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애국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난 생각한다. 다만 다들 정도의 차이인 것이지 나라를 사랑하고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은 희생정신은 한국인의 마음속 안에 뿌리 깊이 들어있다고 난 항상 그리 믿어왔다.

이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나라에게 보답은 하였지만,

사람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했던 나의 회고록이기도 하며
아직도 그 일에 관해서 죄책감을 느낄 때가 더 많은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큰 이야기다. 
 
이야기는 나의 상병 3호봉 내지 4호봉 당시로 가야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그래도 혹여나 군의 시스템에 관해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이병은 훈련소를 제외하고 자대배치 2개월이 조금 지나면 일병의 계급장을 달게 되고,
일병 6개월이 지나 상병, 그리고 상병 3호봉으로 가게 된다면 대략

군대에서 지낸 시간 1년이 조금 넘는,
어찌 보면 사람구실을 착실히 해내는,

일병이면 1인분만 해도 칭찬을 받지만 상병일 때는 1.2인분 아니

1.4인분 정도 하게 되는 그 구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
 
함께한 기간이 1년이 다가가게 되는 만큼, 한없이 넘쳐나는 스트레스 속에서

일병에겐 의지할 수 있는 실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구간이다.

게다가 18개월이라는 군 생활 속에서, 쌓인 휴가를 제외하고 나서는 6개월 남짓 전역까지 얼마 안 남은 상황
 
물론,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할 것은 나와 나의 역할은 특직부 대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병사들끼리의 끈기와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다른 부대의 이야기보다는,


사무실에서의 상호간의 업무 이해와 효율이 올라갔었는데.
이러한 요소는 미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었다.
비록 우리의 관계는 사무적으로 연결되었을지언정
인간으로서의 관계는 사무적 한정으로 연결되어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보이지 않는 바운더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매번 상기시켜주곤 했었다
 
비록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더라도,

다른 군복을 입었음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의 일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말이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친구 사귀기가 힘들어진다고
왜냐하면 서로의 바운더리를 존중하게 됨으로써 그 거리감을 굳이 구태여 좁히지 않으려고 함에 있는데
 
이 비슷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곳이 내가 일하는 곳이었다. 
난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물론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매번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우리의 관계는 업무적 관계 
쌍무적 계약관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하였으니깐 
 
상대방도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는 있는 것 같았다
. 

개인 간의 관계를 보기 전의 양국 간의 상호호혜관계를 봐야 한다는 시야

(개인을 보기전에 국가를 봐야 한다)
참 사람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그 조직을 대표하는,

아니 그 조직의 거대한 톱니바퀴 중 하나인 사람
내가 당장 이 장소에서 어떻게 접근하던,

그는 나를 동시에 사람으로 보기 전에 하나의 메신저로써 부품으로써 날 받아들이겠지.
 
우리의 임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한 가지,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 측
 
한국이라는 "타지"땅에서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이곳에 와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있어봐야
 
그의 직장상사
 
하지만, 직장상사에게 본인의 외로움과 감정의 힘듦을

토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어느 나라의

사회생활 속에서 Big NoNo였으니까
 
그와 달리 한 측은 서로의 문화권으로 이해관계가 하나 되어

외로움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점이 있긴 했었다
 
이제 이러한 이해와 함께 오늘의 이야기를 해보자


구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용산의 사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미국이, 아니, "그"가 나에게 감정 섞인,

눈물 맺힌 질문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였을 때
 
난 "사람"으로서의 답보다,

"조직"으로써의 답을 주었다는 것을
 
어느 날이었다, 조용했던 하루 중에 그의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를 연락받은

나는 노트와 팬을 챙겨 달려갔다.
(통역병에게 노트와 팬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게 좋다, 언제 통역이 발생할지 모르니)
 
그날은 이상하게도, 누가 그의 방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함을 깨닫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는데,

본래 나는 한국군 소속으로써 통역을 찾는다면 한국군 간부님이 더 많이 찾는다.
 
그러나 그날은, 미국에서 먼저 나에게 연락이 온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방에서 그는 의자를 하나 두고는,

나에게 앉으라는 손짓으로

"어서 와"

Come on in
sit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

패기 넘치던 그는 온데간데없고, 지쳐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한국 측에서 나에 관한 평가를 알려줄 수 있겠나? 다른 것이라도 괜찮다네, 아무거라도 좋으니 "

Can you tell me what's going on about me ROK side?
Anything
 
침묵
 
조용한 침묵이 아닌
 

 
침묵
 
몇 초였을지 모르는 시간 이후에,

난 대답했다
 

Can't do that Major, I do not have any liberty to say anything unless it's an official comment.

죄송합니다 소령님, 저는 공식적인 답이 아니면 개인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아무거 나라도 좋네

Anything, it's just any comment.
 

