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애국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난 생각한다. 다만 다들 정도의 차이인 것이지 나라를 사랑하고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은 희생정신은 한국인의 마음속 안에 뿌리 깊이 들어있다고 난 항상 그리 믿어왔다.

이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나라에게 보답은 하였지만,

사람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했던 나의 회고록이기도 하며
아직도 그 일에 관해서 죄책감을 느낄 때가 더 많은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큰 이야기다. 
 
이야기는 나의 상병 3호봉 내지 4호봉 당시로 가야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그래도 혹여나 군의 시스템에 관해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이병은 훈련소를 제외하고 자대배치 2개월이 조금 지나면 일병의 계급장을 달게 되고,
일병 6개월이 지나 상병, 그리고 상병 3호봉으로 가게 된다면 대략

군대에서 지낸 시간 1년이 조금 넘는,
어찌 보면 사람구실을 착실히 해내는,

일병이면 1인분만 해도 칭찬을 받지만 상병일 때는 1.2인분 아니

1.4인분 정도 하게 되는 그 구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
 
함께한 기간이 1년이 다가가게 되는 만큼, 한없이 넘쳐나는 스트레스 속에서

일병에겐 의지할 수 있는 실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구간이다.

게다가 18개월이라는 군 생활 속에서, 쌓인 휴가를 제외하고 나서는 6개월 남짓 전역까지 얼마 안 남은 상황
 
물론,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할 것은 나와 나의 역할은 특직부 대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병사들끼리의 끈기와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다른 부대의 이야기보다는,


사무실에서의 상호간의 업무 이해와 효율이 올라갔었는데.
이러한 요소는 미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었다.
비록 우리의 관계는 사무적으로 연결되었을지언정
인간으로서의 관계는 사무적 한정으로 연결되어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보이지 않는 바운더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매번 상기시켜주곤 했었다
 
비록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더라도,

다른 군복을 입었음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의 일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말이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친구 사귀기가 힘들어진다고
왜냐하면 서로의 바운더리를 존중하게 됨으로써 그 거리감을 굳이 구태여 좁히지 않으려고 함에 있는데
 
이 비슷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곳이 내가 일하는 곳이었다. 
난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물론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매번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우리의 관계는 업무적 관계 
쌍무적 계약관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하였으니깐 
 
상대방도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는 있는 것 같았다
. 

개인 간의 관계를 보기 전의 양국 간의 상호호혜관계를 봐야 한다는 시야

(개인을 보기전에 국가를 봐야 한다)
참 사람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그 조직을 대표하는,

아니 그 조직의 거대한 톱니바퀴 중 하나인 사람
내가 당장 이 장소에서 어떻게 접근하던,

그는 나를 동시에 사람으로 보기 전에 하나의 메신저로써 부품으로써 날 받아들이겠지.
 
우리의 임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한 가지,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 측
 
한국이라는 "타지"땅에서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이곳에 와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있어봐야
 
그의 직장상사
 
하지만, 직장상사에게 본인의 외로움과 감정의 힘듦을

토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어느 나라의

사회생활 속에서 Big NoNo였으니까
 
그와 달리 한 측은 서로의 문화권으로 이해관계가 하나 되어

외로움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점이 있긴 했었다
 
이제 이러한 이해와 함께 오늘의 이야기를 해보자


구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용산의 사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미국이, 아니, "그"가 나에게 감정 섞인,

눈물 맺힌 질문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였을 때
 
난 "사람"으로서의 답보다,

"조직"으로써의 답을 주었다는 것을
 
어느 날이었다, 조용했던 하루 중에 그의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를 연락받은

나는 노트와 팬을 챙겨 달려갔다.
(통역병에게 노트와 팬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게 좋다, 언제 통역이 발생할지 모르니)
 
그날은 이상하게도, 누가 그의 방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함을 깨닫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는데,

본래 나는 한국군 소속으로써 통역을 찾는다면 한국군 간부님이 더 많이 찾는다.
 
그러나 그날은, 미국에서 먼저 나에게 연락이 온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방에서 그는 의자를 하나 두고는,

나에게 앉으라는 손짓으로

"어서 와"

Come on in
sit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

패기 넘치던 그는 온데간데없고, 지쳐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한국 측에서 나에 관한 평가를 알려줄 수 있겠나? 다른 것이라도 괜찮다네, 아무거라도 좋으니 "

Can you tell me what's going on about me ROK side?
Anything
 
침묵
 
조용한 침묵이 아닌
 

 
침묵
 
몇 초였을지 모르는 시간 이후에,

난 대답했다
 

Can't do that Major, I do not have any liberty to say anything unless it's an official comment.

죄송합니다 소령님, 저는 공식적인 답이 아니면 개인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아무거 나라도 좋네

Anything, it's just any comment.
 

