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일반적인 대화와는 달리 회의 통역과, 문서 번역에는 단어의 선택을 굉장히 세심히 해야 하는데,
이는 그 번역 문서가 가지는 파급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작전서를 번역하는 경우 그 읽는 사람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그 교본을 읽게 될지 하는 생각이 필요하고
혹은 전투교본을 번역할 경우, 그 교본이 무엇에 관한 설명서인지 알아야 한다. 
 
이는 내가 작업하는 문서를 모르는 상태에서,
날 그저 살아있는 파파고 정도로만 생각하고
 
번역에 대한 어떠한 충고도 없이
업무에 넣으신 간부님과,
 
명령이 내려오면 질문하지 않고 업무에 바로 투입하는
내 성향이 맞물려 생긴 해프닝에 관한 이야기다. 
 
이 글의 제목이 의미하듯이, 나는 한국군대와 미군부대를
내 의도와 다르게 전쟁범죄자로 만들뻔했었다.


 
때는 간부님이 새로이 업데이트하고 작계(OPLAN-Operation Plan)를 번역하고 있었을 당시
(이 작업은 우리에게 있어 매일 같은 일과의 하루였는데)
(작계에 관한 내용은 나무위키를 참고해달라)

작전계획

특정 부대가 전시에 어떻게 작전을 수행할지에 관한 계획으로, 매우 상세한 수준까지 적혀 있다. 적국 뿐만 아니라 자

namu.wiki

당연히 이 작전계획의 특성상 한국어 - 영어로 바뀌는 번역을 필요로 했었고
이는 어감을 살리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었다.
 
물론 난 그때 당시 일등병이었고,
이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으며,
그저 명령이니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있었다. 
나에게 처음 주어진, 그리고 나의 평판을 좌우할 수 있는 기회였었으니까
 
군대를 다녀온 남성분들은 알 것이다,
열정 넘치는 이등병과 일병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는 
어디까지가 해야 하는 부분이고, 어디까지가 윗사람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책임소지의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는 것


즉 열정은 넘치는데,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실수를 덮기 위해 더 큰 인력자원이 소모된다는 점
 
그래도 그러한 일을 한 일병을 누가 혼내겠는가
끌려오더라도 잘하겠다고 마음먹은 아이를 혼내는 부모가 없듯이
열정이 있고 그 명령을 따르고자 하였던 부하를 혼내는 상관은 없던 것 같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내가 복무하는 곳에는 그런 분들이 오지 못했던 것인데., 
 
아무튼, 각설하고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단어 중 하나는 
 
Destroy and Defeat, Neutralize 
이라는 단어의 개념적 차이를 말하고 싶다.
영어 단어를 처음 공부한 학생이나 혹은 군 단어의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이 단어들은
다른 형태를 띠지만 같은 단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군대에서는 다르다 
 

DoD Terminology Program

The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CJCS) is the primary office of responsibility for the management of the Department of Defense (DoD) Terminology Program. Its purpose is to improve communications and mutual understanding within DoD, with other fed

www.jcs.mil

미 국방성의 단어집 에서 이들의 정의는 
Destroy: 적을 격퇴하는 행위
Defeat : 적은 패퇴, 혹은 전략적으로 후퇴시키는 행위
한국말로 정확한 번역을 하면,
격퇴와 패퇴의 차이정도인데. 
이제 갓 전입온 신병에게는 Destroy와 Defeat, Neutralize, Deny, delay 등등의
온갖 군사적 단어의 디테일한 차이점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었다 
 
이러한 성숙하지 못한 생각을 가진 병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해볼게요! '
 
와도 같은 열정 넘치는 모습이었는데
문제는 전문성이 필요로 하는 공간에서는 
이러한 열정은 그다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모르는 애들은 가만히 있고 통제에 따르는 것이 더 크게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당연히 "비전문가"니까
예로부터 알지도 못하면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면 화를 부른다고 하는 이야기는 
과거 문헌에서도 많이 나온 일이니까 말이다
 
괜히 나 섰다 가는 책임의 화살이 나에게 날아오는 것뿐만 아니라
책임을 굳이 안 져도 되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찌 되었건, 이런 비전문가가 그나마 최상인 선택지일 때 인 상황이 매번 생기는 곳이 군대인데.
안타깝게도, 이 공간의 시스템은 우리들의 고충을 비웃기라도 하듯 열정만 강요하길 마련이다.
그래야지 높으신 분들은 웃음 지으면서 
"역시 내 부대관리가 잘 돼 가고 있구먼"
하는 말을 할 테니까
 
아무튼 다시 돌아와, 번역하는 자료에는 "잔당 처리" 관련 문건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전후처리를 행동하는 도중에 나온 문건중 하나인데, 
처리라는 맥락은 통역병인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며, 내 직속상관은 계획관님은 넘쳐나는 일에 치여서 도와줄 수 없는 상태였었다.
 
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처리는 어떠한 처리를 말하는 것인지, 서류 작업의 처리를 말하는 Disposal는 아닐 테고
아니 애초에, 잔당이라는 단어를 Residue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Remnant라고 해야 하나? 
둘 다 잔당인데 어울리는 어감과 단어는 무엇이지? 문장의 조화를 좀 더 아름답게 해야 하는 것은 어떤 거지?
 
