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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ieri2026. 2. 23. 14:53

 

본인이 가진 생각을 의심치 못하는 늪이다

. 자신의 생각을 뒤로한 발자국 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몇 없다.

그러니까, 나는, 방금 만난 사람에게 본인의 과거와 상처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치고 정상인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그
러니까 자기 연민에서 벗어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세상에서 위로받고 아낌 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정신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서문

착각은 '생각의 늪'이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자신이 가진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못하게 만드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가라앉는 무서운 수렁이다. 늪의 공포는 빠른 죽음이 아니라 느린 익숙함에 있다. 가라앉으면서도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싶지 않은 채로 침잠한다.

 

인간은 세계에 던져져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주체다. 그러나 착각의 늪에 빠진 자들은 치열한 고민 대신, 자신이 쌓아 올린 서사의 성벽 안으로 퇴각하여 그 좁은 세계를 세상의 전부라 선언해 버린다. 그 안전함 속으로 도피하는 것은 곧 자기 존재에 대한 포기다. 자신의 생각을 한 발자국 뒤로 빼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부분은 자신이 짠 좁은 논리의 우리 안에서 허우적대며 살아간다. 문제는 우리의 좁음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나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불우한 과거와 깊은 상처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사람을 극도로 꺼린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예외 없이 짙은 '자기연민'이 똬리를 틀고 있다. 자기 연민은 얼핏 상처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상처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욕망이다. 상처가 아물면 그들이 주인공이자 피해자인 이야기도 끝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처받은 과거가 미래의 가능성을 통째로 삼키도록 내버려 둔다.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ressentiment)', 즉 자신의 무력함을 도덕적 우월감으로 전환시켜 타인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앞서 포스팅에서, 나는 이러한 지배의 언어를 정말 혐오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본문

 

그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존재이므로 무조건적인 이해와 위로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굳게 믿는다. 여기서 가장 본질적인 맹점이 드러난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전제로 삼기에, 타인 역시 지켜야 할 내면과 소진되지 않아야 할 에너지를 가진 동등한 주체라는 사실을 완전히 놓친다. 그들에게 타인은 함께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 서사를 완성해 줄 배경 인물이자 도구일 뿐이다. 이는 단순한 이기심을 넘어선, 타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절대적인 무지이자 오만이다.

 

"내 상황은 이러하니, 세상은 나를 이렇게 대해야 해"라고 확고하게 판결을 내린 사람은 결코 그 판결을 뒤집지 않는다. 고집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틈은 곧 자기 서사의 균열을 의미한다. 상처 이외의 단단한 자아를 구축해 본 적 없는 그들에게 그 균열은 파멸과 같다.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그들의 늪에서 꺼내주려 애쓰는 것은 지독한 오만이거나 소모적인 자기 파괴다. 변화는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균열에서만 온다. 스스로 균열을 낼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당신의 선의는 그저 또 하나의 소비되고 버려질 감정 자원이 될 뿐이다. 늪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발로만 가능하다. 그 의지가 없는 자를 향해 무한정 손을 뻗는 것은 그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함께 가라앉히는 일이다.

 

타인의 늪에 함께 빠져 허우적대기엔 내 삶이 너무 소중하다.

 

 

누군가를 끊어내는 것은 냉혹함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존중이다. 나의 감정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나의 에너지도 유한하다는 것을, 나 또한 누군가의 배경 인물이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는 온전한 주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일이다.

경계를 긋는 것은 벽을 쌓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디서 끝나고 타인이 어디서 시작하는지를 마침내 아는 것이다.

 

나는 그 앎을 나의 온전한 실존으로 단호하게 지켜낼 것이다.

 

결어

 10대와 20대 초반에는,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의 고통을 짊어짐을 삶의 낙으로 삼았다. 내가, 아니, 배신당한 세상속에서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준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타인을 아끼는 것이요 동시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동정을 먹어가면서 세상을 좀먹는 사람 또한 반드시 존재했다. 나는 이들이 모든 이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 동시에, 이미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죽인 것을 넘어서 다른 이들의 가능성과 변화의 값을 낮춘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사람을 여럿 만난적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은 스스로가 사회에서 약자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경우가 많았다. 아니 모든 약자가 아니라, 시스템의 허약점을 찾으면 거기에 본인을 맞추려고 하는 사고방식을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분명 내가 보았을 때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세상의 불공정하지 않게 무엇보다 공정하게 그들을 대하였고. 그와 동시의, 대다수 결과의 행동의 시작은 본인의 선택이 있었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로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면 병원에가라. 나는 너를 위로 할 만큼 정서적인 여유가 없다고 여럿 말해도. 듣지를 않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고, 어찌보면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에 진절머리가 난 것도 있지만, 하지 않은 것의 본인의 선택의 이야기는 왜 하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타인을 볼 줄 아는 시야는 있으면서 자기자신을 볼수있는 시야는 키우지 않은 것은 어떻게 해야하나. 자신의 상황으로 자신을 재단하면서 동시에 그 상황을 벗어 날려고 하려고도 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볼때마 피곤함을 느낀다.

 

 

사람은 서로 재밌게 있기 위해 있는거야

 

 

 

이 글도 2026년 2월 21일날 초안이 작성된 글이다. 이제 포스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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