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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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구마모토"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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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하고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이야기 7편

후쿠오카 여행의 일정은 시간선이 중구난방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합니다 이번 편은 "후쿠오카의 셋째 날 이야기" 2023년 3월 말의 이야기 이전 편들은 아래의 링크를 확

igewaedam630.tistory.com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까지의 거리는 대략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 이 거리가 체감이 되지 않는다면,
서울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중간까지 직선거리를 그어보면 그 거리가 체감이 될 것이다.
 
수치상으로 표기를 하자면 대략 200km 조금 넘는 거리,

 

우리는 이 거리를 신칸센을 활용해 방문하기로 마음먹었고 ( 한국에서 출발당시에)
(본래 맥주공장을 기준으로 일정을 조율했었으니까)
표도 이미 한국에서 구매를 했었다.
 
문제는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길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을 때 발생했는데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했던 방법으로는, 
가지고 있는 두 장의 신칸센 표를 흔들면서 

Kore dokodoko desuka 
이거 어디 어디예요

 

이런 말을 하자, 역무원은 잠시 머릿속에 물음표를 짓는 표정을 짓더니만, 표를 보고, 아 여기가 아니라 반대쪽으로 가야 해요라고 말해주셨다. 

 

친절한 사람을 뒤로하고,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가는 신칸센은 "츠바메"를 탔었는데 한국의 SRT 나 KTX와 달리 안내해 주는 분들도 많았었고 시스템 자체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도 많았다  

쿠마몬의 머리를 따 전시해두고 있다

 

구마모토역에 도착을 하면 쿠마몬의 머리를 전시해두고 있는데,
이는 쿠마몬이 구마모토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충분히 전달해 준다.
1984에서는 Big Brother 가 시민들을 감시한다면,
구마모토에서는 쿠마몬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여기저기 남아있는 쿠마몬의 모습

쿠마몬은 당신을 사랑해

쿠마몬의 위상정도야 트위터나 아니면 블로그나 TV에서 여러 매체등을 통해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체감하니 생각을 달리 할 정도로 많았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캐릭터를 갖고 도시를 도배한 곳이라는 공간이 찾기가 힘든데 , 구마모토라는 도시자체가 쿠마몬들이 서식하는 서식지로 보호받아서 이렇게 번식을 많이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쿠마몬이 많다. 정말 많다

식사는 쿠마모토 역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한국에서야 터치패드를 갖고 주문하는 것이 이제 대다수를 차지하려고 하는 상황이라면, 여기 일본에서는 현금을 넣고 종이 자판기에서 출력을 하면 그 출력된 종이를 식당주인에게 드리면 그가 요리를 제공해 주는 그런 상황들이 많은데
 

놀랍지 않나?

 
분명 식당주인도 그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기에
몇 년 아니
몇십 년의 이야기를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
 
긍정적인 시야로 보는 것은, 언젠가 이런 것들도
최신화를 하게 된다면 기술자들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산토리 규슈 구마모토공장(サントリー九州熊本工場) | 관광지             |                 【공식】구

현중앙지역 산토리 규슈 구마모토공장(サントリー九州熊本工場) 맥주 · 청량 음료를 한 공장에서 만드는 하이브리드 (종합) 공장입니다. 제조 공정을 유리창 너머로 견학 할 수 있는 학습 장소

kumamoto.guide

구마모토 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산토리 공장 버스를 타고 맥주공장으로 향한다ㅇ
구마모토에서는 아직도 트렘을 운영하고있었다
드 넓은 밭을지나
위생을 각별히 신경쓴 모습,

산토리 맥주공장은 기린맥주공장과 달리 손님이 꽤나 와 있었다. 투어 패키지로 오신 분도 계셨으며, 일본에서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오시 50대 중후반의 사장님들이 5명 정도와 있었는데, 짧은 대화를 통해 그들이 야구부 친구들이며 나이가 들어서 드디어 만나 여행을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매번 말 많은 친구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다른 사람하고 친구 만드는, E 성향이 강한 일본인 사장님이었는데 후쿠오카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신다고 한국에도 놀러가본 적이 있으며 바베큐를 좋아하고 맥주를 좋아해 산토리 맥주점에 친구끼리 오게 되었고 또 부산이랑 서울도 가본적 이 있어 언제 한 번 연락하면 좋겠다 하는
말을 남기는 사이에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그를 연행해 갔다. 
 (이 대화는 3분 정도 사이에 일어난 대화였다)

우리랑 대화를 하는 사이에 친구 2명이 이미 그의 팔을 잡고 끌고 내려가면서
뒤에 있던 나이가 지긋히 있는 친구분이 나오시더니
"친구가 말이 많아 정말 죄송했습니다"
얼굴로 인사를 하고 다음 맥주 체험의 장소로 갔다. 