틀리진 않았는데, 나를 도와줄 선임은 어디에 있는 거지? 집에 가고 싶다 정말 소리치고 싶다
하는 속 타 오르는 과정의 연속, 시간은 이미 오후 3시를 지나 4시쯤을 향하고 있을 때
곧 있으면 퇴근 시간이었고, 퇴근이라는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도 없었었다. 
(말이 퇴근이지, 생활관으로 복귀한다)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해, 퇴근이고 자시고 당장은 나에게 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데
 

심사숙고해 본 결과 00 Eradicate Residue Forces.로 작전 명을 지었었다

이 단어가 어떤 화를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독자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Eradicate라는 단어는 굉장히 어감이 강한 단어다. 해충을 박멸하거나 , 아니면 뿌리부터 없애버린다는 Root out의 근절하다는 뜻으로, 보통 인간이 아닌 해충이나 바이러스에 사용되는 단어였었다. 
 
물론 이 단어의 강한 어감을 난 모르고 있었고,
통역장교님도 몰랐었고 오로지 미군 소령분만 아시고 계셨었는데
이 실수는 큰 화를 불러왔었다. 
 
책임질 일은 많았고, 그리고 대다수가 통제가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몇몇 개인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완료된 PPT 파일은 미군 카운터파트에게 넘어갔고, 이 자료를 리뷰하던 도중에 울리는 전화
 
분노전화였다. 한 없이 화가 나있는 그의 분노의 초점은 
작계의 번역이 완전하지 않음과 더불어, 디테일들이 없어 이해하기도 힘들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는 병장생활을 지내고 전역을 하고 나서
뒤로 돌아 다시 한번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었기에
영문도 모른 체 이 분노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해야 했다
물론 군필자의 쉬운 답인
 
"죄송합니다"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감정을 한없이 소리치시고 나신뒤에 다시 한번 전화가 온 것은 통역장교 분이셨는데, 
몇 개의 질문을 하시더니만 전화를 끊으시고 다시 처음부터 일을 해야 하는 과정을 겪었어야 했다
일이 무언가 잘못된 가고 있음을 감지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명령을 내려줄 명령권자는 내 주변에 없었고
이 일이 끝나기를 기원하면서 사무실에서 대기했다.
퇴근을 하기에는 무언가 잘 못된, 무언가 내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안 좋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군필자라면 흔히 아는 그 직감 
"X 됐다" 
 
한 없이 불안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 퇴근 시간이 되었다고 퇴근한다면 
내 주어진 임무에서 이탈하는 것이니 마음대로 퇴근도 못하는 상태
그렇게 사무실에서 전전긍긍하면서 6시까지 버티고 잇었는데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계셨던(내가 생각하기에) 간부님이 들어와서는 ,
 
 

00아? 너 왜 아직도 퇴근 안 했어? 생활관 복귀해

 

제가 퇴근하라는 명령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그는 이마를 한번 짚으시고
어떠한 생각을 하시던지
 

야 이... 이.. 퇴근 명령 없어도 시간이 되면 퇴근해, 명령이야

 
 
 

예 알겠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생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안한 마음
이제 가도 일병이 된 병사에게 남아있는 책임이 얼마나 되었던지
어차피 일개 병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많이 없었을 텐데,
 
보고 철칙의 원칙(지휘라인의 보고)을 난 매번 지키고 있었고 
그러고 나서 다음날이 되어서는,
 
미 측 카운터 파트가 오시더니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즉, 
Eradicate라는 단어는 어감이 강한 단어라 그 단어의 뜻이 정확하지 않다면 본인에게 물어봐달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속으로 물어보면 

"왜 아직도 그걸 몰라? "

라고 할 것인 게 분명할 터인데
인수인계라고 할 것도 없이 내가 알아서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이 상황이 정말 억울했지만, 고작 억울하다는 감정으로 어찌하겠는가, 이러한 곤란한 상황 속에서 내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거늘 감정을 앞세웠다면, 상대방도 똑같이 감정대로 나왔을 것이지.
 
그리고 설명해 주는 Eradicate의 뜻

"그 단어는 집안을 속속히 찾아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뜻이야. 자네가 애국심이 강한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는 전후 유엔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까지는 생각해 봤나?"

 

명심하게, 우리는 전쟁 범죄자가 아니야.

그때 당시의 감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사건의 정황을 정리해 본 결과는 이러했다.
 
 1. 숙련되지 않은 병사. 
2. 그 숙련되지 않은 병사에게 서류의 중요성을 설명하지도 않았던 간부
3. 검토 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통역장교
. 4. 인력이 없어 서류를 초기부터 보지 못한 미 장교
 
 
즉, 모든 상황 자체가 이러한 사건은 일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모든 퍼즐과 신호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열정 넘치는 병사에게는 가르침과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남기고, 이 서류 때문에 처지가 곤란해진 간부님과 통역장교님에겐 죄송합니다 라는 말 밖에 남기지 못했었다. 
 
