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게으른 삶을 정리하고,

본래의 패턴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모든 것은 혼자 하는 결정은 쉽지만 그 과정의 유지는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란 본래 편한 것을 찾아가는 편향을 갖고 있기 때문) 

 

해야 하는 것을 리스트 화하고 우선순위부터 하나하나 각개 격파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 것을 리스트화하는 것 자체도 귀찮아하는 사람(나) 도 있기 때문에 이런 걸 하는 것에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살다 간, 과거를 탓하며 이렇게 게으르게 살다간 미래를 살아가지 못할 거 같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지나간 것들을 지나간 대로 내버려두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 

 


 

 

Steins;Gate를 다시 감상하고 있는데,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는 디테일한 IT 요소를 발견하는 작은 재미가 없잖아 있긴 하다. 어느 정도 시야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의 나이가 대략 16살이었으니까, 시간 정말 빠르다.

 

예나 지금이나 그 기술의 근간은 변화가 없는 거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막상 나이가 먹고 다시 한번 보는 애니메이션에 내가 아는 게 나와서 좋아하는 건, 

그것도 사람의 근간은 변화가 없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또 얻어낸다. 

 

생각해 보니까 컴퓨터의 키보드 구조 또한 30년이나 40년 전이나 똑같은 걸 보면(어찌 보면 당연한 거긴 한데)

모든 것은 사실 받아들이는 정보의 본질은 같고 그 형태만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80년대 슈퍼맨을 보고 자란 세대, 00년대 슈퍼맨을 보고 자란 세대,

같은 슈퍼맨을 본 것은 아니지만 슈퍼맨에 대한 개념을 똑같이 있을 수 있다) 

 

2010년을 살아가는 사람의 뇌 기능이나 2024년을 살아가는 사람의 기능이나 결국 같은 기능을 갖고 있고,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 있느냐 차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새삼스레 다시 한번 복습하는 차원이 되는 건 여러모로 가슴 설레는 일이다.

 

Steins;Gate를 처음 본 것은 2012년이니, 12년 전이고, 내가 중학생 시절이니까. 그때 슈타인즈 게이트를 처음 보았을 때의 마음은 내 마음에 불을 지펴, 지금도 한창 생각이 많아질 때나

혹은 과거가 그리울 때마다 보는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그때 그 시절 감성이라고 해도, 스마트폰이 보급이 얼마 안 되었던 과도기였던 시기라서, 핸드폰도 폴더폰으로 친구끼리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것으로 나는 기억하는데. SteinsGate의 시기는 2010년이라 애초부터 스마트폰의 존재가 없다.

 

컴퓨터도 작품 속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브라운관 모니터와 부팅하는데

최소 5분에서 10분이 걸리는 그때당시 컴퓨터고...

 

작품의 배경인 아키하바라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중심지가 아니라 아직 컴퓨터 부품의 허브(1950 ~ 2000년대 후반, 지금도 물론 그 명성이 아직 남아 있긴 하다) 였던 시기라서 관람할 때마다. 그때의 분위기를 잠시나마 어깨너머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만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그때 당시 용산 같은 느낌이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그러니까 앞으로 10년이고 20년이 더 지나고 또 슈타인즈 게이트를 보았을 때,

나는 어떻게 기억을 할는지. 


다음주에 면접도 있고,

일은 많고,

하기는 싫고

짜증은 나고

 

 

 

 

 

 

 

 

 

 

 

 

 

 

 

 

 

 

이사를 한 것은 3주전의 일이다.

 

 본래에서 살던 학생 기숙사는 더 이상 내 집이 아니게 되었는데, 거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도 악몽 저리가라가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의 기숙사 시스템이 얼마나 획기적이며 첨단을 달리는 것이었으며 운영을 하는 학교가 얼마나 학생들의 편의를 보아주는 것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 대한민국을 기대한 나의 잘못이 크다. 항상 사람들이 친절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곳에서 통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생각을 한 내가 오만한 생각을 한 것이긴 하다. 사람들이 좋게 말하는 "호주"사람들의 모습이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오래남는 잔혹한 편향을 띄길 마련이라...지나가는 것은 지나간대로 아름답겠지 하는 생각을 해야하지만 말이다. 

 지금 있는 곳은 주에 340 정도를 내는 Share House 의 모습을 띄고 있다. 학생신분에서 이 정도 집이면 감지덕지이고, 공용 생활을 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서(군대를 다녀온 대다수 한국인들이 그렇겠지만) 공용 생활은 부담이 없다. 나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지만서도....

 

장점 : 다양한 인물을 보게 된다.

단점 : 다양한 인물을 보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공유된 장소에서 살아가는 삶이 대학생활의 꽃이기도 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를 축복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내 "개인의 공간" 을 추구하는 것은 오랜 꿈이기도 하다. 집이라는 공간은 한 없이 편안해야 하며, 나를 보담아 줄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으니까. 