 

나이가 먹어도, 사람의 성격과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아니 정말 괜찮은데 오히려 듣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런 끌려가는 일본의 50대 남성  (부동산 부자 )를 뒤로 하며 
우리는 안내를 받아 맥주 체험의 장소로 갔다 

 



 


공짜맥주 좋아

 

완벽한 맥주를 따르는 데에는 어느 정도 교육과 시험을 패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완벽한 거품의 비례, 마음에 위로가 되는 모습

다시 돌아와서 보는 트램,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아직도 이걸 운영한다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구마모토의 명물인 트램을 다시 보게 된다. 그날의 일정은 그것으로 마무리하고 이제 오후 일정인 구마모토 성으로 향해야 했다


근처에서 먹은 라면

당시 구마모토의 날씨

구마모토 지진을 기념하는 물 펌프

구마모토는 한국의 대전처럼 느껴지는 것이 강했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달라.

 


북한은 상도덕을 모르는 새끼들이라서 그런지, 주말마다 미사일을 쏘았는데, 그리되면 주말 당직을 서는 분들도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군은 그 조직의 특성상 24시간 동안 적의 동태를 파악해야 했고, 그들의 특이 움직임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서로 서로 편하게 좀, 주말이나 아니면 행사하는 날이나 쉬는 날에는 공격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이 x끼들은 그런 날이면 오히려 머릿속으로는 "야 우리가 이때 공격하면 저 새끼들 X 같겠지" 하는 매뉴얼이 있나?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정도로 X랄 아닌 X랄 한다. 

어 ~ 주말이야~ 쏠거야~

 이는 간부/병사로 하여금 주말 출근을 하게 하며, 하루하루 훈련으로 고되게 아니 그냥 하루일과를 보내고 나서 따스하게 마음의 힐링을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마음에 불을 지필뿐만 아니라 서로 불편한, 정도에 따라 높으신 분들도 나오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자리가 만든 책임이자 의무이며, 그 직책의 걸맞은 행동임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는 명분을 주는 새끼가 X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화성 15호 발사

 

화성 5호 발사

 이 글을 보고 있는 군 관련자들은 필히 공감을 하겠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으신 여성분들이나 혹은 대체복무자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면, 당신이 일하고 있는 자리에, 당신만이 담당할 수 있는 일들이 당신의 쉬는 시간을 노려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것었다면 그냥 오늘 하루 똥 밟았다 싶어 하루를 어쩔 수 없이 보낸다면, 이 군생활의 주적은 확실하다.

발사체 (X랄)

그렇다, 그 새끼다

 

아무튼, 2022년은 그런 한해였다. 주말마다 미사일 쏴재껴 진짜 짜증 나게, 어학병이 주말에 미사일 쏘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싶겠지만, 우리는 한미 동맹. 70년 동안 서로를 지켜낸 동맹,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는 언어로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파파고인 우리는 군복을 입고, 우리의 위치로 향해야 한다.

 

2022년 5월에는 우리도 대응 사격을 하겠다고, 그 울분을 쏟아내었었던 것도 얼마 되지도 않았었는데

 

이 11월 12월의 기억은 매우 강렬한데, 눈 쌓인 부대의 사이사이로, 현 위치로 복귀하는 것은 그 감성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새벽의 차량의 불빛이 어둠길을 갈라내고 제설 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후임들 사이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타려고 하는 미군들 사이에서 그 즐거움이 고양되어 있었을 즈음에, 

 

이 X발련은 이 분위기에 초대받지 않았다는 것에 꼬장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하하 나도 유학생이었던 적이 있어서 서양애들은  지금이 딱 적기야 지금 때려야 해"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었다)

하는 마음으로 버튼을 누른 게 틀림없다. 