Sorry sir, you would understand this if you were in my shoes

유감입니다, 제 처지에 있으면 이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다, 난 그 사람의 희망을 향한 손짓을 
교육받은 대로

그러니까

나라가 나에게 위임했던 대로 단호하게 행동했다.
설령 동맹국이라고 할지라도,
타국타국, 또한 이전에
간부님이 매번 나에게 말씀해 주셨던
 
 
어디까지나 내가 공식적으로 행동할 때 네가 움직이는 거야
너는 개인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너의 입이 나라의 입이다 하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녀
 
그러한 배경 속에 맞닥뜨리는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날의 상황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날이 자랑스러웠다는 생각보다는 
틀리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생각보다는
그 상황이 일어나게 된 ,

 

그에게 있어 악조건 같은 상황들이 생각이 난다
 
그의 부탁을 듣지 않은 행동 자체는 올바르긴 했었다

,
통역은 통역인 만큼,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남기고
그 상황의 평가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일들이며
그저 걸어 다니는 파파고의 임무를 완수하다 보면은
특출 난 영어 실력과 함께 전역의 아침을 맞이하면 된다.

 


나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거기까지니까.
 
 
지나간 일을 신경 왜 쓰냐고 하면
일말의 책임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병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난 올바른 일을 했다
 

그날은 흐린 날이었고
흙냄새와 더불어 오랜 카펫의 냄새 속에서 있는
그런 담배 한 개비가 생각난다.
그것뿐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일반적인 대화와는 달리 회의 통역과, 문서 번역에는 단어의 선택을 굉장히 세심히 해야 하는데,
이는 그 번역 문서가 가지는 파급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작전서를 번역하는 경우 그 읽는 사람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그 교본을 읽게 될지 하는 생각이 필요하고
혹은 전투교본을 번역할 경우, 그 교본이 무엇에 관한 설명서인지 알아야 한다. 
 
이는 내가 작업하는 문서를 모르는 상태에서,
날 그저 살아있는 파파고 정도로만 생각하고
 
번역에 대한 어떠한 충고도 없이
업무에 넣으신 간부님과,
 
명령이 내려오면 질문하지 않고 업무에 바로 투입하는
내 성향이 맞물려 생긴 해프닝에 관한 이야기다. 
 
이 글의 제목이 의미하듯이, 나는 한국군대와 미군부대를
내 의도와 다르게 전쟁범죄자로 만들뻔했었다.


 
때는 간부님이 새로이 업데이트하고 작계(OPLAN-Operation Plan)를 번역하고 있었을 당시
(이 작업은 우리에게 있어 매일 같은 일과의 하루였는데)
(작계에 관한 내용은 나무위키를 참고해달라)

작전계획

특정 부대가 전시에 어떻게 작전을 수행할지에 관한 계획으로, 매우 상세한 수준까지 적혀 있다. 적국 뿐만 아니라 자

namu.wiki

당연히 이 작전계획의 특성상 한국어 - 영어로 바뀌는 번역을 필요로 했었고
이는 어감을 살리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었다.
 
물론 난 그때 당시 일등병이었고,
이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으며,
그저 명령이니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있었다. 
나에게 처음 주어진, 그리고 나의 평판을 좌우할 수 있는 기회였었으니까
 
군대를 다녀온 남성분들은 알 것이다,
열정 넘치는 이등병과 일병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는 
어디까지가 해야 하는 부분이고, 어디까지가 윗사람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책임소지의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는 것


즉 열정은 넘치는데,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실수를 덮기 위해 더 큰 인력자원이 소모된다는 점
 
그래도 그러한 일을 한 일병을 누가 혼내겠는가
끌려오더라도 잘하겠다고 마음먹은 아이를 혼내는 부모가 없듯이
열정이 있고 그 명령을 따르고자 하였던 부하를 혼내는 상관은 없던 것 같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내가 복무하는 곳에는 그런 분들이 오지 못했던 것인데., 
 
아무튼, 각설하고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단어 중 하나는 
 
Destroy and Defeat, Neutralize 
이라는 단어의 개념적 차이를 말하고 싶다.
영어 단어를 처음 공부한 학생이나 혹은 군 단어의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이 단어들은
다른 형태를 띠지만 같은 단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군대에서는 다르다 
 

DoD Terminology Program

The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CJCS) is the primary office of responsibility for the management of the Department of Defense (DoD) Terminology Program. Its purpose is to improve communications and mutual understanding within DoD, with other fed

www.jcs.mil

미 국방성의 단어집 에서 이들의 정의는 
Destroy: 적을 격퇴하는 행위
Defeat : 적은 패퇴, 혹은 전략적으로 후퇴시키는 행위
한국말로 정확한 번역을 하면,
격퇴와 패퇴의 차이정도인데. 
이제 갓 전입온 신병에게는 Destroy와 Defeat, Neutralize, Deny, delay 등등의
온갖 군사적 단어의 디테일한 차이점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었다 
 
이러한 성숙하지 못한 생각을 가진 병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해볼게요! '
 