그렇다 고작 단어 하나 때문에,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전시 최고 사령부라는 곳에서, 일개 개인이 이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의 이미지는, 열정이 넘치지만 조금은 부족한 이미지가 형성되어 버렸고,
이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에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었다. 
 
이 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람이 실수를 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시간은 그의 곱절은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명령이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내 모습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일관성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세는 병장 때까지 지켜야 했던 것은 비밀이긴 하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이득이었지만, 그때의 치욕적인 감정은 아직도 기억한다. 
이 실수를 내 후임이 반복하지는 않기는 바람이지만,
그가 내 의도를 깨닫는 것은 오랜 후의 일이었다
 
이런 기억의 저편들의 조각 덕분에, 지금은 단어를 번역할 때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서 번역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에게 있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어도, 읽는 사람은 내 문장과 내 의도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에 의미가 없고 통역은 있으나 마나 한 시간 낭비인 것이니까.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이번 편은 정말 쓰고 싶었던 편중하나다, 이게 정말 서러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글이기도 하고 잘못해도 욕먹고 잘해도 욕먹는 번역과 통역의 끝판왕,

 

바로 은유법의 번역과 통역이 되겠다.

 

이 말은 영어속담을 한국어로 100% 번역하거나 혹은 한국어의 속담을 100%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하면 문화적 이해로 어떤 뜻인지 알아서,

10을 말하면 100을 이해하고, 어찌 보면 그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허탈한 웃음이 나오게 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번역과 통역의 관점에서는 이런 복병이 아닌 애들이 없다. 

 

정말 너무 싫다. 아니 싫은걸 넘어서서 가증스럽다.

아무리 언어를 사랑하는 나의 성격이라지만,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언어의 표현을 어찌 영어로 번역하겠는가?

 

위에 쓴 문장도, 그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천둥벌거숭이"를 영어로 번역하라고 하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번역이나 통역에 앞서서, 같이 들어가는 분에게 부탁을 하옵건대 수사학적인 표현을 해주지 마시고 그냥 사실만 간결히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매번 말했다만, 그 말을 들어주시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고 계급도 낮은 내가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기억에 남는 영어의 표현은

 

"I understand everyone's efforts...... but I still can see the big dinosaur in the files."

모두의 노력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마는, 아직 공룡이 보인다네..

당시 공룡을 찾으셧던 라카메라

라고 번역을 하면, 나의 역할이 끝나겠다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공룡이 무슨 의미를 하고 있는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렇다

 

이 언어적 수사학적 표현방법에서 문화적 차이를 번역하고 통역하는 것도 어학병의 역할,

그래서 어학병을 해외유학을 오랫동안 해온 아이들을 뽑는 이유기이기도 하며

통역장교를 교육하는 데에도 최소 6개월의 국방어학원의 수습기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랬다,. 

 

다시 돌아와서, 영어에서의 공룡의 표현은 

Dinosaur Definition & Meaning - Merriam-Webster

 

Definition of DINOSAUR

any of a group (Dinosauria) of extinct, often very large, carnivorous or herbivorous archosaurian reptiles that have the hind limbs extending directly beneath the body and include chiefly terrestrial, bipedal or quadrupedal ornithischians (such as ankylosa

www.merriam-webster.com

: : one that is impractically large, out-of-date, or obsolete

오래되어 변하기 힘든 구시대의 잔물등을 지칭할때 "공룡"이라는 표현을 하신 것이다. 분명, 말씀하신 분은 자기 자신의 다양한 수사학적 어휘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명을 주고 행동을 할 것을 생각 하신 것일텐데, 이제 통역에겐 충분히 고역이었던 샘이다. 
 

이와 비슷한 일화로,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할때 훈련당시에 이야기인데, 

 

 
.... 이러한 훈련의 마지막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주시길 바랍니다 

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감회가 새롭다는 말을 , 내가 어찌 영어로 통역을 했냐만은

 

"It is such ambivalent feeling at the last day of drill, However, we must focus on our obejectives"
라고통역을 했었다

 

Ambivalent 

 -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싫다고 해야할지 애매모호한 상황을 말하는 단어

감회가 새롭다 

 - 지나간 일을 뒤돌아 보았을 때, 느끼는 그때와 사뭇 다른 감정

 

보이는 것처럼 그 단어의 뜻은 차이가 컸다.

그렇다 번역이라는 입장에서,

통역병이라는 입장에서 평가는 0점.

실패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소를 생각하자면, 100% 의 뜻이 아니라고 해도 60%는 전달이 되었었고, 어차피 훈련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개인적인 사담 같은 것이니 중요하지는 않기도 하지만 역시나 그 문장의 구조 하나하나가 인간미 넘치는 문장 아니한가? 지금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 문장에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낸 문장의 기록이 회의록에 영원히 남아 다른 후임들에게 기록을 넘길 생각을 하면, 감정이 복받쳐 오르곤 한다. 