야발련

 

그 의도가 어찌하던, 그들의 핵무장을 향한 발걸음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던, 우리의 하루를 망쳐버린 것을 의도했다면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은 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좋아하는 주한미군도 그런 "군기강해이'의 형태를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물론,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난 기강해이라고 보다는 지친 하루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국가 간의 선은 상대 쪽에서 계속해서 넘어왔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대응하지도 못했었는데 이는 서로의 위치와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외교를 정상국가스럽게 대처해야 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있었고, 북한은 그런 이해관계를 신경도 안 쓰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하물며 공식적인 TV방송을 이웃국가인 일본을 "파렴치한" 혹은 "역적패당"이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훗일 생각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외교를 하는 곳이 북한이라는 곳이니까

 

단어 선택하고는 참..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다, 대응사격을 하겠다고 하였지만, 그때 당시에는 워낙 대응을 하고 싶어도 하지는 못했다. 평화합의라고 한 것으로 우리의 팔이 묶여 비유를 하자면 앞마당에서 불장난을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 모습만 연출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작성시기 2024년) 상황이 다르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랬다. 그러한 복잡한 내부에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직접적으로 표출을 하지는 못하고 간접적으로 미국 측에서 움직여 주길 기대해야 하는, 은연중에 말을 해주면서 눈치껏 그들이 받아들여주길 원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니까.

 

미국도 한국과 수교를 하고 외교를 하고 동맹으로서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그 속사정을 알고 있는 건 있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미국과 간접적으로 돌려 말해야 하는 한국의 업무방식의 차이 속에서 생기는 감정적 마찰은 통역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니 스트레스는 안 받고 싶어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하는 사건은 2022년에 발생한 북한 무인기의 침범 사건, 서울 하늘을 쓰윽 살펴간 이 사건, 덕분에 미 측에서도 "당했다"라는 반응을 보여줬었으니까. 물론 내가 기억하는 그 "당했다"라는 것은, 돌려보냈다는 그 "당했다"였던 거 같다.  한동안 언론에서도 시끄러웠었고, 늦장대응이다 뭐다 하면서 대한민국 언론이 분열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떠들썩했으니까

 

출처:동아일보

 

. 이러한 이야기 끝에 결국에는 우리도 대응을 똑같이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 "야 너도 그러면 똑같은 놈이 되는 거야" 이런 말을 할 수 도 있긴 하다. 하지만 옆집이 외교를 정상적인 국가처럼 하는 곳도 아니며 미치광이 전술로 간을 보면서 끝까지 신경을 긁고 가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해줘야 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방법이, 유엔 측에서는 이런 결과를 낳긴 하였지만 말이다 

 

 

유엔사 "무인기 보낸 北·맞대응한 南, 둘다 정전협정 위반"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유엔군사령부는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의 남한 영공 침투와 그에 맞대응해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낸 남한의 군사...

www.yna.co.kr

 

그들 또한 그들의 입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해한다. 조금 아쉬운 마음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주지 못하는 중립적인 유엔의 태도였겠지만 그래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도 그 바빴던 날들을 난 기억 한다,

 

잊을 수가 있나. 지극히 악의적인 개 X 끼들, 덕분에 한동안 주말출근은 기본이었으니까. 

 

뭐 혹자들은 북한이 한국의 담당일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하는 시야도 있긴 하다, 한국의 약점을 일부러 공격해 우리가 보완해야 할 부분을 1대 1 과외로 알려주고 있다고, 놀라운 시야지만, 그렇게 보일 정도로 이 무인기 대응은 우리가 할 말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제 나는 전역자의 시야로 군을 보고, 또한 동시에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작금의 상황인 남북관계는 평화의 노선을 가고 있는 그림이 아니라 서로 간의  화구를 맞대어 네가 쏘면 내가 쏘겠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유감임과 동시에, 내 또래와 그리고 미래에 군에서 살아가야 하는 내 동생들 그리고 미래에 혹시 모르는 내 아들들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분명 나도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 놀토를 그리워하던 그 시절에,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행사를 했었고 그리고 그 편지에는 이후에 한반도가 통일되어 군대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은 생기지 않지 않았던가. 