와도 같은 열정 넘치는 모습이었는데
문제는 전문성이 필요로 하는 공간에서는 
이러한 열정은 그다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모르는 애들은 가만히 있고 통제에 따르는 것이 더 크게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당연히 "비전문가"니까
예로부터 알지도 못하면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면 화를 부른다고 하는 이야기는 
과거 문헌에서도 많이 나온 일이니까 말이다
 
괜히 나 섰다 가는 책임의 화살이 나에게 날아오는 것뿐만 아니라
책임을 굳이 안 져도 되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찌 되었건, 이런 비전문가가 그나마 최상인 선택지일 때 인 상황이 매번 생기는 곳이 군대인데.
안타깝게도, 이 공간의 시스템은 우리들의 고충을 비웃기라도 하듯 열정만 강요하길 마련이다.
그래야지 높으신 분들은 웃음 지으면서 
"역시 내 부대관리가 잘 돼 가고 있구먼"
하는 말을 할 테니까
 
아무튼 다시 돌아와, 번역하는 자료에는 "잔당 처리" 관련 문건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전후처리를 행동하는 도중에 나온 문건중 하나인데, 
처리라는 맥락은 통역병인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며, 내 직속상관은 계획관님은 넘쳐나는 일에 치여서 도와줄 수 없는 상태였었다.
 
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처리는 어떠한 처리를 말하는 것인지, 서류 작업의 처리를 말하는 Disposal는 아닐 테고
아니 애초에, 잔당이라는 단어를 Residue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Remnant라고 해야 하나? 
둘 다 잔당인데 어울리는 어감과 단어는 무엇이지? 문장의 조화를 좀 더 아름답게 해야 하는 것은 어떤 거지?
 
틀리진 않았는데, 나를 도와줄 선임은 어디에 있는 거지? 집에 가고 싶다 정말 소리치고 싶다
하는 속 타 오르는 과정의 연속, 시간은 이미 오후 3시를 지나 4시쯤을 향하고 있을 때
곧 있으면 퇴근 시간이었고, 퇴근이라는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도 없었었다. 
(말이 퇴근이지, 생활관으로 복귀한다)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해, 퇴근이고 자시고 당장은 나에게 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데
 

심사숙고해 본 결과 00 Eradicate Residue Forces.로 작전 명을 지었었다

이 단어가 어떤 화를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독자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Eradicate라는 단어는 굉장히 어감이 강한 단어다. 해충을 박멸하거나 , 아니면 뿌리부터 없애버린다는 Root out의 근절하다는 뜻으로, 보통 인간이 아닌 해충이나 바이러스에 사용되는 단어였었다. 
 
물론 이 단어의 강한 어감을 난 모르고 있었고,
통역장교님도 몰랐었고 오로지 미군 소령분만 아시고 계셨었는데
이 실수는 큰 화를 불러왔었다. 
 
책임질 일은 많았고, 그리고 대다수가 통제가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몇몇 개인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완료된 PPT 파일은 미군 카운터파트에게 넘어갔고, 이 자료를 리뷰하던 도중에 울리는 전화
 
분노전화였다. 한 없이 화가 나있는 그의 분노의 초점은 
작계의 번역이 완전하지 않음과 더불어, 디테일들이 없어 이해하기도 힘들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는 병장생활을 지내고 전역을 하고 나서
뒤로 돌아 다시 한번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었기에
영문도 모른 체 이 분노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해야 했다
물론 군필자의 쉬운 답인
 
"죄송합니다"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감정을 한없이 소리치시고 나신뒤에 다시 한번 전화가 온 것은 통역장교 분이셨는데, 
몇 개의 질문을 하시더니만 전화를 끊으시고 다시 처음부터 일을 해야 하는 과정을 겪었어야 했다
일이 무언가 잘못된 가고 있음을 감지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명령을 내려줄 명령권자는 내 주변에 없었고
이 일이 끝나기를 기원하면서 사무실에서 대기했다.
퇴근을 하기에는 무언가 잘 못된, 무언가 내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안 좋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군필자라면 흔히 아는 그 직감 
"X 됐다" 
 
한 없이 불안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 퇴근 시간이 되었다고 퇴근한다면 
내 주어진 임무에서 이탈하는 것이니 마음대로 퇴근도 못하는 상태
그렇게 사무실에서 전전긍긍하면서 6시까지 버티고 잇었는데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계셨던(내가 생각하기에) 간부님이 들어와서는 ,
 
 

00아? 너 왜 아직도 퇴근 안 했어? 생활관 복귀해

 

제가 퇴근하라는 명령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그는 이마를 한번 짚으시고
어떠한 생각을 하시던지
 

야 이... 이.. 퇴근 명령 없어도 시간이 되면 퇴근해, 명령이야

 
 
 

예 알겠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생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안한 마음
이제 가도 일병이 된 병사에게 남아있는 책임이 얼마나 되었던지
어차피 일개 병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많이 없었을 텐데,
 
보고 철칙의 원칙(지휘라인의 보고)을 난 매번 지키고 있었고 
그러고 나서 다음날이 되어서는,
 
미 측 카운터 파트가 오시더니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즉, 
Eradicate라는 단어는 어감이 강한 단어라 그 단어의 뜻이 정확하지 않다면 본인에게 물어봐달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속으로 물어보면 

"왜 아직도 그걸 몰라? "

라고 할 것인 게 분명할 터인데
인수인계라고 할 것도 없이 내가 알아서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이 상황이 정말 억울했지만, 고작 억울하다는 감정으로 어찌하겠는가, 이러한 곤란한 상황 속에서 내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거늘 감정을 앞세웠다면, 상대방도 똑같이 감정대로 나왔을 것이지.
 