Sorry sir, you would understand this if you were in my shoes

유감입니다, 제 처지에 있으면 이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다, 난 그 사람의 희망을 향한 손짓을 
교육받은 대로

그러니까

나라가 나에게 위임했던 대로 단호하게 행동했다.
설령 동맹국이라고 할지라도,
타국타국, 또한 이전에
간부님이 매번 나에게 말씀해 주셨던
 
 
어디까지나 내가 공식적으로 행동할 때 네가 움직이는 거야
너는 개인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너의 입이 나라의 입이다 하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녀
 
그러한 배경 속에 맞닥뜨리는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날의 상황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날이 자랑스러웠다는 생각보다는 
틀리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생각보다는
그 상황이 일어나게 된 ,

 

그에게 있어 악조건 같은 상황들이 생각이 난다
 
그의 부탁을 듣지 않은 행동 자체는 올바르긴 했었다

,
통역은 통역인 만큼,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남기고
그 상황의 평가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일들이며
그저 걸어 다니는 파파고의 임무를 완수하다 보면은
특출 난 영어 실력과 함께 전역의 아침을 맞이하면 된다.

 


나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거기까지니까.
 
 
지나간 일을 신경 왜 쓰냐고 하면
일말의 책임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병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난 올바른 일을 했다
 

그날은 흐린 날이었고
흙냄새와 더불어 오랜 카펫의 냄새 속에서 있는
그런 담배 한 개비가 생각난다.
그것뿐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어학병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학병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


이번 편은 정말 쓰고 싶었던 편중하나다, 이게 정말 서러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글이기도 하고 잘못해도 욕먹고 잘해도 욕먹는 번역과 통역의 끝판왕,

 

바로 은유법의 번역과 통역이 되겠다.

 

이 말은 영어속담을 한국어로 100% 번역하거나 혹은 한국어의 속담을 100%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하면 문화적 이해로 어떤 뜻인지 알아서,

10을 말하면 100을 이해하고, 어찌 보면 그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허탈한 웃음이 나오게 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번역과 통역의 관점에서는 이런 복병이 아닌 애들이 없다. 

 

정말 너무 싫다. 아니 싫은걸 넘어서서 가증스럽다.

아무리 언어를 사랑하는 나의 성격이라지만,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언어의 표현을 어찌 영어로 번역하겠는가?

 

위에 쓴 문장도, 그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천둥벌거숭이"를 영어로 번역하라고 하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번역이나 통역에 앞서서, 같이 들어가는 분에게 부탁을 하옵건대 수사학적인 표현을 해주지 마시고 그냥 사실만 간결히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매번 말했다만, 그 말을 들어주시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고 계급도 낮은 내가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기억에 남는 영어의 표현은

 

"I understand everyone's efforts...... but I still can see the big dinosaur in the files."

모두의 노력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마는, 아직 공룡이 보인다네..

당시 공룡을 찾으셧던 라카메라

라고 번역을 하면, 나의 역할이 끝나겠다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공룡이 무슨 의미를 하고 있는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렇다

 

이 언어적 수사학적 표현방법에서 문화적 차이를 번역하고 통역하는 것도 어학병의 역할,

그래서 어학병을 해외유학을 오랫동안 해온 아이들을 뽑는 이유기이기도 하며

통역장교를 교육하는 데에도 최소 6개월의 국방어학원의 수습기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랬다,. 

 

다시 돌아와서, 영어에서의 공룡의 표현은 

Dinosaur Definition & Meaning - Merriam-Webster

 

Definition of DINOSAUR

any of a group (Dinosauria) of extinct, often very large, carnivorous or herbivorous archosaurian reptiles that have the hind limbs extending directly beneath the body and include chiefly terrestrial, bipedal or quadrupedal ornithischians (such as ankylosa

www.merriam-webster.com

: : one that is impractically large, out-of-date, or obsolete

오래되어 변하기 힘든 구시대의 잔물등을 지칭할때 "공룡"이라는 표현을 하신 것이다. 분명, 말씀하신 분은 자기 자신의 다양한 수사학적 어휘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명을 주고 행동을 할 것을 생각 하신 것일텐데, 이제 통역에겐 충분히 고역이었던 샘이다. 
 

이와 비슷한 일화로,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할때 훈련당시에 이야기인데, 

 

 
.... 이러한 훈련의 마지막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주시길 바랍니다 

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감회가 새롭다는 말을 , 내가 어찌 영어로 통역을 했냐만은

 

"It is such ambivalent feeling at the last day of drill, However, we must focus on our obejectives"
라고통역을 했었다

 

Ambivalent 

 -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싫다고 해야할지 애매모호한 상황을 말하는 단어

감회가 새롭다 

 - 지나간 일을 뒤돌아 보았을 때, 느끼는 그때와 사뭇 다른 감정

 

보이는 것처럼 그 단어의 뜻은 차이가 컸다.

그렇다 번역이라는 입장에서,

통역병이라는 입장에서 평가는 0점.