 

또 다른 통역의 기억으로는, 

 "여러분도 눈이 있으니까 굳이 불필요한 것들을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I do not want to discuss unecessary comments from what we can see now 

 

이것도 100% 정확한 번역과 통역이 아닌데, 그 이유로는 역시 그 문장의 비교를 해보면 첫 한국말의 문장은 "눈으로 볼 수 있는걸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는 뜻이 강하고, 영어 번역은 "불필요한 논의를 하고 싶지는 않다"라는 뜻이 된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같은 말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전달 방식에 있어서 번역을 하는 "나"의 표현 방법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이 완벽한 번역에 대한 열망과 갈망은 군 생활 내내 남아있었고 지금도 문장을 하나 표현 할 때 어떤 방식이 더욱더 Native스러운지 방법을 찾는데 대다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그게 되는 것은 곧 잘없지만 말이다. 정말 안타까운 부분, 그래도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번역을 참고하고 탐구해나 가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 다른 서러운 이야기로는 , 이러한 수사법적인 차이 말고도, 업무 진행방식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차이는 너무 많아 그 때문에 중간에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서로 말싸움이 된 상태에서는 중간에 껴서 통역을 하게 되면, 자아 분열이 온 것처럼 나 스스로랑 싸우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상황은 미 측과 한 측의

갈등 상황이었는데

 

미 측에서는 한국군 소속인 내가 한국군에게 싫은 소리(미 측이 한 말)를 번역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Say it, God dam Say it, it is not your voice, it is my voice, and your job is to translate.
Don't give a damn about the afterwards. I will take your cover.

 

즉 , "말해, 가서 너의 상관한테 가서 말해, 너의 역할은 통역이고 그 이후의 일은 신경 쓰지 마,

뭔 일 생기면 내 잘못이니까"라고 소리를 친적이 있으셨다.

물론 매우 감사한 배려심이었지만, 그 어느 부하가 자기 상관에게 싫은 소리를 하겠는가

실제로 통역에게 이렇게까지 소리치는것은 아니지만

 

이 영어를 한국군 장교분께서도 모르시는 것은 아니기에, 그가 답한 것은 

 

" 그래도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I cannot help you out even if I can if your-side act like this.

 이런 상황에서 중간에 낀 사람의 마음은 무너지길 마련이다, 그래도 감정을 다잡고,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 물론 마찰이 되는 단어는 빼야 했었다. 그렇게 10분 20분간의 실랑이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나에게 남겨지는 말은 고생했다는 말은 없고, 서로 감정이 상한 2명의 성인 남성과 중간에 끌려와서 고생하는 통역병 한 명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말하기보다는, 나의 생각과 주장보다 살아있는 번역기로써의 삶이 억울하고 서러웠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을 말할 권리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의무였고 나의 역할이었으니까. 때론 차라리 전방부대나 아니면 다른 보직에 보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정도였고 너무 힘들어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생활관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아무튼, 군대에서 중간만 가라는 이야기는,

통역병의 입장에서는 "중간"에 껴서 "알아서 해"라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그 상황에 있었던 나와 한국군 간부님은 건물 뒤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면서 위로를 해주는 말뿐이었다. 매번 그럴 때마다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부하로써의 위로는 

 

"간부님 마음 이해 못 하는 것 아닙니다, 나라 지키고자 하는 일이 쉽기만 하면 벌써 통일되었겠지요" 

 

하는 말뿐이었고, 비어있는 허울뿐인 말이라고 해도 그 문장을 잘 들어주시고는 했다. 

아직도 밤이 되면, 그의 서러움과 억울한 남은 눈빛이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의 억울한 표정과 더불어 한 가족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넘치는 표정은 내 마음손 한편에서 남아 있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한-미 동맹이라는 것이 갑-을이 명확한 존재였으니까 

 

군이란 장소는 그런 곳이다

억울해도 말을 하지 못하고

결국엔 나보다도 더 중요한 사람을 챙겨야 하는 장소

 

그렇기에 내가 그 자리에 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아무런 일탈 없이 전역한 것이겠지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과 생각의 방식이 아직 내 마음 속 한편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오늘의 포스팅 마무리는, 군 생활 기간동안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었던 "칼 되니츠"의 어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군인이란 모름지기 독일이라는 나라가 어떤 체제 하에 있든 조국을 등지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체제와 다르다고 해서 조국을 등지는 일은,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독일-프로이센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카를 되니츠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남자들만 아는 논산의 감성은 아무리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에게 말해도,
다른 남자들에게는 쉽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모든 것이 어려우며, 심지어 사회에서의 통념자체가 먹히지 않은 곳이며, 꽉 막힌 장소 그렇기에 그 장소, 군대를 다녀온 몇 남성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생각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남거나 혹은 상처만 남지만 그 인지 없이 생겨버린 상처와 얼룩의 존재를 본인들은 모른 채 살아간다. 그래서 가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는 회사를 가거나 아니면 어떤 조직 생활을 하게 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군대는 다녀오셨고요?"

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이 말의 중점은 군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확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조직생활의 시야가 있으며 혹은 어느 정도의 탐탁지 않은 일을 견뎌낼 수 있는 내성이 있냐는 말로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들린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처음 마주한 군대라는 공간은 그런 공간이었다.