그리고 설명해 주는 Eradicate의 뜻

"그 단어는 집안을 속속히 찾아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뜻이야. 자네가 애국심이 강한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는 전후 유엔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까지는 생각해 봤나?"

 

명심하게, 우리는 전쟁 범죄자가 아니야.

그때 당시의 감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사건의 정황을 정리해 본 결과는 이러했다.
 
 1. 숙련되지 않은 병사. 
2. 그 숙련되지 않은 병사에게 서류의 중요성을 설명하지도 않았던 간부
3. 검토 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통역장교
. 4. 인력이 없어 서류를 초기부터 보지 못한 미 장교
 
 
즉, 모든 상황 자체가 이러한 사건은 일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모든 퍼즐과 신호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열정 넘치는 병사에게는 가르침과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남기고, 이 서류 때문에 처지가 곤란해진 간부님과 통역장교님에겐 죄송합니다 라는 말 밖에 남기지 못했었다. 
 
그렇다 고작 단어 하나 때문에,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전시 최고 사령부라는 곳에서, 일개 개인이 이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의 이미지는, 열정이 넘치지만 조금은 부족한 이미지가 형성되어 버렸고,
이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에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었다. 
 
이 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람이 실수를 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시간은 그의 곱절은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명령이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내 모습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일관성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세는 병장 때까지 지켜야 했던 것은 비밀이긴 하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이득이었지만, 그때의 치욕적인 감정은 아직도 기억한다. 
이 실수를 내 후임이 반복하지는 않기는 바람이지만,
그가 내 의도를 깨닫는 것은 오랜 후의 일이었다
 
이런 기억의 저편들의 조각 덕분에, 지금은 단어를 번역할 때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서 번역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에게 있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어도, 읽는 사람은 내 문장과 내 의도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에 의미가 없고 통역은 있으나 마나 한 시간 낭비인 것이니까.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달라.

 


북한은 상도덕을 모르는 새끼들이라서 그런지, 주말마다 미사일을 쏘았는데, 그리되면 주말 당직을 서는 분들도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군은 그 조직의 특성상 24시간 동안 적의 동태를 파악해야 했고, 그들의 특이 움직임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서로 서로 편하게 좀, 주말이나 아니면 행사하는 날이나 쉬는 날에는 공격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이 x끼들은 그런 날이면 오히려 머릿속으로는 "야 우리가 이때 공격하면 저 새끼들 X 같겠지" 하는 매뉴얼이 있나?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정도로 X랄 아닌 X랄 한다. 

어 ~ 주말이야~ 쏠거야~

 이는 간부/병사로 하여금 주말 출근을 하게 하며, 하루하루 훈련으로 고되게 아니 그냥 하루일과를 보내고 나서 따스하게 마음의 힐링을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마음에 불을 지필뿐만 아니라 서로 불편한, 정도에 따라 높으신 분들도 나오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자리가 만든 책임이자 의무이며, 그 직책의 걸맞은 행동임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는 명분을 주는 새끼가 X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화성 15호 발사

 

화성 5호 발사

 이 글을 보고 있는 군 관련자들은 필히 공감을 하겠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으신 여성분들이나 혹은 대체복무자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면, 당신이 일하고 있는 자리에, 당신만이 담당할 수 있는 일들이 당신의 쉬는 시간을 노려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것었다면 그냥 오늘 하루 똥 밟았다 싶어 하루를 어쩔 수 없이 보낸다면, 이 군생활의 주적은 확실하다.

발사체 (X랄)

그렇다, 그 새끼다

 

아무튼, 2022년은 그런 한해였다. 주말마다 미사일 쏴재껴 진짜 짜증 나게, 어학병이 주말에 미사일 쏘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싶겠지만, 우리는 한미 동맹. 70년 동안 서로를 지켜낸 동맹,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는 언어로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파파고인 우리는 군복을 입고, 우리의 위치로 향해야 한다.

