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사실상 끝난 것은 5월 24일이었으니까, 지금 일주일 만에 이력서도 쓰고 RSA 도 따고 White Card 도 신청하고 TFN 도 신청했으며, 이사준비까지 마무리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진취적이며 실행력 넘친 것은 "군대 가기" 이후 처음인데, 확실히 군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느끼고 있긴 하다.
옛날에는 분명 모든 일을 하기 전에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막상 부딪혀보니까 별거 아닌 것들이 많았고 게다가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잘하는 것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다는 것도 있었다. 내가 만일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해서 전전 긍긍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길을 두려워한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물론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확신이 들때까지 계속하는 습관도 생겼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군에 있을 적에 어디선가 공부 좀 했다 혹은 스스로가 성공했다고 믿는 아이들에게 본인의 비결을 매번 물어보고 그 비결을 수첩에 기록해 내 행동 거지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기록했으니까.
미쳤다 싶을 정도의 J 성향,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어차피 실수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실수를 해보고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 내 몸에 더 남기 때문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호하는 것도 있었고 타인에게 종속되는 걸 매우 싫어하는 편이라 약간의 심술이 났던 경향이 있는 것도 있던 것 같다.
비록 게임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좋은 (유학생활) 선배도 많나 해외 유학의 꿀팁이나 웹사이트 같은 곳들도 어깨넘어로 배우고 있다.
유학생의 강점은, 아무래도 해외생활을 혼자서 해내기 때문에 성격이 하나 같이 드세며, 고집있고, 꺾이는 것을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것이 자신의 편이 돼 사람에게는 한없이 챙겨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찌됩니까
앞서 언급된 것,
1. 이사하기
2. 자격증 받기
3. 이력서 들고 일 찾기
4. 머리 하기, 염색하고 싶어졌다.
5. C++ , Java, Python 등등 코드 공부하기,
집도 굉장히 싼 곳을 구했다. 공용으로 화장실을 활용하고 공용 주방에, 공용 부엌에 모든 것이 공용이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가격에 구했다. 게다가, 아무리 공동생활이 불편하다고 해봐야
"나님"
은 자랑스러운
"군필 남성"
아니겠는가.
병행하고 있는 것은 이렇다
1. 일본어 N2( tentatively N1)
2. 독일어 B1
3. 정보 처리 기사 ( 한국)
4. 전기기사 (한국)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난 22살, 23살의 어린아이들이 나보다 더 고생하고, 더불어 나보다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가 어떻게 가만히 나의 삶을 영속할 수 있겠는가 싶다. 게다가 쌍기사 테크트리라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대다수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조합이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을 위로하면서 앞서 나아가려고 한다.
심지어, 세상에는 박사학위가 2개이신 분들도 있으니까.
그분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고되고 힘든 길이 었겠지.
1년을 3학기로 나누고, 다른 학교의 4년의 커리큘럼을 3년으로 줄이는 영국의 대학교 방식은 배워야 할게 많다. 한국은 학사를 졸업하더라도, 학교의 퀄리티나 혹은 교수의 역량에 따라 학생의 수준이 정해지는 게 많은데.(특히 지극히 권위적인 교수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엔 관심이 없고 본인의 연구에만 집중한다). 여기에서는 학생하나하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면서 질문을 하면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서 알려주려고 한다는 점이 있는 것 같다.
White Card는 공식적으로 "General Construction Induction Training"이라고 불리는 과정의 수료증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안전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교육을 통해 작업자는 다양한 안전 절차와 규정, 그리고 잠재적인 위험 요소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왜 White Card가 필요한가요?
건설 현장은 위험 요소가 많은 곳입니다. 작은 부주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전 교육은 필수입니다. White Card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안전 교육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는 작업자 본인의 안전뿐만 아니라 동료의 안전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호주에서는 법적으로 White Card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White Card를 취득할 수 있나요?
White Card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공인된 교육기관에서 "General Construction Induction Training" 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일반적으로 하루 정도 소요되며,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교육 과정에서는 다양한 건설 현장의 안전 규정과 절차, 응급 상황 대처법 등을 배우게 되며,
사실, 학기가 끝난 것은 3일전의 일이다. 3일전의 끝난일을 이제서야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게으름과 더불어 끝났다고 하는 마음을 받아들이는데 걸린 시간이랬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험이 끝나면, 뒤풀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아무런 생각이 없이 기말고사나 방학을 받아들이곤 햇었는데, 호주에 와서는 유학생활을 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서 인지는 몰라도 방학기간에 해야할 것들을 작성하고자 한다.