 

1년 6개월의 군생활을 길다면 길고 짧게 했지만, 그 짧은 군 생활은 변화의 시기였기 때문에, 2018년에서 2022년의 정권 이양의 시기를 직접 겪었으니까, 군대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바뀌어 나가는 것을 직접 체감했었으니까. 이제 나는 전역을 했고, 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상태로 내 경험과 내 기억을 갖고 이제 군에 들어가는 동생들을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영광스럽고 명예스러워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한 없이 당연해졌고, 다른 나라 사람들 입장에선 선택이었던 것이 희생의 강요를 처음 겪는 장소가 바로 군이라는 공간이니까. 내가 겪은 발자취를 내 동생들과 후임들이 당장 따라갈 것은 아니지만, 그 감정과 그 장소에 대한 이해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 한편에서는 더 잘해주고 싶은 감정만 벅차오를 수밖에 없다. 

 

이 감정의 기원이, 사회의 시스템 때문이고, 그 시스템의 출발은 그 X발련 때문인데 

 

 

덕분에 20대 초반에 성숙해지는 계기를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 스스로가 실수를 하는 것이 발생하면, 책임 소재에 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강제) 곳이 군대만큼 좋은 곳이 없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는 게 훨나은 그곳,

그런데 이 장소를 겪게 만드는 게 그 새끼

 

분명 이 글도, 북에서 읽고 있다면 내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데, 주체고 X랄이고 너네들이 주말이라는 것도 없고 휴일도 없이 착취당하는 꼬장을 왜 우리한테 부리는지 모르겠다. 그 꼬장의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너네 윗사람한테 가서 부릴 것이지. 정말 짜증 나는 족속들

 

 

십새기

아무튼, 이 글을 읽을 나의 동생들과, 내 후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또 달리 하는데, 그 메시지는 간단히 


 

"원래 그런 장소니까 버티고 그래도  자기 자신을 잃지 말아 달라"


이상, 오늘의 기억 주저리는

?

 

 

주의: 이 글은 시간순으로 나열되어있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을 잡다하게 적어둔 것입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권고드립니다

 

 

 

2023년의 3월 말의 어느 날

이 글은 내가 전역을 한, 2023년 1월 27일 이후에 있었던 일로 돌아가야 할 거 같습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워낙 많이 모아뒀기 때문에 전역은 공식적(서류상)으로 1월 27일이었지만은 운이 좋게도 12월 초순에 사회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2주간의 찍턴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군 생활을 마무리했는데 나쁘지는 않았네요. 어학병은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포스팅도 나중에 진행할 테이니, 일단 지켜봐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의 포스팅의 중점은 제목에서도 제안이 되어있듯이, 나의 전역 후 이야기, 군 적금 900만 원으로 (군 적금 천만 원이 아닌데요 나머지 다 어디에다가 썼나요? ,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400만 원을 갖고 일본에 근 10일 동안 보도 여행을 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일본에 왜 여행을 갔나요?


일본에 여행을 간 이유는, 전역하는 날에 생각지도 못한 유학이 결정되었었고, 군생활(이 세계)을 제외하고 해외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있어 해외생활의 삶을 리허설을 할 공간이 한 번쯤은 필요했다. 외국을 경험해 본 자와 경험해보지 않은 자의 차이는 매우 크다는 신념도 있었으며, 오랜 군생활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

 그렇다면, 왜 다른 나라는 안 갔어요? 서양국가 유학이면 뭐 괌도 있잖아요, 아예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가는 거면 그런데 가는 게 더 좋지 않나요? 

 

 

배를 타고 싶었다, 그러니까 비행기를 타지 않고, 굳이 구태여, 굳이, 바다 바람을 맞이하면서 떠나고 싶었다. 또한 한 가지 확인하고 싶었던 게, 모든 게 내 하기 나름이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었다. 아무래도 군대에서 경험한 것들 중에 대다수는 내가 어떠한 의도를 갖고 어떠한 생각을 갖고 내가 한 일들이 대다수 뜻대로 된 게 없었기 때문이요.