 

2022년 5월에는 우리도 대응 사격을 하겠다고, 그 울분을 쏟아내었었던 것도 얼마 되지도 않았었는데

 

이 11월 12월의 기억은 매우 강렬한데, 눈 쌓인 부대의 사이사이로, 현 위치로 복귀하는 것은 그 감성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새벽의 차량의 불빛이 어둠길을 갈라내고 제설 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후임들 사이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타려고 하는 미군들 사이에서 그 즐거움이 고양되어 있었을 즈음에, 

 

이 X발련은 이 분위기에 초대받지 않았다는 것에 꼬장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하하 나도 유학생이었던 적이 있어서 서양애들은  지금이 딱 적기야 지금 때려야 해"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었다)

하는 마음으로 버튼을 누른 게 틀림없다. 

야발련

 

그 의도가 어찌하던, 그들의 핵무장을 향한 발걸음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던, 우리의 하루를 망쳐버린 것을 의도했다면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은 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좋아하는 주한미군도 그런 "군기강해이'의 형태를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물론,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난 기강해이라고 보다는 지친 하루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국가 간의 선은 상대 쪽에서 계속해서 넘어왔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대응하지도 못했었는데 이는 서로의 위치와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외교를 정상국가스럽게 대처해야 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있었고, 북한은 그런 이해관계를 신경도 안 쓰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하물며 공식적인 TV방송을 이웃국가인 일본을 "파렴치한" 혹은 "역적패당"이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훗일 생각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외교를 하는 곳이 북한이라는 곳이니까

 

단어 선택하고는 참..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다, 대응사격을 하겠다고 하였지만, 그때 당시에는 워낙 대응을 하고 싶어도 하지는 못했다. 평화합의라고 한 것으로 우리의 팔이 묶여 비유를 하자면 앞마당에서 불장난을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 모습만 연출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작성시기 2024년) 상황이 다르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랬다. 그러한 복잡한 내부에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직접적으로 표출을 하지는 못하고 간접적으로 미국 측에서 움직여 주길 기대해야 하는, 은연중에 말을 해주면서 눈치껏 그들이 받아들여주길 원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니까.

 

미국도 한국과 수교를 하고 외교를 하고 동맹으로서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그 속사정을 알고 있는 건 있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미국과 간접적으로 돌려 말해야 하는 한국의 업무방식의 차이 속에서 생기는 감정적 마찰은 통역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니 스트레스는 안 받고 싶어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하는 사건은 2022년에 발생한 북한 무인기의 침범 사건, 서울 하늘을 쓰윽 살펴간 이 사건, 덕분에 미 측에서도 "당했다"라는 반응을 보여줬었으니까. 물론 내가 기억하는 그 "당했다"라는 것은, 돌려보냈다는 그 "당했다"였던 거 같다.  한동안 언론에서도 시끄러웠었고, 늦장대응이다 뭐다 하면서 대한민국 언론이 분열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떠들썩했으니까

 

출처:동아일보

 

. 이러한 이야기 끝에 결국에는 우리도 대응을 똑같이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 "야 너도 그러면 똑같은 놈이 되는 거야" 이런 말을 할 수 도 있긴 하다. 하지만 옆집이 외교를 정상적인 국가처럼 하는 곳도 아니며 미치광이 전술로 간을 보면서 끝까지 신경을 긁고 가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해줘야 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방법이, 유엔 측에서는 이런 결과를 낳긴 하였지만 말이다 

 

 

유엔사 "무인기 보낸 北·맞대응한 南, 둘다 정전협정 위반"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유엔군사령부는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의 남한 영공 침투와 그에 맞대응해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낸 남한의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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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또한 그들의 입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해한다. 조금 아쉬운 마음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주지 못하는 중립적인 유엔의 태도였겠지만 그래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도 그 바빴던 날들을 난 기억 한다,

 

잊을 수가 있나. 지극히 악의적인 개 X 끼들, 덕분에 한동안 주말출근은 기본이었으니까. 

 

뭐 혹자들은 북한이 한국의 담당일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하는 시야도 있긴 하다, 한국의 약점을 일부러 공격해 우리가 보완해야 할 부분을 1대 1 과외로 알려주고 있다고, 놀라운 시야지만, 그렇게 보일 정도로 이 무인기 대응은 우리가 할 말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제 나는 전역자의 시야로 군을 보고, 또한 동시에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작금의 상황인 남북관계는 평화의 노선을 가고 있는 그림이 아니라 서로 간의  화구를 맞대어 네가 쏘면 내가 쏘겠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유감임과 동시에, 내 또래와 그리고 미래에 군에서 살아가야 하는 내 동생들 그리고 미래에 혹시 모르는 내 아들들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분명 나도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 놀토를 그리워하던 그 시절에,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행사를 했었고 그리고 그 편지에는 이후에 한반도가 통일되어 군대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은 생기지 않지 않았던가. 