논산이라는 공간이 아무리 이전 90년대나 2000년대의 초반의 군대와는 절대 같지 않고

아무리 "좋아졌다"라는 공간이라고 해도
"좋아짐"이라는 것도
결국 상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 말은 즉, 어떤 이들에게 "논산"은 모든 것이 쉽고 기억 속에서 위로를 주는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한없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며 그리고 개성을 용납하지 않은 사회를 살아간 사람들 입장에서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라고 느껴지는 곳이기도 한다. 그 "사람"을 만드는 공간이라는 것이, 나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매번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었다.

 

대한민국에서 "사람"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 고작 한 달밖에 안 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대한민국의 대다수이라면, 왜 자기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다음 세대가 겪길 바라며, 그리고 자신과도 같은 사람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 한다. 

 

아무튼, 오늘은 그날의 기억을 말하고 싶다. 

군대에 가고 싶어서, 군대를 기쁘게 다녀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군대를 가기 싫은 곳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마음을 전부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육군 어학병(통역병) 복무 이야기

2023년 1월 27일 나는 한미연합사에서 어학병으로 전역을 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내가 말을 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를 내가 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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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설명하자면, 이 말은 마치 인지는 하고 무시하는 것이라면 그런 것인데 

쉽게 말해 이는 마치 불이 켜지는 방에 들어가는 마음과 별 다른 것이 없다. 우리가 밝은 방에 들어갈 때, 방에 빛이 있음을 인지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군대에 가기 싫다고 속된 말로 징징 거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난 그렇게 반응했다.

왜냐하면 군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있어서는 다른 공간이니까

국방의 의무는 국민의 신성한 의무니까.

그렇기에

다녀온 사람들을 한 없이 고개 숙여 존중하지만

다녀오지 않은 "사람"을 한 없이 측은지심의 감정으로 보거나

 

혹은 

 

내 생각 속에서 "사람"의 개념을 달리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측은 지심이라는 공간은, 국방의 의무라는 국민으로써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을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으로 보았었다. 그래서 군이라는 공간은 그런 곳이다, 사람의 생각을 그렇게 변하게 만든다.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를,

군대라는 창틀에 가둬 군필이냐
군필이 아니냐 하는 색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지극히 이분법 적인 사고, 사람이라면 누구던지 안 한 적이 없고 가장 거리를 두어야 하는 사고, 그리고 사람을 병들게 하며 혹은 세상 살아가는 것을 쉽게 만들어주는 사고.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은 있었는데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니까

결국에는 군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로 남자들은 쉽게 친구가 되고 쉽게 하나되고 그 고통을 이해하니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친구는 나에게

 

한때, 내 친구는 나에게 나지막이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며, 법원에서 4급 대체복무를 하였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나는 22살 미필의 시야였었고, 

그는 그의 대체 복무를 하면서 나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아무튼 그가 나에게 해준 말은 간단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은, 군대의 PTSD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서로 치료받기 위해 회사나 다른 공간을 만들어 다니는 것 같다고

 

 

그의 말을 나는 그저 사람들이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에 가는 것을 단순히 PTSD라는 단어를 이용해 묘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땐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이의 생각을 너무 얕게 생각한 거였다.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말의 깊이는 굉장히 깊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겪는 처음의 조직문화가 군대의 조직문화였고

그 군대의 조직문화는 대한민국 사회에 뼈 깊이 새겨져 있다고

이 사회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조선이 독립을 찾고 임시정부를 만들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갔을 때. 

그 시작을 군대로 시작해서?

 

아니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내려온 이후로 9대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군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갔기 때문에? 

사회 발전의 뒤에는, 수많이 언급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겠지

 

아니면 오랜 그 이후, 스스로의 사조직을 앞 세워 다른 사람의 열망들을 짓밟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판사님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끝의 귀결은 내 고통을 내 다음세대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음

 

내가 배운 가르침들을 스스로 한번 겪어보면서 배우길 원한다 하는 생각들이 매번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생각의 차이와 의견의 충돌이 나로 하여금 끝없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당장은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생각의 끝에는 언젠가 정답이 있지 않을까 의구심과 혹은 두가지 선택에 갈림길에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나가게 할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들 뿐이다. 또한 이런 생각의 과정을 나만 했다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이 일련의 생각의 과정을 자식을 키우는 남자라면 안 하지 않았을 테니까. 왜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면 간단하다, 부모 되는 입장인 사람이면 자식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바라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아직 부모가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은 호주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고, 그런 외부의 시야로 세상을 보는 것이기에 이런 시야를 갖게 된 나도,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어찌 보면 이 생각의 과정을 거치면, 나 자신이 한국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그래도, 난 나 자신이 한국인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되고 싶었는 건지 아니면 그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논산의 기억,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장소는 그립지 않은 그 장소, 모든 것이 시작되는 그 장소, 논산

 

딸기로 유명한 장소라고 나는 알고 있지만, 막상 실제로는 딸기보다는 소똥의 냄새가 더 나며 훈련소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단지의 모습인 사회의 모습과 위로 넘어갈 수 없는 벽, 그리고 혹여나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철조망들, 해외의 군사기지는 밖에서의 공격을 방해하기 위해서 그 벽을 치고 요새화를 하겠지만 한국 논산훈련소의 배치도는 오랜 역사를 자랑했기에 밖에서의 공격보다는, 안에서의 탈출을 막기 위해 구조화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하루의 시간이, 평소에 겪는 하루보다 2배 이상 느리며 그리고 옆에 있는 동기가, 처음 보는 동기가 나중 가서는 가족보다 소중해 보이는 그 장소 그곳이 논산이었다. 20살 초반의 어린아이들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찾아오게 되거나 혹은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모르기 때문에 찾아오는 장소. 다양한 인생의 이야기를 가진 이들을 공장에서 몰딩해 찍어내듯이 다른 맞물리지 않는 이들을 맞물리게 만든다.