 

또한 덧붙여, 유학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어 너 정말 좋겠다~ 해외에서 경험도 쌓고 영어도 배우고...." 이렇지만은 않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유학을 간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 땅에 내려놓고 그리고 내가 보고 싶어 할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들의 조각조각을 갖고 돌아가는 것이 힘든 길을 떠난다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가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떨어져 있어도 가깝다고 느끼고, 멀리 있어도 곁에 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에, 여기 이 글을 보는 학부모님들이나 혹은 보호자가 자기 자식을 유학의 길을 가게 하는데 왜 자식은 그 사실에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을 한 번쯤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다시 한번 돌아와서,  목적지는 정했으니 함께 갈 친구를 구하면 된다.

 다양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와 함께 갈 친구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 여정 속에서 나와 함께할 자는 누구인가?

 

 

 

 

일본에 갈 때 친구 선정 조건 

장점 : 외롭지 않게 해 줌

단점 : 외롭지 않게 해 줌
목적지 선정 완료, 파티도 구했다 이제 필요한 건 마음가짐뿐

 

 

그렇다면 어떤 배를 타야 할까? 크루즈? 아니면 고속정?

크루즈 여행은 낭만이 있다, 대형 배를 타고, 흔들리는 파도를 이겨내면서 새로운 땅을 밟는 낭만. 콜럼버스가 새로운 땅을 찾았을 때의 기쁨과 설렘을 원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미 낭만은 완성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배를 타고 나간다면 크루즈보다 고속정을 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마음만큼은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같이 타고 싶었기 때문.

 

고민 끝에 결정된 배는 "퀸 비틀"호
자세한 건 나무위키 퀸비틀 - 나무위키 (namu.wiki)
 

퀸비틀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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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wiki

 

작전 목표 : 일본 가기 

-  교통수단 선정 : 퀸 비틀 호 <--- 지금 여기
- 숙박/식사/여정계획 <---??
-  부대비용 추산 <--??
- 협조 <--??? 

 

아주 완벽한 계획

열차를 타다, 머릿속에서 새록새록 기억나는 논산의 기억

 

한국에서 일본으로 간다면 거쳐가야 할 관문 부산, 부산으로 이동하자.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교통편은 여럿 존재한다, 첫째로 자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으나, 나는 차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설령 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주차를 생각하면 발생하는 비용도 생기기 마련 대중교통편을 이용해 주자.

교통수단 장점 단점
자동차 내가 운전함 내가 운전함
KTX 부산 까지 빠르게 이동 비쌈
비행기 ?? ??
SRT 집근처임, 빠르게 이동,수서역 출발 비쌈

 

 부산에 예정시간 보다 먼저 도착을 했었는데, 친구는 출발을 준비 중이라 남는 시간 동안  빠르게 부산을 관광했습니다.

어렸을 적에 경남 거제에 살았을 때 잠시 지나가면서 부산을 들른 적은 있었는데 직접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재미난 경험도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그때 당시 친구와 대화 요약
영화 친구에서 나왔던 그 다리, 내 친구는 아직 아직 안나왔는데
어렸을때 생각도 많이 나는 곳, 깔끔하진 않지만 그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차이나 타운, 인천의 차이나 타운 만큼 역사가 깊은 곳, 지금은 지나가는 길이라 나중에 방문해 줄게

부산의 활기찬 모습은, 내 삶 속에서 나중에 보고 오늘의 나의 목적지는 후쿠오카, 일본.

부산항으로 가야 하는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었습니다. 택시를 타는 선택지도 있었지만은, 부산의 택시는 버스 출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탄 뒤에 타야지 그 재미를 알 수 있으니까요. 부산 택시는 나중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다시올게!

 

많은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으니까요, 왜냐면, 내가 예상치 못한 것들을 걷는 여정 속에서 찾게 되는 게 더 많기도 하니까. 

 

 

이제 눈에 보이는 부산항

 

배에서 사용가능한 무료 와이파이에서 나오는 정보화면, 현 위치가 어디고 몇분 정도 남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줌
후쿠오카 항 도착
반갑다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

 

 후쿠오카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은 많았습니다, 일단 첫 번째로 당시에는 군대를 전역하고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다가오는 IELTS 테스트의 시험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것과 IELTS 점수가 잘 나오는 일은 별개의 일이니까. 두 번째로는 후쿠오카 건담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작성되는 제목들의 레퍼런스는 건담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세 번째 이유로는 군대에서의 일련의  경험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 대한 온갖 불신과 불행에 대한 초점을 잊고 싶었습니다.