 

1년 6개월의 군생활을 길다면 길고 짧게 했지만, 그 짧은 군 생활은 변화의 시기였기 때문에, 2018년에서 2022년의 정권 이양의 시기를 직접 겪었으니까, 군대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바뀌어 나가는 것을 직접 체감했었으니까. 이제 나는 전역을 했고, 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상태로 내 경험과 내 기억을 갖고 이제 군에 들어가는 동생들을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영광스럽고 명예스러워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한 없이 당연해졌고, 다른 나라 사람들 입장에선 선택이었던 것이 희생의 강요를 처음 겪는 장소가 바로 군이라는 공간이니까. 내가 겪은 발자취를 내 동생들과 후임들이 당장 따라갈 것은 아니지만, 그 감정과 그 장소에 대한 이해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 한편에서는 더 잘해주고 싶은 감정만 벅차오를 수밖에 없다. 

 

이 감정의 기원이, 사회의 시스템 때문이고, 그 시스템의 출발은 그 X발련 때문인데 

 

 

덕분에 20대 초반에 성숙해지는 계기를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 스스로가 실수를 하는 것이 발생하면, 책임 소재에 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강제) 곳이 군대만큼 좋은 곳이 없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는 게 훨나은 그곳,

그런데 이 장소를 겪게 만드는 게 그 새끼

 

분명 이 글도, 북에서 읽고 있다면 내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데, 주체고 X랄이고 너네들이 주말이라는 것도 없고 휴일도 없이 착취당하는 꼬장을 왜 우리한테 부리는지 모르겠다. 그 꼬장의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너네 윗사람한테 가서 부릴 것이지. 정말 짜증 나는 족속들

 

 

십새기

아무튼, 이 글을 읽을 나의 동생들과, 내 후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또 달리 하는데, 그 메시지는 간단히 


 

"원래 그런 장소니까 버티고 그래도  자기 자신을 잃지 말아 달라"


이상, 오늘의 기억 주저리는

?

제목 진짜예요? 진짜 군대에서 하루 더 복무했어요? 멍청이예요? 아님 애국자예요?? 

이 글의 제목은 실화를 바탕으로, 아무런 과장없이, 객관적으로 기록된 내 이야기니까 말이다.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으며, 가족들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이지만 온라인에서 만큼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여포니까 공공연히 태연하게 작성하도록 하겠다. 

 

 

때는 마지막 찍턴을 위해 복귀했던 날

신분 상으로는 병장이었던 시절, 그리고 인생의 계획이 유학으로 결정되어 호주로 가기로 결정되었던 시기, 그러니까 요약을 하자면 병장(군휴학, 전북대학교 3학년) 이었다. 준비된 서류도 없었고 IELTS 점수도 없었고, 전역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공부를 하기는 싫었고 그렇다고 친구들 (이미 취업함, 여자친구 만나느라 바쁨, 돈 없음, 시간대가 안 맞음)에게 방해가 되고 싶었지는 않던 시절, 난 굉장히 무료하고 심심한, 마치 은퇴를 앞둔 회장님의 마음일까? 그냥 너무 심심했다. 

 

얼마나 심심했는지, 군대에서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작업이라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군대는 나에게 전역자의 예우를 다했고 안타깝게도 행보관님은 나에게 복무를 허용하지 않았다. 분명 간부님들 마음속에서는 어차피 나갈 애들인데 이런 애한테 굳이 일 시킬 필요도 없고 개인의 생활을 존중한 것이 분명하였겠지. 

 

하지만, 난 심심한 말년 병장, 심심하니까, 심심하니까 이병/일병 들의 일을 뺐고 싶었다. 부조리는 아니었던 것이, 원래 내 일이었던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내가 내 후임의 일을 해 줌으로써 내 후임이 편안하다면 나도 만족하고 그도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상황은 발생한다 

 

야간 경계 근무 인원 02:00 - 04:00 시 복무자가 격리됬는데요, 대체할 인원이 없어 

 

찍턴이었지만 새벽에 잠이 안와서, 경계근무 하는 애들 뭐 하고 있나 심심해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던 시절, 부대의 지리는 내 머릿속에 있었고 새로운 건물이 지어졌다길래 돌아다니고 싶었었다.

 

잠도 안오는 김에 12시부터 모든 곳을 들 쑤시고 다녔었다. 찍턴을 하는 2주 동안 무엇이 변했나, 다른 생활관의 분위기는 어떤가, 아니면 내 후임들이던, 내 동기들이던 뭘 하고 있을까? 

 

2층을 돌아보고, 1층 지휘통제실에 방문해 당시 야간 당직을 서고 있던 A 상병이랑 노가리(이야기) 까러 갔다. 근데 당직 사관님의 전전 긍긍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듣자 하니, 야간 당직 근무표의 2시 4시 복무자가 격리되어 대체자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코로나 때문에 복무가 불가능한 상황, 그리고 군 예규에 따라 대체 복무할 수 있는 인원이 없어 외부 병력을 충원해야 하나

 

아니면 새벽에 다른 병사를 깨워 굳이 구태여 상황을 설명하고 자원자를 받아야 하나 이럴 방도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그때

 

심심한 내가 

 

 "그거 제가 하겠습니다, 어차피 전역한 것은 맞는데, 신분상으로는 군인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당직사관 분은 말씀하셨다.

