타인을 조종하기 위해 그가 끊임없이 생성해 내는 그 잘못된 정보와 서사들을 더 이상 받아주거나 견뎌내는 대신, 그 병든 관계 자체를 미련 없이 잘라내야만 한다는 굳은 확신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그는 자신의 뜻대로 해석해 내 관계를 조종할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선하다고 믿는, "악인"이었다.

 

스스로를 선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타인의 삶을 갉아먹어야만 존재할 수 있었던 기묘한 사람. 그와의 짧고도 피로했던 인연은, 스스로를 구원할 의지가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어떻게 타인에게 폭력으로 둔갑하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증거로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나는 그렇기에, 그를 스스로를 선인이라 착각하는 '악인'이라고 생각한다.

 

 

 

 

 

Salieri
@Salieri :: 살리에리의 인생살이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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