 

그러니, 당연히도,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밖에

 

나는 군대가 재밌었다, 아니 재밌었다고 하면 좀 그러니, 즐거웠었다. 내 부대는 2x연대 3소대였었는데, 3소대 4소대의 생활관의 분위기는 누군가 국경선을 그어놨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이는 소대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는데, 우리 소대장은 특전사(특수전사령부) 출신의 특수임무 훈련을 받은 중사 분이었었고, 옆소대의 소대장은 전역을 언젠가 기필코 하고야 말겠다는 말년 중사. 매번 고양된 목소리로 "응~ 안녀어엉" 하는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정말, 달랐기에, 난 4소대가 부러우면서도, 3소대 소속으로써의 자부심이 있었다. 우리 소대는 특히 애들끼리 떠드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조용한 걸 싫어하는 나는 하여금 그 분위기를 너무 사랑했기도 했으며 그 분위기를 만들게 하고는 있었다. 

곧 잘 이 때문에 마찰이 생기기도 하였는데, 그래도 물리적인 마찰은 없었으니, 한 달 동안의 분위기치고는 재밌게 논 정도. 

 

물론 너무 나서는 내 성격 탓도 있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지나가는 장소로만 생각했었으니까. 마치 오랫동안 타야 하는 고속버스를 타는 감정으로, 버스 안에 사람이 누가 타던 친해지겠다는 개념은 없었으니까. 어쩌다 보니 아까 말했던 4소대 소대장과 이름도 공유하고 친해진 적이 있는데, 하시는 말씀으로는 자기 와이프의 성씨가 내 성씨하고 같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해주는 것도 있다고 말씀을 해주신 것은 있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중사님은, "X까 이 새꺄" 하는 말로 웃으며 넘기고는 했으니까. 그런 그에게 난 수많은 훈련병들 중 하나였고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며 지나가는 일반 병사인지 혹은 병 x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군에가면 무조건 한명쯤 있는 사람

아무튼 그런 그에게 내 훈련소 이름표를 남겨주고 싶었는데,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아니 오히려 사람을 너무 계속해서 만나고 헤어지기 때문에 본인의 임무에 집중해야 하니 또 다른 사사로운 정을 두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어차피 헤어질 애들인데, 굳이 정 주지 말자 

 

훈련소에서 오랜 군생활을 하다 보면 온갖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되고, 그 온갖 인간 군상에서 나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었을 테니. 이런 마인드가 조금은 섭섭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공간임을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기억에 남는, 목소리에서 쉰소리가 나는 원사분, 쉰소리란, 정말 목에 파이프를 넣어 소리가 빠지면서 나아가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이었는데, 병사의 선물을 하나하나 헤아려주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고 하면 생각이 많이 든다.

이들은 아버지 같으신 분들, 전쟁이 나면 본인의 사명감으로 전장으로 나가겠지만 그와 동시에 어린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고 싶지 않아 하는 그의 얼굴은 표정에서 잘 보였었다.

 

고작 표정만 보고 뭘 알 수 있느냐 하겠다마는,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사람의 태도와 어투에서 나오는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 그 연륜 속에 분노를 절제할 줄도 아는 사람. 그런 원사분이 이었다.

목소리 좀 웃겨요

모든 것을 수리할 줄도 알며, 그저 쇳덩어리만 보면 머릿속에 있는 것도 손쉽게 만들어 내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의 차갑지만 속에 박힌 따뜻함은 아직도 기억의 저편에서 매일 아침 나에게 야단을 내곤 하신다

 

훈련소 조교, 훈련병은 사실상 없는 계급이라, 이 훈련병들을 담당하는 훈련소 조교들의 계급은 보통 일병~상병 혹은 가짜계급장으로 하사~ 중사의 포지션을 맡고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잊을 수가 있나.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전역하고도 만난 사람이고,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고 있긴 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생각이 날 때, 다시 한번 하겠다.

그 육교를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이 글의 제목인, 거꾸로 가는 열차 고작 4주간의 훈련, 길고도 짧은 논산의 한 달을 버틴 훈련소에서 나와 가는 자대 배치. 이 글을 읽는 군필자라면 첫 자대배치 감정이 어떤 감정이 드는지는 묘사를 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정이라면 정이든 나의 훈련소 동기들을 뒤로하고 나아가는 평생 동기들의 장소

"자대"

 

난 자대를 이미 사령부로 배치를 명 받았기 때문에,

그 때문에 설레는 마음이 넘쳐났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로 즐거운 날이었으니까. 