저번학기에는 기본개념을 공부하고 원리를 아는 것에 치중이 되었다면, 이번학기에서는 코드를 작성하는 방법이라던지 아니면 User Interface 를 어떻게 배치하고 사용자 편의를 증강하는 방법을 배우던지 GUI 를 올바르게 배치하는걸 배운다던지 그런 코드를 작성했다.
물론 프로그래밍 코드 말고도, 기본 SQL이나 Databse 의 구조와도 같은 정말, 정말 정말 Fundamental 한 부분에서 접근해 배운 것 같다. 지나간 학기를 되돌아 보니 어느정도 회한이 드는 마음도 있는데, 이는 분명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분명하겠지.
저번학기의 교훈을 들고, 이번학기는 오로지 한국인들과 일처리를 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의 아버지 세대의 마음가짐은, DNA 레벨로 박혀있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프로그래밍이나 Group 과제의 기본은 "소통" 인데, 정말 기본적인 소통도 못하는 아이들도 만았기 때문이라.
덕분에 "한국인" 들과 서양의 일처리 방식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었는데(둘다 같은 Agile 방식이라고 가정했을때), 한국인들은 극강의 효율을 중시한다. 이 극강의 효율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점수" 만 나온다면, 그 과정이 도덕적인 관점에서 잘못이 되었던 아니면 누군가의 권위를 Override 하는 것이던, 일단 선 조치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었다.
물론 이 일처리의 방식은, 아무래도 군필자 모음으로 만들어진 5명의 조직의 운영방침이었 때문이기도 했는데, 덕분에 불필요한 Meeting은 이뤄지지 않았고, 정말 필요한 것만 채팅으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이 주기적인 업데이트 덕분이었을까, 우리는 원하는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방식의 단점은, 아무래도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과제의 퀄리티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완성된 과제는, 큰 틀만 맞추어진, 그러니까 뼈대만 튼튼한 과제로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계산안에 있었는데, 살이야 붙이면 되는 거고, 완성된 과제의 모습은 "완벽함" 과는 거리는 멀지만, 어느정도 기능은 하는 모습은 되었다.
어차피 우리는 공대생이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알아서 해야할 일
기능만 완벽하다면야 나쁘진않다. 우리는 각자의 소속은 서로 다르고 출신지는 서로 다를지어도 한국인이라는 공통 분모는 차이는 없었으니까. 그것이 우리의 장점이었으니.
다국적 그룹을 형성하고 과제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점은, 소통의 어려움이었다. 일단, 호주라는 공간이 누군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바로 존중을 하는, 유교문화와는 거리가 먼 국가이기도 했고, 각자마자 서로 다른 국가식 일처리와 소통방식, 심지어 어떤아이는 자신이 모든것을 잘한다고 "착각"하는 어느정도의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는 아이도 포함되어있는 그룹이었다.
힘들었다,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달랐다. 일처리를 하기 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업데이트 되고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써야하는지 서로간의 상호 공유가 되었어야 했는데, 이 상호 공유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본인이 먼저 업데이트하고, 다른 이들이 알아채주길 바라는 모습을 띄곤 했었는데, 도대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가정교육을 자습으로 배운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물론, 이런 사람을 겪는 것도 배움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며 상호 협조(표면상)를 지속적으로 진행했었다.
어찌저찌 좋은 점수를 받긴 했었지만, 이제 세상을 배워가는 18살 19살 10대 청소년들은 쉽지 않았다. 자신의 가정에서야 그렇게 해도, 부모님이 사랑해주시고 이해해주시겠다만, 난 그들의 부모는 아니었으니까.
그냥 코알라를 그룹장으로 하고 시키는대로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이제 전공선택의 기간이 다가온다
참, 이것도 또 포스팅해야하는데.
한국과 외국대학의 가장 큰 차이점, 1학년은 공통과목을 듣고 2학년부터 세부전공선택을 하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다