 

  내가 당장의 힘든 것들은 내 잘못이 아니라, 다른 공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사라질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가고 싶은 것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이유들을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내 심란한 마음을 한편에 묻어두고 향한 일본의 길.

 

 

어디에 갔었나요?
방문한 곳(시간 순의 나열이 아님)

 

 

장소 설명
하카타 역 우리 여행의 전진 기지
캐널 시티 쇼핑과 엔터테이먼트가 있는, 후쿠오카의 대표 여행지
후쿠오카 타워 후쿠오카의 랜드마크, 앞에서 보이는 보석같은 해변가가 일품
나카가와 세이류 온천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영하는 온천, 뜻뜻함
타치아라이 평화기념관 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며, 신덴이 존재하는 곳
구마모토 쿠마몬이 있는곳,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가토가 있던곳
신칸센 고속열차, KTX 와 SRT와의 차이점을 보고 싶었다
야나가와 물구경 뱃놀이
타치바나 가문의 집 여행 기록에 없던 곳(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곳)

 

 

이하 방문한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덥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존되어있는 A6M3

 

박물관에 방문한 이유는, 그저 거기에 박물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처음먹어보는 우설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다
후쿠오카 뉴 건담, 건담 건설 프로젝트 개요를 설명하는 곳도 방문

 

 

뉴건담은 도쿄에 있으려나
수성의 너구리와 여우, 수성의마녀
지나가다가 들어간 신사, 이름은 기억이 안남

 

지나가다 들린 식당에서 먹은 것
Yami

 

 

사진을 보다 보니, 기억나는 곳 일본의 맥주 공장도 견학했었다, 후쿠오카 지역에서 이번 여정동안 방문할 수 있는 일본 맥주 공장은 총 두 장소만 존재했었는데, 하나는 기린 맥주공장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사히 맥주공장이었다. 가난한 군필 대학생(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든 가성비 있게 일본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 맥주를 좋아하는 것도 있었고, 또한 그때당시 아사히 신메뉴가 나오던 시절이라 누구보다 먼저 그 경험을 하고 싶었다.

 

기린 맥주공장

 

이게, 또 썰이라고 한다면, 한 가지 생각이 나는 게 견학 예정시간은 오후 1시였으나, 우리는 11시부터 도착을 해서 경비 아저씨가 이상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아, 예, 그 이름 적어 두시고, 그 방문 목적 적어두시고, 1시간 뒤에 다시 오세요.

 

물론, 매우 친절했었다. 정말로, 애초에 우리가 거지처럼 간 것도 있었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2명의 "개인" 관광객, 그때 당시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나오는 도둑들처럼 생겼었으니까

맥주... 마시러 왔어요.

분명 속으로는 '뭐지? 이 두 명? 시간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멍청이들인가?'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본어도 그리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할 줄 아는 건 2년 내내  주야장천 했던 영어뿐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온천

 

유후인 온천

 

 

닭 고기
돈이 없으니까 먹는 오니기리, 진짜 주먹만한 밥, 그것 뿐이었다
어 쿠마몬 반갑다

 

일본 열차의 감성, 왜 일본이 철덕이 많은지 알게되는 좋은 계기 였다
다자이후에서 찍은 사진
어색 어색 하네요
일식은 참을 수 없지

 

 

들어가지는 못했고 그냥 지나가는 길에 보인 곳, 듣자 하니 야나가와라는 지역의 타치바나가 꽤나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하네요. 자세한 건 나무위키를 참고 

 

Our Museum - Tachibana Museum | Tachibana Foundation (tachibana-foundation.jp)

타치바나 - 나무위키 (namu.wiki)

일본 여행을 마치면서

 

지난 7일동안 하도 싸돌아다니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어디를 싸돌았냐고 묻는다면...

 

 

후쿠오카 방방 곡곡를 들 쑤시고 다녔다

 

 

 

신칸센 타고 구마모토도 방문 했었다
서울 부산 후쿠오카
여행의 감상평

 

인기 좋으면 5편~6편으로 나눠서 올릴게요. 막상 지금 쓸라니까 기억이 뒤죽박죽이라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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