 

 

참으로도 역설적인 부분은, 군 생활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관점에서 자대로 가는 열차가, 뒤로 간다는 점이었다. 

이는 나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들게 하였었는데,  군이라는 공간 속에서 "자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자리가, 뒤로 간다는 점은 이 감회를 새롭게 하였는데, 이는 훈련소의 진전이, 자대에서는 딱히 의미가 없는 행위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즉 훈련소에서 내가 성취한 "앞"이라는 개념이, 자대에서는 "특별한" 행위 자체가 아닐 테니까. 왜냐하면, 내가 가는 모든 이들이 훈련소를 수료했었으니까. 

 

즉, 이 한 달의 기간이 무의미한 일인 것.  

 

물론, 사회의 관점에서는 굉장히 유의미한 경험이었겠지만 훈련소 수료라는 것이 당연한 관점에서는 나의 한 달이라는 고난과 고생이 그렇게 특별할 게 없는 경험이었던 것. 

 

물론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고작 한 줄의 계급장이었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 계급장의 크기는 크게 느껴졌으니까.

반짝반짝


아무튼, 이러한 생각을 뒤로하고, 어학병으로써의 삶을 시작하는건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하겠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달라.

 


북한은 상도덕을 모르는 새끼들이라서 그런지, 주말마다 미사일을 쏘았는데, 그리되면 주말 당직을 서는 분들도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군은 그 조직의 특성상 24시간 동안 적의 동태를 파악해야 했고, 그들의 특이 움직임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서로 서로 편하게 좀, 주말이나 아니면 행사하는 날이나 쉬는 날에는 공격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이 x끼들은 그런 날이면 오히려 머릿속으로는 "야 우리가 이때 공격하면 저 새끼들 X 같겠지" 하는 매뉴얼이 있나?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정도로 X랄 아닌 X랄 한다. 

어 ~ 주말이야~ 쏠거야~

 이는 간부/병사로 하여금 주말 출근을 하게 하며, 하루하루 훈련으로 고되게 아니 그냥 하루일과를 보내고 나서 따스하게 마음의 힐링을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마음에 불을 지필뿐만 아니라 서로 불편한, 정도에 따라 높으신 분들도 나오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자리가 만든 책임이자 의무이며, 그 직책의 걸맞은 행동임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는 명분을 주는 새끼가 X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화성 15호 발사

 

화성 5호 발사

 이 글을 보고 있는 군 관련자들은 필히 공감을 하겠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으신 여성분들이나 혹은 대체복무자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면, 당신이 일하고 있는 자리에, 당신만이 담당할 수 있는 일들이 당신의 쉬는 시간을 노려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것었다면 그냥 오늘 하루 똥 밟았다 싶어 하루를 어쩔 수 없이 보낸다면, 이 군생활의 주적은 확실하다.

발사체 (X랄)

그렇다, 그 새끼다

 

아무튼, 2022년은 그런 한해였다. 주말마다 미사일 쏴재껴 진짜 짜증 나게, 어학병이 주말에 미사일 쏘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싶겠지만, 우리는 한미 동맹. 70년 동안 서로를 지켜낸 동맹,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는 언어로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파파고인 우리는 군복을 입고, 우리의 위치로 향해야 한다.

 

2022년 5월에는 우리도 대응 사격을 하겠다고, 그 울분을 쏟아내었었던 것도 얼마 되지도 않았었는데

 

이 11월 12월의 기억은 매우 강렬한데, 눈 쌓인 부대의 사이사이로, 현 위치로 복귀하는 것은 그 감성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새벽의 차량의 불빛이 어둠길을 갈라내고 제설 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후임들 사이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타려고 하는 미군들 사이에서 그 즐거움이 고양되어 있었을 즈음에, 

 

이 X발련은 이 분위기에 초대받지 않았다는 것에 꼬장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하하 나도 유학생이었던 적이 있어서 서양애들은  지금이 딱 적기야 지금 때려야 해"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었다)

하는 마음으로 버튼을 누른 게 틀림없다. 

야발련

 

그 의도가 어찌하던, 그들의 핵무장을 향한 발걸음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던, 우리의 하루를 망쳐버린 것을 의도했다면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은 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좋아하는 주한미군도 그런 "군기강해이'의 형태를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물론,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난 기강해이라고 보다는 지친 하루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국가 간의 선은 상대 쪽에서 계속해서 넘어왔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대응하지도 못했었는데 이는 서로의 위치와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외교를 정상국가스럽게 대처해야 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있었고, 북한은 그런 이해관계를 신경도 안 쓰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하물며 공식적인 TV방송을 이웃국가인 일본을 "파렴치한" 혹은 "역적패당"이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훗일 생각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외교를 하는 곳이 북한이라는 곳이니까

 

단어 선택하고는 참..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다, 대응사격을 하겠다고 하였지만, 그때 당시에는 워낙 대응을 하고 싶어도 하지는 못했다. 평화합의라고 한 것으로 우리의 팔이 묶여 비유를 하자면 앞마당에서 불장난을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 모습만 연출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작성시기 2024년) 상황이 다르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랬다. 그러한 복잡한 내부에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직접적으로 표출을 하지는 못하고 간접적으로 미국 측에서 움직여 주길 기대해야 하는, 은연중에 말을 해주면서 눈치껏 그들이 받아들여주길 원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니까.