"아니 그래도, 네가 그렇게 해결해 주겠다면 고마운 일인데.. 전역자가 그런 거 한 거 내 군대 경험 4년 동안 없던 일이고..... 그래도 괜찮겠어? " 

 

말을 천천히 하고 있었다. 당황스럽지만 그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혹은 내가 어떠한 악의를 숨기고 또 다른 보상을 바라고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분명 그렇게 한 선임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난 대답했다, 

 

 

"난 심심하니까요" 

 

"? 무슨 이상한 소리니, 진짜" 

 

"거짓말 아니고 저 정말 심심해서 군대에서 좋은 기억도 많고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는데, 이것도 하나의 이벤트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저에게 있어서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그냥 살면서 재밌는 일련의 사건 사고 중 하나였습니다." 

 

A 상병은, 나에게 말했다 

 

"형 X 신이야?"

 

"조용히 해 , 지금 엄청 재밌는 상황을 만들어서 행보관님이나 본부대장님이나 이런 소식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난 궁금하니까 " 

 

나는 정말 이렇게 말했다, 행보관님이나 본부대장님이나 다들 바쁘실 때이기도 하고 매번 병사들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위에서 아래에서 괴롭힘 받는 중간직의 마음을 난 깊이 이해하고는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당장 귀찮은 일이라고 해도 정말 진짜 하늘의 맹세코 심심한 병장이었으니까.  

 

 

"형... 형은 괜찮을지 몰라도 난 아직 군 생활 좀 남았어.... " 

 

이 말은 분명 나로 인해 발생한 후속조치로 인해 생길 잡다한 규제들이 본인들을 얽매일까 봐 하는 이야기겠지 혹은 내 이야기로 행보관님이나 아니면 본부대장님이나 미래의 병사들에게 혹은 미래의 전역자들에게 '00 이는 전역을 해도 애국심을 갖고 복귀해 당직을 섰다' 하는 정훈 교육을 하게 될지 하는 걱정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얼마나 귀찮은 선례를 남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어린 마음을 난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 나는 심심했고, 심심했고 , 그리고 심심했다. 

 

그 와중에 당직사관 님은 복무지에 적힌 격리된 병사의 이름을 삭선으로 긋고 그 위에 나의 이름을 적고 내가 사인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눈빛과, 이런 병사는 어떤 병사인가 하는 의문, 그리고 심심하다는 의도는 어떠한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을 안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렇다, 난 이런 사람들의 문제가 혼란스럽게 해결될 때 짓는 그 난해한 표정을 좋아한다. 

의도를 모르는 다른 사람의 선의 속에 그리고 그 선의 안에 어떠한 악의도 없으며 그저 본인의 만족감을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그러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자기 자신에게 발생을 한다면 본인은 안 할 것이지만 의외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니까 

 

 

어찌 되었으나 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고 당장은 의심스러우나 선택지가 없으니 찾아야 하는 해결책이 오직 내가 제안한 선택지일 때.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너무 좋았다. 

 

"만약에, 근무자 문제라면은 행보관님에게 던 본부대장님이던 좋게 설명하고 제가 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바라는 건 맛있는 음식이나 아니면 제 후임 편하게 군 생활해 달라는 거치장스러운 말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거래를 할 수 있는 입지에도 존재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전 그냥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행보관님과 본부대장님의 표정이 궁급합니다.  서류상 전역자가 복무에 들어간다는 것을 반드시 행보관님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 그리고 전 새벽에 조용히 떠나렵니다 "

 

이런 이상한 소리 괘변과 함께, 심심한 나는, 아니 병장인  난 복무지에 사인을 하고 군복을 정리한 다음 

지나가는 길에 나로 인해 수정될 필요가 있는 행정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A 상병에게 지나가며 말했다.

"야, 내 인생 술자리 썰 하나 사러 가는 건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 아니냐" 

 

"야 그리고 12-2시 누구냐? "

A 상병은 답했다.

"어.. B일병이야"

그 말을 들은 나는

"걔 나 아냐? 모르지 않냐? 재밌겠는데"

온갖 악의에 휘둘려있는 웃음을 지고는 나는 근심 어린 걱정을 하고 있는 A 상병을 뒤로하고, 지통실 문을 나섰다. 추운 겨울이었다. 시간은 2022년 12월 말, 2021년 7월, 여름 빛깔이 도는 군대에서 이제 그 활기참을 뒤로하고 각자의 시간을 위해 떠난 내 동기들을 생각하며, 

 

쌓인 눈들을 밟으며, 뽀드득뽀드득하는 그 소리가 이제는 얼마나 달콤한 소리로 들리던가.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당직을 겨우 끝내고도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내 얼굴을 비치던 붉은색 취침등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그저 전신의 감각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눈 삽을 들고 제설을 했던 그 장소를

 

난 이제, 웃으면서 보고 있다.