실패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소를 생각하자면, 100% 의 뜻이 아니라고 해도 60%는 전달이 되었었고, 어차피 훈련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개인적인 사담 같은 것이니 중요하지는 않기도 하지만 역시나 그 문장의 구조 하나하나가 인간미 넘치는 문장 아니한가? 지금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 문장에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낸 문장의 기록이 회의록에 영원히 남아 다른 후임들에게 기록을 넘길 생각을 하면, 감정이 복받쳐 오르곤 한다. 

 

또 다른 통역의 기억으로는, 

 "여러분도 눈이 있으니까 굳이 불필요한 것들을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I do not want to discuss unecessary comments from what we can see now 

 

이것도 100% 정확한 번역과 통역이 아닌데, 그 이유로는 역시 그 문장의 비교를 해보면 첫 한국말의 문장은 "눈으로 볼 수 있는걸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는 뜻이 강하고, 영어 번역은 "불필요한 논의를 하고 싶지는 않다"라는 뜻이 된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같은 말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전달 방식에 있어서 번역을 하는 "나"의 표현 방법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이 완벽한 번역에 대한 열망과 갈망은 군 생활 내내 남아있었고 지금도 문장을 하나 표현 할 때 어떤 방식이 더욱더 Native스러운지 방법을 찾는데 대다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그게 되는 것은 곧 잘없지만 말이다. 정말 안타까운 부분, 그래도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번역을 참고하고 탐구해나 가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 다른 서러운 이야기로는 , 이러한 수사법적인 차이 말고도, 업무 진행방식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차이는 너무 많아 그 때문에 중간에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서로 말싸움이 된 상태에서는 중간에 껴서 통역을 하게 되면, 자아 분열이 온 것처럼 나 스스로랑 싸우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상황은 미 측과 한 측의

갈등 상황이었는데

 

미 측에서는 한국군 소속인 내가 한국군에게 싫은 소리(미 측이 한 말)를 번역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Say it, God dam Say it, it is not your voice, it is my voice, and your job is to translate.
Don't give a damn about the afterwards. I will take your cover.

 

즉 , "말해, 가서 너의 상관한테 가서 말해, 너의 역할은 통역이고 그 이후의 일은 신경 쓰지 마,

뭔 일 생기면 내 잘못이니까"라고 소리를 친적이 있으셨다.

물론 매우 감사한 배려심이었지만, 그 어느 부하가 자기 상관에게 싫은 소리를 하겠는가

실제로 통역에게 이렇게까지 소리치는것은 아니지만

 

이 영어를 한국군 장교분께서도 모르시는 것은 아니기에, 그가 답한 것은 

 

" 그래도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I cannot help you out even if I can if your-side act like this.

 이런 상황에서 중간에 낀 사람의 마음은 무너지길 마련이다, 그래도 감정을 다잡고,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 물론 마찰이 되는 단어는 빼야 했었다. 그렇게 10분 20분간의 실랑이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나에게 남겨지는 말은 고생했다는 말은 없고, 서로 감정이 상한 2명의 성인 남성과 중간에 끌려와서 고생하는 통역병 한 명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말하기보다는, 나의 생각과 주장보다 살아있는 번역기로써의 삶이 억울하고 서러웠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을 말할 권리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의무였고 나의 역할이었으니까. 때론 차라리 전방부대나 아니면 다른 보직에 보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정도였고 너무 힘들어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생활관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아무튼, 군대에서 중간만 가라는 이야기는,

통역병의 입장에서는 "중간"에 껴서 "알아서 해"라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그 상황에 있었던 나와 한국군 간부님은 건물 뒤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면서 위로를 해주는 말뿐이었다. 매번 그럴 때마다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부하로써의 위로는 

 

"간부님 마음 이해 못 하는 것 아닙니다, 나라 지키고자 하는 일이 쉽기만 하면 벌써 통일되었겠지요" 

 

하는 말뿐이었고, 비어있는 허울뿐인 말이라고 해도 그 문장을 잘 들어주시고는 했다. 

아직도 밤이 되면, 그의 서러움과 억울한 남은 눈빛이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의 억울한 표정과 더불어 한 가족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넘치는 표정은 내 마음손 한편에서 남아 있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한-미 동맹이라는 것이 갑-을이 명확한 존재였으니까 

 

군이란 장소는 그런 곳이다

억울해도 말을 하지 못하고

결국엔 나보다도 더 중요한 사람을 챙겨야 하는 장소

 

그렇기에 내가 그 자리에 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아무런 일탈 없이 전역한 것이겠지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과 생각의 방식이 아직 내 마음 속 한편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오늘의 포스팅 마무리는, 군 생활 기간동안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었던 "칼 되니츠"의 어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군인이란 모름지기 독일이라는 나라가 어떤 체제 하에 있든 조국을 등지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체제와 다르다고 해서 조국을 등지는 일은,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독일-프로이센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카를 되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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