 

미국도 한국과 수교를 하고 외교를 하고 동맹으로서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그 속사정을 알고 있는 건 있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미국과 간접적으로 돌려 말해야 하는 한국의 업무방식의 차이 속에서 생기는 감정적 마찰은 통역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니 스트레스는 안 받고 싶어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하는 사건은 2022년에 발생한 북한 무인기의 침범 사건, 서울 하늘을 쓰윽 살펴간 이 사건, 덕분에 미 측에서도 "당했다"라는 반응을 보여줬었으니까. 물론 내가 기억하는 그 "당했다"라는 것은, 돌려보냈다는 그 "당했다"였던 거 같다.  한동안 언론에서도 시끄러웠었고, 늦장대응이다 뭐다 하면서 대한민국 언론이 분열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떠들썩했으니까

 

출처:동아일보

 

. 이러한 이야기 끝에 결국에는 우리도 대응을 똑같이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 "야 너도 그러면 똑같은 놈이 되는 거야" 이런 말을 할 수 도 있긴 하다. 하지만 옆집이 외교를 정상적인 국가처럼 하는 곳도 아니며 미치광이 전술로 간을 보면서 끝까지 신경을 긁고 가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해줘야 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방법이, 유엔 측에서는 이런 결과를 낳긴 하였지만 말이다 

 

 

유엔사 "무인기 보낸 北·맞대응한 南, 둘다 정전협정 위반"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유엔군사령부는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의 남한 영공 침투와 그에 맞대응해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낸 남한의 군사...

www.yna.co.kr

 

그들 또한 그들의 입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해한다. 조금 아쉬운 마음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주지 못하는 중립적인 유엔의 태도였겠지만 그래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도 그 바빴던 날들을 난 기억 한다,

 

잊을 수가 있나. 지극히 악의적인 개 X 끼들, 덕분에 한동안 주말출근은 기본이었으니까. 

 

뭐 혹자들은 북한이 한국의 담당일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하는 시야도 있긴 하다, 한국의 약점을 일부러 공격해 우리가 보완해야 할 부분을 1대 1 과외로 알려주고 있다고, 놀라운 시야지만, 그렇게 보일 정도로 이 무인기 대응은 우리가 할 말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제 나는 전역자의 시야로 군을 보고, 또한 동시에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작금의 상황인 남북관계는 평화의 노선을 가고 있는 그림이 아니라 서로 간의  화구를 맞대어 네가 쏘면 내가 쏘겠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유감임과 동시에, 내 또래와 그리고 미래에 군에서 살아가야 하는 내 동생들 그리고 미래에 혹시 모르는 내 아들들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분명 나도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 놀토를 그리워하던 그 시절에,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행사를 했었고 그리고 그 편지에는 이후에 한반도가 통일되어 군대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은 생기지 않지 않았던가. 

 

1년 6개월의 군생활을 길다면 길고 짧게 했지만, 그 짧은 군 생활은 변화의 시기였기 때문에, 2018년에서 2022년의 정권 이양의 시기를 직접 겪었으니까, 군대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바뀌어 나가는 것을 직접 체감했었으니까. 이제 나는 전역을 했고, 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상태로 내 경험과 내 기억을 갖고 이제 군에 들어가는 동생들을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영광스럽고 명예스러워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한 없이 당연해졌고, 다른 나라 사람들 입장에선 선택이었던 것이 희생의 강요를 처음 겪는 장소가 바로 군이라는 공간이니까. 내가 겪은 발자취를 내 동생들과 후임들이 당장 따라갈 것은 아니지만, 그 감정과 그 장소에 대한 이해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 한편에서는 더 잘해주고 싶은 감정만 벅차오를 수밖에 없다. 

 

이 감정의 기원이, 사회의 시스템 때문이고, 그 시스템의 출발은 그 X발련 때문인데 

 

 

덕분에 20대 초반에 성숙해지는 계기를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 스스로가 실수를 하는 것이 발생하면, 책임 소재에 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강제) 곳이 군대만큼 좋은 곳이 없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는 게 훨나은 그곳,

그런데 이 장소를 겪게 만드는 게 그 새끼

 

분명 이 글도, 북에서 읽고 있다면 내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데, 주체고 X랄이고 너네들이 주말이라는 것도 없고 휴일도 없이 착취당하는 꼬장을 왜 우리한테 부리는지 모르겠다. 그 꼬장의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너네 윗사람한테 가서 부릴 것이지. 정말 짜증 나는 족속들

 

 

십새기

아무튼, 이 글을 읽을 나의 동생들과, 내 후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또 달리 하는데, 그 메시지는 간단히 


 

"원래 그런 장소니까 버티고 그래도  자기 자신을 잃지 말아 달라"


이상, 오늘의 기억 주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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