 

그 일말의 시련과 고통이 나에게 어떠한 성장을 줬는지 모른 채, 어떠한 이야기를 담게 되는지 나는 인지하고 있지 아니하고 가벼운 발걸음을 들고 난 경계근무에 나선다. 

 

그렇다, 마음이다, 이 마음이었다. 이 불변의 진리, 아무리 하기 싫었던 일도 사람의 상황이 어떠한 상황과 생각에 따라 같은 일도 이렇게 달리 느껴진다. 난 이런 걸 증명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스스로 겪어봐야 굳이 구태여 남들이 생각하기에 아니하는 것들을 겪어보아야 난 그 감정에 동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입김이 나온다.

겨울이었다. 같은, 그 같은 겨울이었다. 

 

"워메 날씨는 죽이네"

 

하면서 나서는 설레는 발걸음,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는, 아니 내 존재 자체를 알리가 없는 A 일병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맞이할까. 어떤 장난을 쳐볼까 하는 마음을 갖고 난 오랜만에, 총 6개월 만의 내 근무지였던, 아니 내 근무지인 그곳을 향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나는 외친다 

"야, 나와" 

 

B 일병, 전입 온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다. 내 존재를 알리가 없다. 훈련소를 마치고 2주간의 보호기간을 끝내고 겨우겨우 이제 와서 경계근무를 서는 일병이랬다. 빡빡 깎은 저 머리를 내 모를 리가 있나, 나도 분명 저리 어리바리하고 상황 돌아가는 것이 급박했는지 모른 채, 앉아 있었겠지, 무엇을 잘 못했는지 모른 채. 

 

그는 나에게 말했다

 

"? 누구십니까" 

 

나는 대답한다 

 

"야 나오라고"

 

B 일병은 일어난다.

"아 예, "

 

주섬 주섬 공부하고 있던 아니, 무언가를 적고 있던 책을 자기 가방 속에 넣으면서 옷을 입기 시작한다. 원래라면 허용되지 않던 행위다. 아니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일병이, 전입 온 지 얼마도 되지 않은 일병이 이런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그의 군 앞길이 어떻게 꼬일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겠지. 혹은 내 동기, 후임들이 서로서로 편하게 하자고 하는 그 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 설레는 감정과 어찌 보면 분노, 아니 아련한 그 마음이었다. 아련한가? 왜 아련한가? 전역자들은 아는 감정이 아니던가. 그가 걱정되었지만 , 이제 내가 상관하면 안 되는 사람.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창창한 이제 막 20대의 길의 발걸음을 걷기로 하는 자 아닌가? 

 

이런 속마음을 숨기고 난 다시 말했다. 

이럴 때 필요한 표정은 

어느 정도 화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 X끼보소 ?

 

"어? 어? 쉬 끼마 나오라니까 진짜 나오네 , 경계근무 그렇게 할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B 일병은 말했다. 

 

순간 지었던 그이의 표정

 

"아니"

 

아, 이 당황스러움, 그 혼란하고 멈추지 않는 땀, 행동은 모두 정지된 상태.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오고 갔을고?

생전 보지도 못한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 자리를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 나오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니. 

여기서 다시 한번 몰아쳐주자, 이 경험이 그에게 다른 실수를 예방하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되게 해 줄 테니,

혹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가 맡은 바 임무를 다 해야 하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 선임자의 의무. 그리고 짧지만 군복 입은 자의 의무 아니겠는가. 

 

나는 또 말했다.

 

"아니?"

 

그는 당황했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이러한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퍼져나가게 된다면 다른 이들에게 남겨질 이미지를, 분명 두려워하는 거겠지. 첫인상이, 그의 앞날의 군대 생활이, 어떻게 될 건지 아니면 내가 누군지 아, 그 표정 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아니야, 가봐, 가서, 보고하고 올라가. 나에게 질문하지 말고, 해봤자 의미 없어, 내가 누군지도 알려고 하지 마, 어차피 몰라도 되는 사람이야." 

 

틀린 말 하나 없는 그 문장 하나하나.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단결"

 

난 그의 경례를 받았다. 온갖 잘못된 절차 속에 경례만큼은 제대로 하는구나. 

 

"단결"

 

새벽이다

 

나의 마지막,  군인으로서의 새벽이다.

 

다음날은, 

 

그날의 걱정을 마음속에 안고 살아가겠지.

 

신병이 올 때마다 어떤 신병이 오게 될지 항상 궁금했던 나의 이야기들, 그걸 접어둔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 인지하지 못한 채 나는 내 군대의 이야기를 접어둔다. 

 

 

겨울이었다.


 

 

신병이 들어올때마다 찾아가서 어떤애였는지 물어보던 그 시절
훈련에서 나오는 미군 밥이 맛있던 그 시절
번역하고 있는데 단어 하나 때문에 4시간 5시간 정도 고민하다가 대충 하라고 해서 대충했는데 나중가서 왜 대충했냐고 드럽게 혼났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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