 

 이러한 캥거루족 같은 상황속에서도 작게 남아있는 긍정적인 요소는, 나를 미소짓게 해주는데, 바로 내가 어떤 곳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 어디를 가던 내가 있는 곳이 내 집이라는 이야기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점이 있으면 새로운 장소에서는 새로운 만남이 있고, 그에따라 헤어짐이 당연히 있고, 아쉬움이 있지만 그 아쉬움을 굳이 내색하지 않고 또 다른 만남을 기다리고, 굳이 작별이라는 것을 크게 크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도 아마 여기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요즈음에는 기술이 하도 좋아져서 멀리 떨어진 사람끼리도 만날 수 있는 방법도 많다. 우리가 아는 카카오톡이 세상에 나온 것은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META 에서 VR에 투자를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이사를 했으니까 짐을 정리해야하는데, 짐을 정리하는데 수납장이 없다면 해결방책은 두가지로 구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1. 수납 공간을 확보

2. 짐을 줄인다

 

지금의 경우 내 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바로 "책"들인데, IT 를 공부하는 학생이 뭣하러 "책"을 많이 들고 다니냐, 차라리,  pdf 파일로 만들어서 IPAD 나 혹은 온라인 도서관 구독 서비스를 활용해서 살아가는 것이 더 낭만이 있지 않겠냐 하는 내 머릿속 누군가의 보충의견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틀린 것이 아니라서, 플라스틱을 활용해 침대 밑에 공간을 만들었다. 침대 밑에 괴물이 산다는 것은, 침대 밑에 어떤 무언가가 충분히 살아갈 만한 공간이 남는다는 것을 왜 여지껏 생각하지 못했을까? 

 

자기 몸 하나 잘 간수하지 못하는 인상이 남는 것은 싫기 때문에, 청소하고 버리고 청소하고 버리고는 있지만, 문제는 청소의 문제가 아니라 수납의 공간이 문제였기 때문에, 접이식 플라스틱 정리함을 구매해서 어느정도 정리를 했다.

 

Database 를 정리하는 것처럼 공간의 활용도 그 쓰임에 맞게 깔끔헤졋으면 좋겟다 하는 생각은 안하는 편이 아니지만... 

내일은 또 어떤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내가 또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독자.....는 모르..... 아니, 미래에서 온 독자들이면 알겠구나, 그렇다면 말을 바꿔, 내가 또 어떤 삶을 살아 갈지는 필자는 모른다! 

 

 

 

오늘의 마무리는 프리렌 짤로 마무리 해야지, 지금은 프리렌 같은 기분이다

 

 

 

일... 해야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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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이람, 자고 일어난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무래도 굉장히 미국이라는 장소에서 너무나 미국스러운 일이 발생했는데, 미국(자유주의의 땅)에서 미국다운 일("총"을 통한 "대선후보 암살 시도")이 발생했다는 것은, 충격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심지어, 2024년,역동의 20세기가 아니라 성숙한 정치를 하고 있는 21세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혹자들이야, 미국 대선이 나에게 있어 무슨 영향을 끼칠 것인지, 왜 네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는지 물어볼 수도 있지만, 내가 반론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나" 는 지금 "호주"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입장이고(개인), 이게 개인의 일이라고 해도 한국의 종속주의에 따라, 한국의 실정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한국의 실정은 미국의 실정에 따라 계속 바뀌는 일이니까. 결국, 미국이 어떠한 성향을 띠느냐에 따라서 "나의 미래"도 어느 정도 선은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편인데, 그렇기에 미국 대선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며 영향력을 펴칠수 없는 사람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든 말든, 이 중요한 역사의 흐름은, 그러니까 어느 정도 "나의 인생이" 걸려있는 흐름은  "미국 국민"에게 달려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지만 말이다. 

 

공화당(트럼프)이냐, 민주당(바이든)이냐, 지금의 흐름으로 보았을때는 이미 한쪽으로 기운 것 같기는 하다. 오늘의 일은, 오늘의 역사를 바꿀만한 "사건"은 우리가 말은 하지 않아도 누가 다음 미국의 지도자가 될 것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분명 내가 군대에 있을 시절(2021~2023)에, 바이든 대통령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을 때는 어느 정도 "정정한 모습"을 보였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대선 토론에서 보인 그의 모습과 이번의 사건(트럼프 대선후보 암살시도)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나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역사 속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고는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변화를 계속해서 해야 한다."

 

말은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내 머릿속에 계속 잠들어 있는 의문은 나에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불확실성에 잡아 먹히지 말고,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천천히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꾸준한 진전을 보이는 가

어쩜 이렇게 미국적인 사진이 있는가?

 


 

방학이 시작된 지 근 2개월이 지나고 있는데, 그동안 성취한 것은 그렇게 성취라고 불릴 것도 많이 없다. 

 

방학동안 한 것을 나열해 보면

 1. 이력서 완성

 2. White Card와 RSA 완성 

 3. 전공 선택 완료 ( Enterprise Software Development)

 : 아마 가장 큰 게 아닐까

 4. 이사 완료

 5. 일자리 알선 완료 ( 감사합니다 ^.^  7)

 

일본어 공부도 차근차근하고 있고, 영어공부도 차근차근하고 있다, 독일어 공부도 놓치지 않고 해주고 있다. 언어만큼은 나의 마지노 선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결정적으로 보면은, 이렇게 적고 나면은 내가 나쁘지 않은 삶을 이룩하고 있었고 해 둔 게 없는 것 같아도 무의식 중에 성장 중이었구나 하는 생각은 있지만 말이다. 

 


인생 이야기 

 

 드라마나 영화나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보다보면, 어디까지나 관찰자 입장(시청자)에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작품내의 캐릭터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어떠한 의도가 되었고 어떠한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보이지만은...

 

아! 참, 최근들어서 마음에 드는 어구를 찾았다. 

 

자 왈 중오지 필찰언, 중호지 필찰언

[ : ", ; , ."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해도 반드시 좋은 점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도 반드시 나쁜 점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 어구의 말은, 지금의 나로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해주었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낀다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 사람의 단점을 보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고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함이라는 것은 항상 해석과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때문에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지말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원망해야함을

 

 

2017년 경에 공자의 논어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분명, 이런 감정이 들지 않았는데, 분명 같은 글을 읽는데 다시한번 이런 감정이 듣는 것을 보면 아직 나는 배울게 많나 보다.

 

아무튼 2017년의 일기가 아니라,

2024년 7월 14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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